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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의 최후          


1. 이스라엘민족 수난의 원인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 많은 시련과 고난의 흔적을 남겼으며, 그 중에 특히 A.D. 70년에 있은 예루살렘의 멸망은 민족적 큰 재난이었다. 구약시대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한 사건이 끊임없는 우상숭배의 결과라고 한다면, 신약시대에 로마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한 이 사건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임할 이 재난을 미리 바라보시고 우시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시기를,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시며 슬퍼하셨다 (누가복음19:42-44).

그리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도중,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이르시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하셨다 (누가복음23:28-30).

때가 이르면 예루살렘의 부녀자들과 아이들까지라도 비참하게 학살당할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큰 재난을 스스로 불러들인 자는 유대인 자신들이었다. 유대 총독 행정관으로 재판석에 앉은 본디오 빌라도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요한복음 18:28 - 19:42, 사도행전 3: 13-14)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부르짖기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 . ." 였으며,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 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7:24-25). 빌라도가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의 무죄를 다짐하였고, 유대인들은 기꺼이 그것을 용납하고 자기들이 예수죽인 죄의 책임을 짊어졌다. 사실상 예수님께서 3년동안 공적인 복음사역을 하실때 그를 방해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사람들은 빌라도나 로마 군인들이 아닌 유대인 자신들이었으며, 그들이 원하고 바라던 일을 빌라도의 법정을 빌려서 마침내 성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죄값을 자신들과 후손들에게 돌리라고 장담하였다.


2. 예루살렘의 멸망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성취되는 시기가 왔다. 처음에는 유대인 분파들 사이에 암투로 시작되던 사건이 동족간의 내란으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로마제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중대한 사건으로 발전되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암투하던 유대분파중에서 친로마파는 사태가 불리해지자 로마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로마 군인들을 예루살렘에 불러 들였고, 반로마세력인 유대인들이 로마 군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역전의 노장인 베스파시안 (Vespasian) 장군과 그의 아들 디도(Titus) 장군을 선발하여 3개 군단과 23개 보병대와 1개 기병대 등 많은 병력을 팔레스틴 정벌에 출병시켰다. A.D. 70년 8월 예루살렘은 다니엘9:26의 예언대로 "그의 종말은 홍수의 엄몰됨" 같았으며,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왼쪽 사진 -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성전의 기명들을운반하는 장면, 로마시에 세워진 디도 장군의 개선문에 새겨 있음>


