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진리와 함께   미션신조   양서번역   참고자료   말세적 현상   기독교 교리   은혜의 찬송곡     www.voamonline.com



  구원이 가까울 때 복있는 자   (이사야 56:1-2)          


이사야 56:1-2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justice)을 지키며, 의(righteousness)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2 안식일(sabbath)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any evil)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이 세상의 끝이 오면 성도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   그 곳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신자들의 믿음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는 믿음의 특징을 가졌다.   그러한 믿음의 특징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잘라 말씀하셨다(마7:21).  세상에서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많이 하고, 기적을 행하며, 주의 일군으로 수고하였어도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과 구원의 완성이 점 점 가까워 오는 이 시대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복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행하는 믿음인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데 지켜야 할 것 두 가지를 지적한다.

1. 구원이 가까울 때 복있는 자는 공의(공평과 의)를 행하는 자이다 (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justice)을 지키며 의(righteousness)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 . . ."(1절)    

1)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로 구원 받았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 . .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사45:21).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적당히 넘기면서 봐주는 식으로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또 조금도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참혹한 죄인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며,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심판 받아 멸망에 들어갈 운명을 가지고 산다.   그것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아들을 죄 없는 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셨다(요3:16).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그의 죄를 다 담당하신 것으로 간주하시고 예수님의 깨끗한 "의(righteousness)"를 그 사람에게 부여하셔서 그를 의인으로 취급하시고 그를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사람의 죄 값을 치루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다.   그것을 바로 깨닫고 죄 용서함 받은 자처럼 바르고 의롭게(공의롭게)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의 사람이다.   그것이 마지막 때에(구원이 가까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자세이며, 그러한 신앙 자세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마7:21).

2) 왜 구원이 가까울수록 공의를 행해야 하는가?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배도의 일"-살후2:3)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며(직역: 어떤 형태로든지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2:3),  

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할 때에 동반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공의가 사라지는 것임을 구약교회가 멸망당할 시기에 보여주었다.   " . . .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 . .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사 59:13-14).
지금 세상에는 교회 숫자도 많아지고 교인 수도 점점 많아지면서 세계 복음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분서주 하고 있지만 막상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참 신자를 찾아보기 힘들 것을 미리보시고 예수님이 탄식하셨다(눅18:8).   그 이유는 그 수많은 신자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리켜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 = 아버지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 -21절)"
이라고 하셨고, 그들을 향하여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마7:23).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책망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울 때 공의(공평과 의)를 행하라고 하신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배도의 일"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뜻인데, 구약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할 당시에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 .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6).   예루살렘 성전 입구는 동편에 있고 지성소는 서쪽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지성소를 향하여 등을 돌리고 동편에 떠오르는 태양신을 향하여 경배하였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더 큰 가증한 일"이라고 하셨다(겔8:15).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가 그 지경이 된 것은 순전히 우상문화의 영향 때문이었다.   현대 교회도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항상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유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모은다는 명색으로 세상의 문화를 교회에 도입하고 예배에 적용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문화는 사람의 영을 사로잡는 우상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탄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토착화를 주장하면서 민속문화에 예수 이름과 복음이라는 말을 보태어 교회 안에 끌어들이고, 화음을 깨뜨리고 정신을 혼란케 하는 세속 음악의 비트를 소위 복음성가에 도입하여 교인들을 세뇌시키는 일들을 교회가 행하고 있는데 주님이 보실 때 탄식할 일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민족과 나라의 문화 속에는 종교적 배경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사탄의 주특기가 음악이므로(겔28:13) 음악을 통하여 교인들을 세뇌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약의 교회가 우상문화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배반한 내용들을 성경에 자세히 기록한 것은 말세를 만난 신자들에게 거울이 되게 하시고 경고하시기 위하여 기록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고전10:6,11).   이 시대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하며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본받아 살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지 아니하면 우상문화를 즐기게 되며, 그 습관은 자연히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거룩하게 구별된 무리)"라는 이름 답게 성별된 삶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도 안되고 능력으로도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님의 감화와 도우심이 따라야 한다(슥4:6).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깨닫게 하시고,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기도에 힘쓰자!

