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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러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                     신광철 목사



차     례
Page 1  1. 서     론
 2. 훌러신학교의 신학적 배경
    1) 훌러신학교 창설자의 신학사상
    2) 신사도운동의 창시자 피터 와그너의 신앙관
    3) 교회성장의 아버지 맥가브란의 실용주의 철학
 3. 훌러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
    1) 창조에 기준하여
    2) 예수님의 사역에 기준하여
Page 2     3) 초대교회에 기준하여
    4) 사도 바울에 기준하여
    5) 고린도전서 14:34-35의 문제
Page 3     6) 디모데전서 2:8-15의 문제
    7) 일관성과 균형
4. 결     론





1.  서       론

      종교현황 뉴스 인터넷 매체인 Religion News Service가 2018년 10월 18일 기사에 보여준 미국내 기독교의 여성 성직자 통계를 보면 지난 20여년 동안 급격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1).   각 교단 별로 여성 성직자가 차지하는 비율(퍼센트)는 2017년 통계자료에서 아래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  

    유니타리안 교회(UU) = 57 %
    연합그리스도교(UCC) = 50 %
    제자교회(Disciples) = 40 %
    성공회(Episcopal) = 37 %
    복음주의 루터란(ELCA) = 37 %
    연합감리교(UMC) = 29 %
    미국장로교(PC-USA, 통합측 미국) = 29 %
    형제교회(Brethren Church) = 26 %
    하나님의 교회(CoG) = 25 %
    하나님의 성회(A of G) = 23 % 
    거룩운동 감리교(Free Methodist) = 20 %
    미국침례교(ABC-USA) = 13 %

      이상과 같은 세계 기독교 추세에 힘입어 한국내 기독교계에도 점차 기독교 여성주의자들(Christian feminists)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교계안에서 그들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2018년도 한국 기독교 교단 중에서 여성총대의 참여비율 통계를 보면 예장통합 2%, 기장 10%, 기감 12%, 성공회 18%, 복음 17%, 루터 4%로 나타나 있는데,  실제 여성 성직자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목사의 경우 상당 수가 교단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 활동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단법에 제재받는 일이 없어야 방만하게 자신의 활동을 소신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여년 기독교 역사에 전례 없이 19세기 초부터 여성 성직자가 출현하고 그 수가 날로 급성장한 것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여권신장론(Feminism)의 세력이 기독교 안에 영향을 미치면서 소위 기독교 페미니즘(Christian Feminism)이라는 명목으로 1973-1975년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2).

      교회 밖에서 초기의 여권신장론(Feminism)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선거권을 얻어내기 위해 투쟁하여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발전하여 모든 면에서 남성과 동일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다.   심지어는 인류평등주의(egalitarianism)를 주장하면서 결혼생활에서 남성의 가부장제(Non-headship Marriage)를 거부하는데까지 이른다 (3).   이러한 세속 문화가 기독교 안에 침투하면서 소위 복음주의 페미니즘(Evangelical Feminism)이라는 명분으로 교회에 뿌리를 내려왔다.   그 세력과 영향력이 기독교 안에 확장되면서 오늘날 여성목사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페미니스트(Christian feminists) 여성목사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관이 바로 신학교이다.   신학교 중에서도 보수신앙(conservative faith)을 지향하는 신학교는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석사(Master of Divinity: M. Div.) 과정에 여성 지원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자가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 가지는 것을 금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앙(liberal faith)이나 신앙의 중립적 자세(neutral attitude of faith)를 취하는 신학교는 남.녀 구별없이 목사양성 과정(M. Div.)을 통하여 목사가 되는 길을 열어준다.   그 신학교들 중에서 여성 성직자를 수십년 동안 가장 다량으로 배출하도록 영향을 끼친 신학교가 바로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라고 생각한다.

      Fuller 신학교는 전 세계 신학교 중에서 Top 10에 속한다고 Successful Student 웹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다.   Fuller의 특징은 세계 어느 신학교도 따라올 수 없는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무오성(The inerrancy of the Bible)에 대하여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신학적 중립(theological neutrality)을 유지함으로 전 세계 110개 교단과 90개국의 학생 단체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   그래서 선교학이나 교회성장학으로 명성있는 Fuller에서 학위 받기 위해 다양한 신앙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몰려온다.   2017년도 입학생 수가 2,463명이며, 그중 남학생 1,448명, 여학생 1,015이다 (5).   학교에 직접 오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넓혀 놓았으니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목사안수 받는 수는 날로 증가할 것으로 보여진다.

      Fuller 신학교는 여성목사를 배출하는 성경적 근거를 자체의 웹사이트에 사역에 종사하는 여성(Women in Ministry)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당화 하고 있다 (6).   그래서 필자는 Fuller신학교가 주장하는 여성목사의 당위성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왜 성경적이 아닌가를 설명하려고 한다.


