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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크리스챤이 자살할 수 있을까?                     2014. 6. 9        


대한민국은 세계 제2차대전 이후 6.25 동란(1950년) 전쟁으로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전 국토는 처참하게 폐허로 변하였다.  부모 형제를 잃어버리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굶주림과 헐벗음과 추위에 떨면서 생존을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하는 비참 그 자체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인구의 0.7%이고,  국토면적도 세계 108위 밖에 안되지만  놀랍게도 2014년 현재 무역규모는 세계 8위,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에 달한다.   하지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행복한 미래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사회적 부조리,  과열 경쟁,  개인적 능력의 한계,  인간 관계의 갈등 때문에 자살의 비율도 경제성장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높은 상태까지 이르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각 나라 별로 공식 집계한 자살통계를 보면 대한민국의 자살율은 지난 10년간 두배로 증가하면서 세계 최고 비율로 올라가고 있다.   뜻밖에도 유명 정치인,  재벌,  연예인,  운동선수,  등의 갑작스런 자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그 충격으로 자살 사건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며,  젊은층 보다는 소외된 노년층,  여자보다는 남자 편에 자살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원인의 순서를 보면  심리적 절망감(psychological despair),  육체적 고통(physical pain),  경제적 어려움(economic difficulties),  가족간 갈등(family problems),  그리고 청소년의 경우는 학력고시(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에 대한 압박감,  등으로 집계되었다. (참고: List of Countries by Suicide Rate)     자살이란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고귀한 존재를 스스로 끝내버리는 비참한 행위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단 한번 밖에 없는 자신의 귀한 인생을 그처럼 허무하게 마감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처럼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가?   또 이런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자살에 대한 전문 연구가,  토마스 조이너(Thomas Joiner Jr.)박사가 ( Florida State University)  내 놓은  "개인간 발생하는 자살이론(The Interpersonal Theory of Suicide)" 은  오늘날  학계,  의료계,  군대  등에서 자살방지를 위해 많이 활용하고 있는 연구이론 이다.  조이너 박사는 그의 이론에서 한 인간이 자살에 이르기 까지 어떤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거치는가를 설명하였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한 개인이 자살에 이르게 되는 데는
    1) 소속감의 결여에서 오는 좌절(Thwarded Belongingness),
    2) 자신에 대한 중압감(Perceived Burdensomeness),
    3) 자살 가능성의 습득(Acquired Capability for Suicide) 이라는 3가지 요소가 동반한다고 했다. (참고:  The Interpersonal Theory of Suicide)
그리고  한 개인이 자살하려고 할 때는  1) 외로움 속 좌절감과   2) 자신에 대한 중압감 만으로는  자살에 이르지 못하고  3) 자살 가능성(the capability for suicide)을 습득해야 하는데  이때  그 주위에 둘러 쌓여 있는 심리학적 특징들인  우울증(depression),  정신장애(mental disorder),  정신이상(psychotic),  절망감(hopelessness),  문제해소 결핍(poor problem-solving),  충동심(impulsivity)   등이 작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심리현상들이 "죽고싶다"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유도한다.    자살하게 하는 자살의 기본 동기
    1) 외로움 속 좌절감(Thwarded Belongingness)과
    2) 자신에 대한 중압감(Perceived Burdensomeness) 이 오버랩 되면서부터 출발하며,
이 두 가지 요소가  자살 가능성(the Capability for Suicide)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러한 자살의 동기가 마음속에 발생할 때,  불신자와  크리스챤은  각 각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바로 이들의 차이점이라고 본다.   우선 생명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생명(life)에 대한 불신자와 크리스챤의 관점

자살에 대한 불신자와 크리스챤의 관점은 어디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는 관점에서부터 크게 차이난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자기의 생명을 주관한다고 생각하지만   크리스챤들은 자신의 생명이 자기의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다.   크리스챤들이라고 해서 별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챤들도 불신자나 마찬가지로 같은 세상에 살면서 같은 사회환경과 부조리와 갈등과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고민하면서 좌절하기도 한다.   때로는 죽고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와 같은 마음을 털어놓으며 탄식하였다.   심한 고통과 좌절감 속에서  모세가 그랬고,  엘리야가 그랬으며,  요나와   과  예레미야가   그랬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어도 자신의 생명의 주관자는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다.

          예레미야 20: 18 =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 . . ."
          민수기 11: 15 =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19: 4 = "한 로뎀나부 아래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소서"
          요나 4: 3, 8 =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 . . ."

          욥기 7: 15-16 =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윈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 . . ."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하나님이 영혼과 생명의 주가 되신다.   그래서 크리스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다(요 16:28).   참 성도는  하나님이 자기를 구속하셨으므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는 줄 안다.(아래 - 시편 31:5 참고)  

          시편 31: 5 =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눅가복음 23: 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사도행전 7: 59 =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 . . "

참 크리스챤은 불신자처럼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된 영원한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믿음 때문에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받아주실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고 하셨다(시편 116: 15 -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성도답게 믿음대로 죽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믿음의 열매이다.   참 신앙은 열매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신자는 그러한 신념이 없기 때문에 실망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아무 도움도 없고, 홀로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영혼과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살인(murder)을 금지하셨다