2. 구원이 가까울 때 복있는 자는 주일(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이다 (2절)

"안식일(Sabbath)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2절).      

하나님이 6일 동안의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시며 가진 안식(창2:2)은 영원한 안식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들어가는 영원한 안식의 예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고(눅6:1-5), 또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안식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마11:28).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안식이 약속되어 있다.   구약의 성도들도 그 영원한 안식을 그들이 돌아갈 고향으로 생각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믿음의 삶을 살았다(히11:13-16).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인간의 구속사이며 예수 중심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생의 산 소망을 주시려고 부활하신 날은 안식후 첫날(토요일 다음 날)이다.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는 신약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주일)"로 정하고 7일 중에 그 한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며, 그 날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찬을 나누었다(눅6:5, 눅24:13 ff, 요20:19, 행20:7).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은 신약에 와서 안식후 첫날(주일),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오늘 본문에서 "안식일을 더럽히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주일성수)"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1) 왜 주일(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가?

영원한 안식의 예표로 정해주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참 하나님을 알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가 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 하나님께 열심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다가 신앙의 실패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킬 때 비로소 그들이 믿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 안식일언약의 표징(sign)으로 주셨다고 하였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sign)을 삼았었노라 . . .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sign)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겔20:12, 20).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sign)이니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니라"(출31:13).

주일(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인 것과 그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의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경외할 줄)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참된 예배도 드리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졌다.  신약의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으며(마10:28), 사도들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한 신앙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였다(고후5:11, 고후7:1, 빌2:12, 히12:15, 벧전1:17, 계14:7).   7일 중에 한 날을 정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킬 때 우리는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며,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게 될 때 비로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일이다.   그 가르시는 장면이 요한계시록 22:11에 나오는데 "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하였다.   불의한 자와 거룩한 자로 나누어진다.   주일성수를 하지 아니하면 믿는 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의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거룩한 삶도 알지 못한다.   거룩이 무엇인지 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반대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대로 불의를 하고 . . . 그대로 더러운 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가 될 것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믿는 자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경은 말세에 사는 신자들에게 경고하기를 ". . .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히12:14).  사도 바울도 권고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하였다(고후7:1).  이 말씀이 우리의 새로운 다짐과 삶의 목표가 되게 하자!

2) 주일(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 있다

주일성수를 왜 하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위로와 즐거움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삶의 염려와 불안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서 위로와 즐거움과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사도 요한은 그 모든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였다(요일2:16).   그 모든 세상의 것들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문화에 도취하게 한다.   그래서 각종 취미에 미치게 하며 그 맛에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것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이유이며 우리가 영적으로 비참해 지게 하는 요소들이다.
또 삶의 염려와 불안 때문에 사로잡혀서 주일을 지키지 못하여 사업과 직장에 얽매이는 경우가 있다.  믿는 자들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벧전5:7).   왜 그렇게 주님께 맡겨야 한다고 하였는가?   그 이유는 ". . . .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He cares for you)", 즉 하나님께서 그 모든 염려의 문제를 돌보아 주신다는 약속 때문이다.   주일에 일을 하지 않더라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만나"이다(출16:1-35).   하나님은 만나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시는가?   ". . .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신8: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일성수하려고 힘쓸 때 하나님은 주일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대책을 세워주신다.   이 약속을 믿고 실행하면 믿음대로 되어진다(마9:29).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매력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며(고전7:29-31), 말씀대로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신8:3, 벧전5:7).   또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일성수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 있고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 . . ."(사58:13-14).

오늘 본문은 마지막 때에 사는 신자들이 참된 신앙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촉구하면서 두 가지를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의롭게 행하여 공의를 나타내는 것주일성수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므로써 경건 생활에 힘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롬13:11)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실감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신자는 구원이 가까울 때 복있는 자(the blessed)이다.



<보이스>


^ RETURN TO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