2.  훌러신학교의 신학적 배경

  1)  훌러신학교 창설자의 신학사상

1947년 찰즈 훌러(Charles Fuller)와 함께 Fuller신학교를 창설한 해롤드 오켕가(Harold J. Ockenga)는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를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복음적 신앙의 관점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

            “그것은 현대주의(modernism)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사이에 존재하는 것” 이라고 하면서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
라고 하였다 (7).

      Fuller신학교가 초기에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 of the Bible)을 지지하는 듯 했지만,  창설자가 계획한 신학노선은 창설 때부터 이처럼 전통적 성경관을 떠나서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새로운 이론들을 개발할 것을 예고했다.   예를 들면,  훌러신학교의 싱크탱크(think tanks)에 속하는 랠프 윈터(Ralph Winter)는 성경의 새언약(New Covenant)를 무시하고 아브라함 언약(Abrahamic Covenant)를 주장하면서,  “지금의 신약교회는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해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새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바꾸고 “성경에는 오직 한 가지 언약만 존재하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 언약이다”라고 했다 (8).

      그리고 그는 현대선교를 아브라함 언약과 결합시킨 것을 비밀선교(Secret Mission)라고 하면서 세계미주선교본부(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창설하고 선교활동을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새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대치시키는 것은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갈1:8)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WCC의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경향에 맞추어 만인구원설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본다.

      오켕가(Ockenga)의 꿈은 창설 동료 훌러(Fuller)와 함께 Fuller신학교가 문을 개방하여 비복음적인 교회에 가서 목회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49년 거기에 적합한 신-복음주의자인 벨라 바사디(Bela Vassady) 교수를 영입하여 성경신학과 에큐메닉스(the Biblical Theology and Ecumenics) 학과를 신설하여 (9)  교파를 초월한 세계 교회주의(ecumenicalism)의 길로 향했다.   Ecumenicalism의 국제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가 1948년 암스텔담에서 제1차 세계총회가 열렸고 로마 카톨릭은 그 때부터 WCC에 옵저버로 항상 참석하며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Fuller신학교의 3대 학장인 데이빗 허바드(David Hubbard)는 로마 카톨릭과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카톨릭 대주교인 매닝(Timothy Cardinal Manning, Archbishop)을 Fuller신학교 예배시간에 강단에 세웠으며,  자신은 로마 카톨릭의 성 요한 카톨릭신학교(St. John’s Catholic Seminary)에 가서 강의했다 (10).

      에큐메니칼 국제기구인 WCC가 주장하고, 또 로마 카톨릭이 동시에 주장하는 세계의 “교회일치(only one church)”,  즉 “세계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 존재한다”는데 Fuller도 동조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 Fuller신학교는 불필요한 성벽을 파괴하고 필요한 교량을 건설하며 평화주의자로 기능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한다(We continue to train those who are able to demolish unnecessary walls, build much needed bridges, function as peacemakers)고 한다.   그러한 방침을 통해서 Fuller신학교는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한 가시적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10).   이것은 바로 아래와 같은 Fuller신학교 창설자 오켕가(Ockenga)의 신학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성경의 진리 성벽 까지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목표를 위한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여성목사 지지로 나타난다.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라고 하였다
(7).

      린드셀에 의하면 Fuller신학교 설립자인 촬즈 훌러의 아들 다니엘 훌러(Daniel Fuller)는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오켕카(Ockenga)의 보조원(assistant)으로 잠시 일하다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스위스 바젤의 신정통신학자(Neo-Orthodox Theologian)인 칼 발트(Karl Barth) 그룹에 가서 연구과정을 거친후 학위를 받고 돌아와 Fuller신학교의 학감을 맡았고, 그의 친구들인 스위스 바젤 동문들을 교수로 영입했다고 한다.   칼 발트(Barth)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았고,  그는 그의 저서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한다 . . .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실제로 말하고 기록한 단어에는 오류가 있다”고 하였으며 (11)“성경은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와 같은 것이다.   설교에는 많은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여전히 진리를 증거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람들의 구원을 확보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12).

      그런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다니엘 훌러(Daniel Fuller)는 성경의 내용을 두 부분으로 분류하여 계시의 성경(revelational Scripture)과 비계시의 성경(non-revelational Scripture)로 나누었으며  비계시의 성경에는 오류가 있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니엘 훌러는 성경 자체가 성경의 무오성을 교훈하지 못한다고 했다 (13).   Fuller신학교의 신학적 배경에는 이러한 발트(Barth)의 성경관이(Bible viewing perspective) 내포되어 있다.