이스라엘 땅에 진격해 들어오면서 성읍들을 함락시킬 때마다 로마 정예부대와 보잘것 없는 무기로 끝까지 항거하다가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참상은 처절하기만 하였다. 마침내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물샐틈 없이 토성으로 완전 차단하였고 서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이 때 예루살렘성 안에서 굶어죽는 부녀자와 노인과 아이들의 수가 늘기 시작하였고, 죽은 시체를 성밖으로 내버린 공식적인 집계만도 60만명이 넘었다. 로마군에 의하여 성벽이 무너지면서 백병전이 벌어졌고 끝내는 예루살렘성전과 온 성읍이 불길에 휩싸였고 닥치는 대로 학살당하였다. 디도 장군은 가이사랴에서 자기 형제 안토니오 생일 잔치를 크게 치른 후, 많은 유대인을 처형하였는데 맹수와의 결투, 십자가에 화형, 유대인끼리 결투하다 죽게 하였다. 이 잔치날에 죽은 유대인이 2,500명이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부친의 생일 잔치에도 같은 일을 저질렀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쫓기고 쫓기면서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3. 마사다의 최후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 성읍이 다 함락 당했으나 오직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견고한 요새가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마사다(Masada) 요새이었다. <오른쪽 아래사진>   이 요새는 로마의 헤롯 왕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견고하게 건축해 놓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예루살렘 남쪽 62 miles (100 km), 사해 바다 연안에 깍아 지른듯 우뚝 솟아있는 산 위에 평지가 있고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쌓인 천연 요새이다. 헤롯 왕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바위 속에 물 저장 탱크를 크게 팠으며<오른쪽 사진>,   식량 공급이 중단될 것을 대비하여 성의 한 복판에는 농사를 지을 농토도 만들어 놓았다. 이 성 안에는 오랜 기간 동안에도 성 주민들이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헤롯 왕이 저장한 엄청난 양의 곡식과, 포도주와 콩과 대추야자와 기름등이 비축되어 있었다. 맑은 공기와 높은 지대의 특수 여건 때문에 식량 저장이 얼마나 잘 되는지 어떤 식량은 백년이 지났음에도 변질이 않된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됬?정도였다. 그리고 헤롯 왕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10,000명의 군인이 무장할 수 있는 무기도 그 곳 창고에 비치해 놓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그 곳 로마 수비대를 교묘한 수단으로 격퇴시킨 후 그곳을 점령하여 남녀노소 960명이 마지막 최후로 로마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로마군은 마지막 남은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철저히 함락시키므로 로마군의 단호함과 용맹을 보여주려고 철저한 공략을 시작하였다. 우선 산을 전부 포위하여 유대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 요새의 성벽에 접근 할 수 있는 비탈 언덕에 토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철근과 목재를 사용하여 탑을 건축해 올라가서 마침내 그 탑 꼭대기를 성벽보다도 20 feet나 더 높게 설치하고는 유대인들이 성위에 얼씬도 못하도록 계속 활을 쏘고 공성무기로 돌을 비오듯이 날려보냈다. 그렇게 공격하는 한편, 성벽 높이 만한 위치에 토성 탑으로부터 플랫폼(flat form)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성벽 파괴용 공성무기(an iron battering-ram)를 올려 놓은 후 성벽을 계속 때려서 드디어 성벽 일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성벽을 허물고 보니 그 안쪽에 유대인이 신속히 만든 나무 목재 바리케이트가 견고하게 세워져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그 바리케이트를 불로 태워버리려고 불을 질렀으나 바람이 로마군의 탑쪽으로 불어와 오히려 그 탑이 불붙을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면서 바리케이트 전체가 타버렸다. 이제 승리가 확실하게 되자, 로마 군인들은 여유를 가지고 다음 날 아침에 공략하기로 하고 그 밤은 쉬었다.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날 밤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잘 (Eleazar Ben Yair)은 유대인 모두 모이게 한 후, 그들이 로마의 노예가 되거나 로마인들 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수치보다는 스스로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낫다고 연설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죽이고 남자들만 남게 되자, 10명씩 조를 짜고 각 조에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씩 정한 후에 그 한 사람이 9명을 죽인 다음 그 시체들을 가즈런히 눕혔다. 그렇게 해서 최후에 남는 자는 요새에 있는 모든 비축 물자들을 불태우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날 밤 엘리아잘이 연설한 내용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 . . . 이같은 상황에서 살아난다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수치감 때문에 감히 누가 해를 쳐다보고 살 수 있겠소? 비겁하게 목숨이 아까와서 쩔쩔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목숨이 아직도 붙어 있는 것에 수치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오. 우리의 도시인 예루살렘이 적의 손에 완전히 파괴되고 우리의 거룩한 성전이 더럽혀지고 완전히 파헤쳐진 모습을 보기 전에 함께 눈을 감자는 것이오. 우리는 우리의 도시와 성전을 파헤친 적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오. 그러나 그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가 이제 여실히 드러났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서둘러 용감하게 죽도록 합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처자식들에게 동정을 베풀 능력이 있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오? 아무리 복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아니오? 아내가 능욕을 당하고 비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이나 자식들이 노예가 되어 팔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참지 못할 일이오. . . . . 로마군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겠소? 건강한 청년들도 수 많은 고문으로 비참해지겠지만, 고문을 얼마 못견디어 쓰러질 노인들도 비참할 것이오. 양손이 묶여 있어 꼼짝못하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시오. 그러나 아직 우리 손은 묶여 있지 않으며 칼까지 들고 있소.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영광스런 계획을 우리 손으로 실행합시다. 아직 자유로울 때에 처 자식들과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도록 합시다 . . . . . 우리를 수중에 넣고 기뻐할 로마군을 생각하고 로마군에게 털끝만큼 의 기쁨도 남겨 놓지 맙시다. 오히려 로마군이 우리의 굳은 결의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우리의 죽음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시다 " 다음 날 아침 로마 군인들이 총 공격하여 들어 갔으나 고요한 침묵 뿐이었다. 오직 엘리아잘에 동참하지 않고 동굴 속에 숨어 있던 두 여인과 어린이 다섯명만이 생존해 있었다.<이들의 증언을 사학자 요세푸스가 기록>   그 때가 A.D.73년 5월이었다. 이 날은 마사다 최후의 날이며, 이스라엘 멸망의 최후의 날이고, 예수님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된 날이었다. 유대인들의 요청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의 형벌은 그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대물려 가면서 당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에 의하여 비참하게 예루살렘이 멸망한 A.D. 70년 이 후에,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으로서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방랑객이 되었고, 어디를 가든지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2000년 가까이 지내오면서 그 후손들은 모진 운명 속에서 생존을 위하여 몸부쳐야만 하였다.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독일의 나치당에 의하여 당한 민족의 수난은 끔직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회복될 것을 누가복음 21:29-33에서 예고 하셨으며, 그 말씀의 성취가 1948년에 이루어져 마침내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역사 이래로 근 2000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어버렸던 민족이 다시 국권을 회복한 예가 없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권고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앞으로도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간섭하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이다. <사진 : 발굴된 유골, 머리카락, 화살촉, 신발, 이스라엘 정부의 기념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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