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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역개정 성경의 오역된 부분              


한국 최초의 한글 성경은 스코들란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미국의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선교사가 조선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과 함께 1882년에 출간한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서" 이다.

중국으로 파송되었던 스코틀란드 연합장로교회의 존 로스 선교사는 만주로 이동하면서 한국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소식을 듣고 한국 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75년 로스 선교사는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 만주 지역에서 동역하였고, 그 다음해 로스의 여동생과 매킨타이어 선교사가 결혼하면서 그들은 만주의 수도인 봉천으로 이동하였다.   거기서 조선 상인 이응찬을 만나 한글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후 조선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과 함께 성경번역에 힘써서 1882년 최초로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서"라는 한글 성경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면서 1887년 신약성경 천체가 번역되었고,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국내에 들어온지 8년만에 1893년 미국성경협회(American Bible Society)에 지원을 받아 1911년 신.구약 전체가 완성되었다.   그 성경을 사용하면서 고어체와 문구를 수정할 필요성을 느껴 내용을 수정하여 27년만에 1938년 성경 개역판이 출간되었다.   그 후 1952년 성경의 내용을 다시 보완 수정하여 출간한 것이 현재 사용중인 "개역 한글판" 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좀 더 쉬운 문장의 성경을 출간한다고 하여 출판한 "개역 개정" 성경은 여러 부분에서 잘못된 번역들이 발견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16개 교단에서 파견한 18명의 "감수위원회"가 충분한 시간과 검토를 하지 못하였다고 위원회 서기였던 장신대 총장인 김교수가 실토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을 출판한 성서공회는 이 성경이 각각 신학적 입장이 다른 대표자들이 개정작업을 한 성경이기 때문에 신학적 입장은 없다고 성서공회 민영진 총무는 입장을 밝혔다.   개역 개정에서 발견된 오류들은 크리스챤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이러한 오류들을 발견하여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만 간추려 정리해 보았다.  

개역: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니 . . .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2)
개역개정: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 . .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2)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작업 하시고 7일째 날은 안식하셨다고 본문 자체가 증거한다.   그런데 개역 개정은 일곱째 날에도 일을 하신것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개역한글은 "일곱째 날에 이를 때에(도달할 때에) 마치시니"라고 바르게 번역하였다.   일곱째 날에 창조사역을 마치신 것이 아니고 그 전에 마치셨다.

개역: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the people)을 다 찾아왔더라" (창세기 14:16)
개역개정: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창세기 14:16)

히브리 원어의 "암(ahm)"은 "백성, 민족, 사람, 주민" 등을 의미한다.   친척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브람이 318명을 데리고 단까지 쫓아가가서 구출할 때 친척만 구출한 것이 아니고  끌려간 모두를 데리고 왔다.   개역 개정에서 아브람이 친척만 구출했다는 것은 원어를 살피지 않은 오역이다. 

개역: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one cluster)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 . ."   (민수기 13:23)

개역개정: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 . ."   (민수기 13:23)


히브리 원어에는 포도송이 앞에 "하나"라는 단어 "에하드(ekhad)"가 있으므로 포도 "한 송이"로 번역해야 한다.  
젖과 꿀리 흐르는 땅이 얼마나 비옥한 땅인지를 그 열매의 풍성함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하는 말을 빼면 그 나무 가지에 여러 포도송이가 달려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분명한 표현을 삭제하여 성경의 의미를 왜곡하였다.


개역: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He has blessed)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I cannot reverse it)"   (민수기 23:20)

개역개정: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He has blessed)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민수기 23:20)


히브리 원어 "바라크(barak)"는 영어로 "bless"라고 번역되는데 히브리어에서나 영어에서나 동일하게 세가지 의미로 각각 사용된다.  
                1)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  
                2) 하나님께 복을 빈다 (축복).  
                3) 하나님을 찬미한다.


여기 본문에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축복"이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신 분에게 복을 빌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점에서 개역은 잘못 번역되었고 오히려 개역 개정이 바르게 "그가 주신 복"이라고 번역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주신 복은 인간의 의지로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고 번역해놓았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이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라고 한 것은 잘된 번역이고,  개역 개정이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돌이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개역: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들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신명기 28:9)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신명기 28:9)


히브리 원어의 영문 번역을 보면,
"The LORD shall establish you a holy people to Himself, as He has sworn to you, if you shall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your God and walk in His ways." De 28:9 (MKJV) 이라고 했다.
영어로 "if you shall keep(만일 네가 지킬 것이면)"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솨마르(shaw-mar)"이며 2인칭 단수 미래형인 조건절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민이 되는 조건은 "만일(if) 네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민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 개정은 그 반대로 번역해 놓았다.   하나님이 성민으로 세우셨으니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할 것이라고 오역했다.

개역: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시편 62:3)

개역개정: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시편62:3)


위 본문에서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는 공격을 당하는 다윗의 상태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왕에게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죽은 개, 벼룩"으로 비유하면서 선처를 호소햐였기 때문이다. (삼상 24:14, 삼상 26:20).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는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가 아니라,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이라고 해야 문맥에 맞는다고 본다.