      Fuller신학교는 1962년 경부터 이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데이비스 위어하우저(C. Davis Weyerhaeuser)가 주동이 되어 신학교 이사회와 교수들은 성경의 무오성(the inerrancy of the Bible)을 믿지 않았고,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고 하였다.   그 후 10년이 지난 1972년 Fuller신학교는 학교의 신앙신조에 포함되어 있던 성경의 무오성(the inerrancy of the Bible)을 삭제하고 성경에는 오류(errors)가 있다고 주장했음을 Fuller신학교 설립 당시 교수 네 명 중에 한 사람이었던 해롤드 린드셀(Harold Lindsell)이 그의 기고문에서 밝혔다 (14).


  2)  신사도운동의 창시자 피터 와그너의 신앙관

      교회성장의 아버지라는 맥가브란(McGavran)의 수제자였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1981년  맥가브란의 뒤를 이어 Fuller신학교  교회성장학의 주임교수가 되었고,  1982년에는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으로 이름난  빈야드 운동가(Vineyard Movement)이며  신-은사주의자(Neo-charismatic)인  죤 윔버(John Wimber)와 함께 Fuller신학교 내에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 이라는 학과를 신설하고 윔버는 객원교수가 되었다 (15). 죤 윔버는 1974년부터 4년간 Fuller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와그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치유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Pentecostal)과  은사주의(Charismatic)에 특히 큰 관심을 가졌다.

      그 후 윔버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1982년 Fuller신학교와 손잡고 "표적과 기사"의  치유전문 학과를 개설했다.   죤 윔버가 "표적과 기사의 능력사역"을 통하여 개발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운동을 가리켜서 와그너는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이라고 불렀고,  그가 저술한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이란 책에 처음 소개하였다 (16).   와그너는 이와 같이 신비주의 사상을 Fuller신학교에 도입했고 직접계시에 관심을 가지다가 나중에 직접계시를 주장했다.

      신-사도개혁운동(New Apostolic Movement)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의 싱크 탱크(think tanks) 멤버이므로  윈터(Winter)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취된  새 언약(new covenant)을 무시했다.   그가 주장하는 슬러건(slogan)에서 그것이 역력히 나타난다.   와그너(Wagner)는 예수님의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 비유(마9:17)를 인용하면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새 가죽부대(new wineskins) 안에 들어와야한다"라고 했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신-사도개혁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교회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와그너(Wagner)는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쓰자고 했는데 (17)  그것은  신-사도들을 통하여  신-사도행전(The New Acts of the New Apostles)을 다시 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본다.   Fuller신학교가 신앙신조에서 성경무오의 교리(the doctrine of biblical inerrancy)를 삭제한 이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신학교 교수진에 많이 투입되었고,  교내에서는 복음주의 페미니즘(Evangelical Feminism)이 확산되면서 수 십년간 신학자, 목회자, 및 교단에 여성목사 안수가 시행되도록 영향을 끼쳤다 (18).   와그너(Wagner)의 주장에 의하면 진정한 교회통치는  제2의 사도시대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고 "신-사도개혁운동"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CB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회의 통치가 마침내 제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2장에 언급한 것이며,
            교회의 터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19).   또 그는 언급하기를 "성경적 교회의
            통치는 1980년대  선지자의 은사  사역과 1990년대에  사도의 은사  사역이 인식되면서  제자리에
            찾아오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20).

      와그너(Wagner)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의 기존 기독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신-사도 시대를 맞이하면서 초대교회와 같은 은사들이 나타나며,  그 은사들이 방언, 예언, 기적 등으로 나타난다.   마치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다양한 성령의 역사와 직접계시가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Fuller는  신-사도시대를 맞이하여 시대와 문화에 맞는 목회자 양성에 여성도 포함시킨다.

      Fuller신학교의 신학개념인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적 교리를 외면하고 철학적 실용주의 개념으로 신학을 다시 진술한다.   그래서 그들의 신학 개념으로는 성경의 무오(inerrancy)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성경에 없는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와그너는 그러한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경을 무시한다.   그래서  와그너는  사도의 정의(definition of apostle)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자기는  성경이 말하는 사도의 증거들, 즉  고후12:12(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고전9:1(예수를 직접 본것),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타협이 안되는 그 성경구절들의 자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My reason for this is that I do not understand these three qualities to be non-negotiables....,)라고 하였다 (21).

      와그너(Wagner)가 자기는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그가?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아놓은 터가 아닌,   신-사도들이 닦는 새로운 터  위에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고 하는 와그너(Wagner) 나름대로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적 배경인 것같다.   시대에 맞지 않는 성경구절은 무시해도 된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이 바로  신-사도개혁운동의 특징이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 밖에서 활동하는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성경적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으로 무엇이든지 주장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적 교리를 떠난  신-사도개혁운동이라고 본다.   와그너(Wagner)는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각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로고스(logos)'와  '레마(Rehma)'를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오순절(Pentecostal)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았다. . .  '레마'는 성경의 66권(신.구약 전체)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계시로 간주된다"
라고 했다 (22).