          에스겔 18: 3, 4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 . .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Behold, all souls are Mine). . . . . "
          전도서 12: 7 = "흙(육체)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창세기 9: 5 =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세기 9: 6 =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출애굽기 20: 13 (신5:17) = "살인하지 말지니라 (You shall not kill)."
          레위기 24: 21 =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 . . . "
          민수기 35: 16 = "그 고살자(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마태복음 5: 21-22 = "옛 사람의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 .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요한 1서 3:15 = "살인 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세상의 사형제도는 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언약,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의 생명이 고귀함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인간 존재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살인행위는 피조물 인간이 그 창조주의 특권을 빼았는 큰 범죄행위나 마찬가지 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고살자 (살인자) 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민35:16) 라고 법제화 하셨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죽음을 초월하게 하신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서(시51:5)  죄악 세상에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죄인으로 죽어간다(롬5:12).   따라서 자연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평소에 가지고 있던 그의 소망은 죽음 앞에서 사라진다고 하였다(잠언11:7).   불신자가 죽음 앞에서 절망가운데 빠지는 이유이다.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안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자신을 자살로 마감하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다니는 소위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불신자와 같이 자살에 이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성경은 아래와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 (행로는)   다  이와 (풀이 마름과) 같고,  사곡한 자 (위선자) 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욥기 8:13)

형식적인 크리스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쉬운자 이며,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지 못한 위선자 크리스챤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 사람의 소망은 불신자의 소망과 같다는 것이다(잠 11:7 -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교회 안에는 이처럼 현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사는 신자들도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신자들을 가리켜서 "불쌍한 자" 라고 하였다(고전15:19).   죽음 후에 들어가게 될 영원한 세계를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참 소망이 없으므로 자살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지도 모른다.   교회 다니면서도 자살하는 분들은  "혹시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죽는 순간에도 소망이 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14:32)

왜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신 자의 죽음은 그 죽음 자체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a gateway)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으로 인생이 모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로 죄 씻음 받고 영생의 약속을 받은  참 크리스챤들은 육체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여긴다(고전11:3, 살전4:1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성도들이 죽어도 다시 사는 (요11:25-26) 확증을 보여주셨으므로  사도 베드로는 감격하여 외치기를,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 (a living hope) 이 있게 하시며" 라고 하였다(벧전1:3).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의 산 소망(a living hope)은 부활신앙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며,  부활신앙을 통해서 유지된다.   그래서 크리스챤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죽어도 다시 산다"고 하는  부활신앙을 붙들고 가야한다.   그러면 죽는 순간에 천국문이 열리는 것이 보일 것으로 믿는다.   스데반이 그것을 증언하였다(행7:56).
부활은  크리스챤 신앙의 핵심이며  생명력이 된다.   이 부활신앙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기독교 유일의 신앙이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창조주의 특별한 은혜이다.   하나님은  죽어도 다시 사는 이 부활신앙을 확실히 믿는 성도들에게  죽음을 극복하는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소망을 간직한 신자는  생활속에서   찬송을 좋아하며(시71:14),  기도에 힘쓰고(딤전5:5),  담대함을 보이며(고후3:12, 히3:6),  자기를 깨끗게 하려고 힘쓴다(요일3:3).   그 대표적인 예가 인데  그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고 하였고(욥27:5-6),   "(내가)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고 하였다(욥6:10).
참 크리스챤은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위를 피하고  도리어 말씀을 붙들고 큰 위로 받는다.   그래서 은 믿음의 눈으로 영광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끝까지 승리하였다 ("나의 이 가죽, (육체)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 . ." 욥19:26-27).   은 일종의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부활을 믿는 참 크리스챤은 시련과 심한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고  의의 길로 가려고 애쓴다.   그러면,  하나님은  에게 하신 것처럼  믿음의 눈이 밝아져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넉넉히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신다.   자살이란 것은 생각지도 않게 될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요단강을 건넜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종 종 약속의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넘어야 할 죽음을 요단강에 비유하기도 했다.   C.E. Breck(1898)은  죽음 후의 영원한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래와 같이 찬송시를 썼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1.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후렴)  빛난 하늘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2.  주가 내게 부탁하신 모든 역사 마친 후, 예비하신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할렐루야 부를 때, 나도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여 부르리,
                4.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일을 힘쓰고, 썩을 장막 떠날 때에 주의 얼굴 뵈오리,



토마스 조이너(Thomas Joiner Jr.)박사의  "개인간 발생하는 자살이론(The Interpersonal Theory of Suicide)" 에서  자살의 기본 동기가   1) 외로움 속 좌절감(Thwarded Belongingness)과   2) 자신에 대한 중압감(Perceived Burdensomeness) 이 서로 교차하여 겹치면서 (오버랩 하면서) 부터 출발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참 크리스챤들은 이러한 올무(올가미)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그것은  위이 두 가지 조건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듭나고 중생한 크리스챤은 혼자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영적 생명체이다(요15:4-5, 롬6:4).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참 크리스챤은 자신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셨다(마11:28).   그에게 맡기면  그가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이 약속되어있다 (He cares for you - 벧전5:7).
이러한 성경의 약속들을 굳게 잡고 신뢰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에 큰 시련과 고난이 닥쳐올 때
    1) 외로움 속 좌절감(Thwarded Belongingness)과
    2) 자신에 대한 중압감(Perceived Burdensomeness) 에 말려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받고,  소망을 발견하며,  확신에 찬 담대함으로  승리해야 한다.   부활의 산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참 크리스챤에게는  자살의 유혹이 침범하지 못하리라고 믿는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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