개역: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시편 82:1)
개역개정: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느니라" (시편 82:1)

히브리어에서 엘로힘( )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킬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재판관이나 통치자 또는 천사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적용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회" 또는 "여호와의 회"라고 할 때 그처럼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재판관이나 통치자 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참고: 민27:17, 민31:16).   본문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에서 판단하시는 대상이 "재판관들(엘로힘)"로 명시되어있으므로 "하나님의 재판관들이 모인 회" 이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의 "하나님의 회"가 정상적 번역이라고 본다.















개역: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이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I shall go softly)"   (이사야 38:15)

개역개정: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이사야 38:15)


개역 성경이 "각근히 행하리이다"라고 번역한 히브리 원어 "다다(daw-da)"는 "살며시 가다, 천천히 움직이다"는 의미 이다.  
그래서 영어본들은 "shall go softly"라고 하여 "평생 동안 조심스럽게 행하겠습니다" 라고 번역했다.  
개역 성경에서 "각근히 행하리이다"는 "조심스럽게 행하리이다"는 뜻이다.  
개역 개정에서 왜 "방황하리이다"로 번역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개역: "에돔이 놀라운 것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비웃으리로다
            (shall hiss)"   (예레미야 49:17)

개역개정: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예레미야 49:17)


히브리 원어 "솨라크(shaw-rak)" 단어는 "(조롱할 때) 쉿 소리를 내다, (비난의 뜻으로) 야유하다"는 의미 이다.
매우 교만했던 강대국 에돔과 바벨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몹시 가혹하게 대하였다.   이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몹시 놀라고 비웃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본절의 내용이다.
압박과 탄압에 시달리며 지쳐있던 민족들이 가해자의 멸망에 동정심을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속이 시원하며 비웃음이 나올 것이다.
개역 개정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멸망을 보면서 "탄식하리로다"는 번역은 원어에도 맞지 않고 문맥의 앞.뒤와도 맞지 않는 번역이다.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by their righteousness)"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에스겔 14:20)

개역개정: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에스겔 14:20)


히브리 원어에서 유사한 단어 두 가지가 있는데 "쩨다카(tsedaqa)"와 "미쉬파트(mispat)" 라는 단어이며, 이 두 단어는 각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미쉬파트"는 주로 심판, 법, 권리 등을 묘사할 때 사용하므로 justice(공의)라 표현하고, "쩨다카"는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하여 사용되므로 righteousness(의)로 표현된다.
여기 본절에 나오는 노아, 다니엘,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이었고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시면서 앞으로 내리실 큰 심판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 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사람은 노아, 다니엘,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 이다.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행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어본들은 "자기의 의로(by their righteousness)"라고 번역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은 "의(righteousness)"에 의한 것이지 "공의(justice)"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개역 성경이 바른 번역이다.

개역: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 3:17)

개역개정: "왕이여 우리가 섬기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 3:17)


본절 앞 15절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협박을 하는데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라고 하였다.
여기 17절은 그 왕의 위협에 대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의 대답이다.   즉 "만일 왕이 그렇게 하실거면(if it be so),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능히 우리를 거기서 건지실 것입니다" 라고 확고한 믿음으로 대응했다.
17절의 히브리 원어 성경을 보면 "헨 이타이(if it be so)"라고 했으므로 개역 성경은 그대로 "만일 그럴 것이면" 이라고 정확히 번역하였다.
개역 개정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면(if God exists)" 이라는 가정법 표현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의 신앙 개념이 아니며 본문에도 없는 표현이다.

개역: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2)

개역개정: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2)


헬라어 원문에 보면 그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으므로 영어 역본들은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개역 개정은 선지자들이 핍박 받은 자들이 아니고 반대로 박해자인 것처럼 오역하였다.

개역: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redemption)이 되셨으니"
            (고전 1:30)

개역개정: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salvation)
            되셨으니"   (고전 1:30)


헬라어 원문에 "아폴루트로시스"는 "buying back a slave or captive"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노예같이 매여있는 자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자유케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지불하시고, 그 사실을 믿는 자들을 죄의 사슬에서 풀어 자유케 하신다.
그것을 우리는 "구속(redemption)"이라고 하며 개역 성경은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여 "구속함"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개역 개정은 원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고 "구원함(salvation)" 이라고 했는데 헬라어로는 "쏘테리아(deliveranc)"이다.  
본문에 없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폴루트로시스(redemption)" 단어를 사용하였다.  

개역: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개역개정: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하나님은 믿음의 승리자들에게 면류관 주실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약속하셨다(고전 9:25, 빌4:1, 살전 2:19, 딤후 4:8, 약1:12, 벧전 5:4, 계2:10, 계3:11, 계 4:4,10, 계 6:2, 계 9:7, 계 12:1,3, 계13:1, 계 14:14, 계 19:12 등 등).  
거기에 사용된 헬라어가 "스테파노스"이며, 개역 성경은 승리의 상징인 이 단어를 한결같이 "면류관"으로 일관성 있게 번역하였다.  
그러나 개역 개정은 같은 헬라어 단어를 "면류관"으로 번역하는가 하면 단순히 "관"으로 번갈아 가며 번역하였다.  
심지어는 여기 계2:10에서 "생명의 관"이라고 번역한 동일한 원어를 약1:12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번역하였고,  
동일한 단어를 계 4:4에서는 "금관", 계14:14에서는 "금 면류관"이라고 하여 원어 번역에 일관성이 없으므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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