와그너(Wagner)는  이것을 자신이 주장하는  직통계시의 근거로 제시하고, 그러한  직통계시에 의해서 그는 스스로  신-사도(new apostle)가 되었다 (23).   Fuller신학교 창설자 오켕가(Ockenga)가 자신의 신학적 방향을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라고 한 것처럼,  Fuller신학교는 “신학적 논쟁”“여성목사 문제”를 성경의 교리에 기준을 두지 않고 타협적인 실용주의 개념으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 하여 여성목사 안수를 인정하고 양산하도록 한다.   철학(philosophy)에 근거한 기독교 실용주의 사상은 복음이 전해져서 믿는 사람만 많아지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Fuller신학교가 지향하는 교회 성장이다.


  3)  교회성장의 아버지 맥가브란의 실용주의 철학

      Fuller신학교에서 교회성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도날드 맥가브란(C. Donald McGavran)은 교회성장학교(The Institute of Church Growth)를 1957년에 설립 운영하다가 1965년 훌러신학교와 합병하면서 훌러신학교 안에 세계선교부(The School of World Mission)로 자리매김 하였고 동시에 심리학부(School of Psychology)를 개설하였다. 사실상 맥가브란의 실용주의 철학이 신학교 최초로 Fuller에서 시작되었고 맥가브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방법에 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ruthless)가 되라고 사람들에게 교육한다.   만일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확장에 잘 활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집어치우고(throw it away),
            무엇인가 잘 활용되는 것을 취하라.   방법들(methods)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히(fiercely)               
            실용주의적(pragmatic)이며,  교리(doctrine)는  별개의 것(something else)이다."
(24)

      성경의 교리를 무시하고  철학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는 무엇이라고  경고하였는가?   "누가  철학(philosophy)과  헛된 속임수(vain deceit)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                                                                                                          ?

      위의 본문에서 보면,  철학(philosophy)은   1)  "헛된 속임수"와 같은 계열에 속하며,   2)  (믿음과 소망 등을) 노략(강탈)하고,   3)  수준이 낮은 초등학문에 속하며,   4)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   철학은  "그럴듯하게 보이는 학문체계(plausible system)" (25) 이기 때문에 그당시 거짓교사들은 철학을 가지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속이려고 한 것같다.   그들이 골로새교회에 철학사상을 끌어들이는 것은  "헛된 거짓을 기독교 안에 혼합하는 것(the empty deceit of philosophy blended with Christianity)"이며 (26)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는 것(as applied to theology)" 이었다 (27).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심리학(Psychology)을 공부하지 않고,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을 할 줄 모르면 목회가 안 되는 것처럼 목회개념이 변해버렸다.   이상으로 살펴본 Fuller신학교의 신학사상은:

        신복음주의 배경으로 중립적 신앙관에 따라 신학을 시대에 맞도록 재정립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새로운 사도시대(new apostolic age)이므로 시대에 맞지않는 성경구절은 배제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 이외에 신사도들에게 직접 계시를 주신다.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모든 실용주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교리는 별개의 것이다.

      기독교 세계선교활동과 교회성장에 중추역할을 하는 Fuller신학교는 그러한 신학의 중립과 철학의 실용주의를 여성안수 허용문제와 더불어 90개국 청년 기독교단체와 110개 교단에 소속된 수 많은 신학자, 선교사, 목회자들에게 인본주의 신학(humanistic theology)을 주입시키고 있다.


3.  훌러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

      Fuller신학교의 웹사이트에는 “사역에 종사하는 여성(Woman in Ministry)” (28) 란이 별도로 있으며 그 내용의 서론에서 언급하기를 신약성경이 성직사역에 대해서 약간 언급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는 목사안수에 관하여 특정된 교회 전통의 개념과 성경의 성직 개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여성 안수에 관한 현대의 논쟁은 종종 신약 성경에 반영된 교회 사역의 전체론적 개념의 중요하고 기본적인 쟁점을 놓치고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음에 전개되는 성경적 근거로서 Fuller신학교는 여성의 성직사역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Fuller신학교가 여성목사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는 성경적 주장에 대해서 필자는 그들의 항목별로 성경적 반론을 제기하려고 한다.   Fuller의 주장에 "번호"를 매긴 것은 원문에는 없으나 필자가 이슈별로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했고,  “훌러의 주장” 문장에서 괄호 속의 영문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Fuller의 영어원문의 부분을 삽입한 것이다. 지면상 영어 원문 기재는 생략한다.
(영어원문 참고: https://www.fuller.edu/womeninministry)

  1)  창조에 기준하여(The Basis in Creation)

훌러의 주장 1 :

하나님이 남자(man)를 창조하셨는데 히브리어로 “아담(’Adam=)“이며,  아담이란 그 명칭은 포괄적 표현으로 “인간(human person)”이라는 의미이다 (주 - 히브리어는 필자가 삽입하였고, 이후 헬라어도 동일함).   즉 “아담”이 란 말은 남자라기 보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뜻이다(창1:26-27; 5:1-20).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상호관계 신분을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남성우월 (male headship) 또는 여성복종(female submission)에 대한 암시가 없다.   남자와 여자는 차별없이 동반자 관계 인 것을 창세기 2장에서도 언급하였다.   하나님은 “아담(’Adam=)“ 이란 명칭에서 변경하여 남자를 “이쉬 (’ish=)“라 하시고,  그 동일 어원에서 여자를 “이솨(’ishshah=)“라 하여 성별의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정하신 것은(창2:23) 남녀 동반자 관계를 동등하게 연관시키는 것이다(relate as equals).   “살과 뼈”의 표현은 공유정체성(common identity)을 뜻하며,  그래서 “한 몸(one flesh)”이란 것은 남녀평등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현 이다.


성경적 반론 1 :

위의 주장은 일종의 언어 플레이(word play)로 보인다. 아담은 자기 몸을 통해서 여자가 창조된 것을 보면서 너무 감격하여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vya)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hva)라 칭하리라”고 하였다(창2:23). 아담은 그 여자가 자기 몸의 분신(a part of his own body)인 것을 보면서 그 여자는 자기에게 가장 가깝고 친밀한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남녀가 결혼하여 “한 몸(one flesh)”을 이루라고 결혼제도를 정해주셨다. (창2:24)

Fuller가 “남자와 여자 명칭이 동일 어원에서 ‘ish, and ‘ishshah”로 된 것과 “남녀의 살과 뼈 공유정체성이 남녀평등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 본문의 내용과 다르다.   성경이 말하는 “한 몸(one flesh)”의 내용은 남자에게 아내로 주신 여자와의 친밀한 관계성(intimate relationship)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남녀평등(gender equality)을 위한 공유정체성(common identity)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남자 “이쉬(’ish=)“의 어근을 비슷한 발음 “이쉬(’ysh)”로 본다면 그것은 Akkadian 언어의 “ishanu”와 연계되어 “강한(strong)” 이라는 뜻이 된다
(29).   그것을 뒷 받침하는 남자의 강성(strong)이 아래 성구의 예문에서 발견된다.

      삼상 4:9 = “불레셋 사람들아 . . . 대장부(=남자)가 되어라(be strong . . . like as men)”
      왕상 2:2 = “너는 힘써 대장부(=남자)가 되고 . . . (be strong, therefore, and prove yourself a man)”
      삼하 24:9 =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남자)가 팔십만이요( valiant men who drew the sword)”
      고전 16:13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be strong like men)”

위 성구에서 남자와 여자의 명칭인 “이쉬(’ish=)“와 “이솨(’ishshah=)“는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녀평등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위 예문에서 보듯이 남자 “이쉬(’ish=)“가 여성에 비해 남성의 강한 정체성(strong identity)을 보여주고 있다.   그 두 단어가 공유정체성(common identity)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정체성(identity)에는 여자가 공유할 수 없는 보다 강함(strong)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증명해주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으므로 남녀는 본질상 존엄성가치관을 동등하게 소유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그 자체가 인간의 기능지위역할등 모든 면에서 남녀평등(gender equality)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훌러의 주장 2 :

창2:18에서 “돕는 배필(helper)”이라고 한 것은 “남녀의 파트너관계(the woman partner with the man)”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 “돕는 자(helper)”라는 히브리 단어(’ezer=)는 구약 성경에서 다윗에게 적용한것 외에는 항상 하나님께 향한다.   그러므로 그 “돕는 자(helper)”란 단어를 여자가 남자에 대한 복종과 봉사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여자가 남자와 함께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the woman as helper serves God with man)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경적 반론 2 :

창2:18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를(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다.   이 문장에서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은 “남자(아담)을 위하여” 이다.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가 남자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라”고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창1:27-28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
      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 . 다스리라”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서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창2:24에서 보면 여자를 창조하시고 곧 그들을 결혼시켜 자녀를 출산하게 하셨다. (창2:22-24)   그것이 여자를 창조하시고 후손이 땅에 충만하게 하신 목적이다.   모든 생물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물에 암.수를 만드시고 명령하시기를 “번성하라”고 명하셨다.
Fuller는 Fuller신학교 창설자이며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를 제창한 오켕가(Ockenga)의 신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켕가가 주장한 대로 “시대의 요청을 따라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를 그대로 따라하며 자신들에게 편리한 대로 성경을 풀이하려고 한다.


훌러의 주장 3 :

여자와 남자가 함께 죄를 지었다(창3:1-7).   영어 번역본에는 없지만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 때 복수 대명사로 “너(you)”라 했다.   뱀의 유혹을 받아 여자가 선악과를 먹을 때 남자도 현장에 함께 있었고 또 함께 먹었다.   창3:6에서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것은 남자가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말하며,  복수 대명사 “너(you)”라는 문구가 영역본에는 없으나 사실은 남자와 여자가 파트너(partner)로서 함께 먹었고,  또 함께 하나님께 범죄했으므로 창3:7에서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라고 했다.


성경적 반론 3 :

창3:1-7에서 뱀이 여자에게 계속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 . . ” (창3:1), “뱀이 여자 에게 이르되 . . . ” (창3:4)   여기서 분명히 뱀은 여자 한 사람에게 말했다.   성경에는 여자가 아담과 함께 있었다 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 창3:17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 . . ” 이라 하셨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니고 여자의 말을 듣고 먹었다.   아담이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입증하신 것이고,  사도 바울도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it was?not Adam?who?was deceived)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라”고 증거했다. (딤전2:14)

Fuller가 애써 남자와 여자가 함께 파트너(partner)로 현장에서 동시에 범죄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자가 . . . 남자를 주관하는 것(exercise the authority over a man)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딤전2:12)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뒤집어 엎기 위한 목적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먼저 범죄한 여자에게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를 금지하는 핵심 성경구절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먼저 범죄하지 않고 남자와 함께 파트너로 현장에서 동시에 범죄했다고 주장해야 남자에게 목사안수 하듯이 동일하게 여성 목사안수(female ordination)도 떳떳이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뱀이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하며 여자를 속여 범죄케한 것처럼,  Fuller도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하며 여자들을 속여 금지된 목사안수를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Fuller는 이상의  “1) 창조에 기준하여(The Basis in Creation)”라는 항목에서 결론 내리기를 창1:1-3:7 의 기사는 창조 명령들(creation mandates)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남녀의 상호관계(the relationship of mutuality), 파트너관계(partnership), 평등의 관계(equality)가 묘사되어 있는데, 지금 슬프게도 죄로 인해 그 의미가 손상되어 있다고 정리했다.   Fuller가 위의 창조기사를 하나님의 명령(mandates)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본주의 사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것이다(downgrading the authority of God's Word).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한 피터 와그너의 모습과 흡사하다 (14)


  2)  예수님 사역에 기준하여(The Basis in Jesus' Ministry)


훌러의 주장 4 :

마19:3-9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하기를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for any reason)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절),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했다(7절).   그들의 이런 질문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었다.

예수님 사역 당시 여자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종속적 그리고 열등한(subordinate and inferior)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존재의 가치성을 확인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sexual put-down of women)에 이의를 제기하셨고,  그 당시 정당화 되어 있는 남자의 이혼특권,  즉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를 예수님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이 결혼제도에서 “한 몸(one flesh)”이라 하신 것(창2:24)은 남녀 상호동반자관계(mutual partner -ship)의 개념임을 알리시고 상기시켰다(마19:3-9).   예수님 당시 여자들이 모든 성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women were held responsible, in Jesus time, for all sexual sin), 예수님은 극적 고발로 남자의 성차별(sexism)을 거부하셨다.   (마5: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 였느니라.”)


성경적 반론 4 :

마19:3-9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하기를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for any reason)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절),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했다(7절).   그들의 이런 질문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혼문제에 대해서 두 종류의 힐렐(Hillel)파와 샴마이(Shammai)파가 있었다.   그것은 모세가 정해준 이혼법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에르바=hwr[)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신24:1)에서 “수치되는 일”의 히브리어 “에르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유대인간에 큰 논쟁거리였다.  

샴마이(Shammai)파는 이혼을 쉽게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히브리어 “에르바=)”를 “음난행위(indecency)”로 보았고, 힐렐(Hillel)파는 보다 자유스럽게 이혼할 수 있도록 히브리어 “에르바()”를 “보기 민망한 행위(some unseemly thing)”로 보았다
(30) 그 시대에 이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운 것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나쁜 의도로 이용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드리기 위해서 “(남자가) 무슨 이유에서든지(for any reason) 이혼해도 되는 가?”   즉, “남자가 마음대로 아내를 버려도 되는가?”라는 사악한 유도질문 이었다.   이 사악한 질문은 그 당시의 남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모세의 이혼법은 그들의 마음이 (출애굽 당시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할 정도로) 완악함으로 인해서 주어진 것이지만 본래 하나님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 하신 후  이혼의 정당한 조건은 “아내의 음행”이라 하시고(마19:9),  남자들도 “음욕을 품지말라”고 경고하셨다(마5:28).   마5:28은 예수님이 남자의 성차별(sexism)을 고발하신 것이 아니고 “여자의 음행”에 비교하여 “남자도 음욕을 품지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런데 Fuller는 마19:3-9에서 그 당시의 남자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sexual put-down of women)와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와 성차별(sexism)한 것을 예수님이 지적하시고 마치 그들을 정죄하신 것처럼 성경을 풀이하면서 예수님이 Fuller가 원하는 대로 남녀 평준화(gender equality)를 지지하신 듯이 성경을 해석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도 남자의 숫자만 적었다.   마태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되더라”고 기록했고(마14:21),  누가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었더라”고 기록하였다(행4:4).   Fuller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여자의 존재를 무시한 예수님의 제자 마태(Matthew)와 누가(Luke)는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와 성차별(sexism)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이 그렇게 성차별하도록 감화 감동 주셔서 남녀평준화(gender equality)를 못하게 하셨다는 것인가?   Fuller는 소위 기독교 페미니스트들(Christian feminists)의 입지를 높여주기 위하여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한다.


훌러의 주장 5 :

예수님은 버림받은 여인들에게 접근하셨다.   율법에 부정한 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12년간 생리문제를 가진 여인이 예수님 자신을 만지도록 허락하셨고(Jesus allowed a woman . . . to touch him = 막5:25-34),  죄인인 한 여인이 자신의 발에 기름을 붓고 발에 입맞추도록 허락하셨으며(Jesus permitted a sinful woman to anoint and kiss his feet =눅7:36-50),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셨다(마21:31).   예수님은 또한 간음녀로 알려진 여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다(요4:4-42; 요8:1-11).


성경적 반론 5 :

Fuller는 혈류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에게 예수님이 자신의 옷을 만지도록 허락하셔서 그 여인이 주님의 옷을 만진 것처럼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Jesus allowed a woman . . to touch him).   예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뒤로 돌아서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Who touched My clothes)?”라고 무리를 향해서 질문하셨다(막5:30).   성경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기록하였다(막5: 27-28).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뒤로 다가온 그 여인에 마음에는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자기 병이 치료될 것을 믿었다.   그녀의 믿음이 예수님께 접근하게 하였으므로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막5:34).   예수님이 여자에게 허락(allow)하셔서 그녀가 접근한 것이 아니고 그 여인의 믿음이 그녀를 예수님께 접근하게 하였다.

눅7:36-50에서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 추고 향유를 부었다”는 내용도 Fuller는 예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여인이 그렇게 예수님께 다가와서 행한 것처럼 성경을 왜곡한다(Jesus permitted a sinful woman to anoint and kiss his feet).   그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것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대한 높은 경외심과 복종을 의미하는 자발적 믿음의 표현(expression of voluntary faith)이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의 행위를 받으시고 그녀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Fuller는 예수님이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없애고 여성을 지지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일들을 여성에게 허락하신 것처럼 성경을 풀이하고 있다.   예수님은 여성들에게만 그런 일을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난 남자 삭개오(Zacchaeus)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착취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는 신앙고백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다(눅19:2-9).   또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죽어가던 한 강도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 구원을 호소할 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며 구원을 베푸셨다(눅23:41-43).   예수님은 삭개오, 또는 십자가의 한 강도에게 구원받을 고백을 하도록 먼저 허락하신 것(allow, or permit)이 아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믿음의 고백을 예수님이 받으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훌러의 주장 6 :

예수님 시대에 책임있는 교사들은 여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In Jesus’s day responsible teachers were not to teach women).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여자를 가르치시고 그들을 주님의 헌신적 제자그룹에 포함시켰고  베다니의 마리아에게 가르치셨다(눅10:38-42).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사역을 알리셨다(요4:4-42).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 있었고(요8:1-3), 이같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아침 현장에 있었다(눅23:49, 55-56, 24:1).


   

성경적 반론 6 :

Fuller의 주장은 예수님 당시의 책임있는 교사들(남자들)이 여자를 성차별하여 제외시키고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예수님은 여자를 상대로 가르치셨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Fuller가 말하고 싶은 위 문장들의 핵심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교육 현장은 회당이었다.   그 회당에서 랍비들이 율법을 낭독하며 교훈했는데 그 장소에는 남녀노소와 어린이를 포함하여 외국인들까지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차별이 전혀 없었다.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men and women and little ones, and the stranger who is within your gates)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신31:11-12).

위 본문에서 “그 택하신 곳” “성전”을 말하며, 예수님 당시는 “회당”이다.   유대 랍비들은 이 명령을 따라 회당 에서 남녀노소와 어린이들(men and women and little ones)에게 율법을 가르쳤다.   예수님이 12살 때 회당에 들어가신 것도 그러한 회당규칙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능했다(눅2:41-47).   예수님도 사역하실 때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고, 사도들도 역시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유대인의 회당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변함없이 온 유대인과 외국인들이 참석하여 교훈의 말씀을 들었고, 심지어 귀신들린 자까지도 회당에 참석했다.   유대인 교육에 남성우월주의와 성차별은 없었다.

        요18:20 = “(예수께서) 모든 유대인(men and women and little ones)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막1:21-23 =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 . .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 . .”

        행14:1 =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Fuller가 예수님 당시 책임있는 교사들이(유대인 남자 교사들을 의미) 여자를 가르치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며,  Fuller가 제시한 문장들이 가지는 목적은 남성우월주의와 남성의 성차별을 부각시키기 위한 인위적 성경풀이라고 생각한다.

   

훌러의 주장 7 :

여자들이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부활의 선포자가 되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에 복음 전하는 책임을 다하였고(요4:39-42), 모든 복음서(all the Gospels)는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선포한 이들이 예수님의 여성제자들(Jesus’s women disciples)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우리는 17명의 남성 이름을 안다.   그들은 12제자와 유스도라하는 요셉과 맛디아(행1:23), 나사로,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헌신적 제자들(his circle of devoted disciples) 가운데 우리가 아는 여성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 되지 않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 모친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 베다니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 고 살로매 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여성을 통한 사역을 포함하신 것은 초대 교회의 사역 자격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이 동반자 관계라(the partnership of women and men within its membership and ministry)는 강력한 증거였다.


성경적 반론 7 :

소위 기독교 여성주의자(Christian feminists)들이 교회 안에서 영적권위를 획득하여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꾸준히 남녀평준화(gender equality)를 성경적으로 합리화시켜야 한다.   Fuller신학교는 그 일에 앞장서서 선두 지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성경을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도록 억지로 짜맞추는 형세인데 위 성경해석이 그 것을 말해준다.  

    위 주장을 보면 Fuller는 여성들을 억지로 예수님의 제자()들 반열(Jesus’s circle of disciples)에 올려 놓으려고 애쓴다.   여성들도 사도들과 같은, 그리고 목사와 장로와 같은 위치에서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행사 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은 것이다.   Fuller가 여성들에게 적용하고 싶은 제자 개념과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 제자 개념은 확실히 다르다.   성경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도 제자()라고 하였다.

        행2:41 =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눅19:37 =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 .”
        요6:66 =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적 권위(apostolic authority)를 받은 제자() 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예수님이 선택하신 열 두 제자들 뿐이다.   그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 마태복음 28장에서 확인된다.   거기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왔다가 뜻밖에 천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천사들이 그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28:7).   그러자 이 여인들은 달려가는 도중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다.   그 때 예수님이 또 지시하시기를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 리라”(마28:10).   그 후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 했다(마28:17).   예수님이 남자 제자()들만 만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사역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그들 열 한 제자(maqhth")에게 내리셨다(마29:18-20).   이 때 사명을 받은 사람은 (가롯유다 빠지고) 예수님의 열 한 제자뿐이다.   이들이 진짜 예수님의 사도적 권위(apostolic authority)를 가진 제자들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그냥 심부름 하는 메신저 역할만 했고,  그 여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권위를 받은 제자들이 아니고 주를 위한 봉사와 헌신자들 이었다.   Fuller는 여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들 반열에 올려놓고 제자들과 동일한 사역의 권위를 가진 것처럼 왜곡한다.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제자 반열(Jesus’s circle of disciples)에 포함하려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발상이다.   로마 카톨릭에서 최고의 신학자요 철학자이고 성인의 칭호를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1274)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사도들 중의 사도(The Apostle of Apostles)”라는 명칭을 주었다 (31).   그들 전통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질 때 그 여인도 함께 따라 나섰으며,  로마의 디베랴스(Tiberias, 14-37 A.D.) 황제의 통치기간 동안 사도 바울이 로마에 올 때까지 그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32).   그래서 매년 7월 22일을 그녀를 기념하는 날로 정했는데 로마 카톨릭의 프란시스 교황(Pope Francis)은 2016년 7월 22일 그 날을 “축제의 지위(the status of Festivity)” 로 승격시켰다 (31).   Fuller는 로마 카톨릭과 함께 “교회일치”를 주장하는 에큐메니칼 활동에 동참하므로 로마 카톨릭처럼 막달라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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