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진리와 함께   미션신조   양서번역   참고자료   말세적 현상   기독교 교리   은혜의 찬송곡     www.voamonline.com



  광야같은 세상에서   (시107:4-9)          


시편107:4-9
" 4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광야 사막 길에서는 사람들이 길을 잃고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광야 사막에는 어마 어마한 모래 폭풍이 불어와서 길들이 묻혀버리고 완전히 생소한 지형으로 바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늘 다니던 중요한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공위성에서 지형을 정확하게 오차 없이 판독하는 GPS가 있지만 옛날에는 자연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때 였기 때문에 그 같이 황당한 일들이 벌어져 여행자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광야 사막"이 바로 그런 배경이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은 말이나 나귀나 낙타를 타고 머나 먼 광야 사막길을 몇 주간 또는 한 달 이상 통과하는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위험이 따랐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식품과 음료수가 떨어져(민21:5) 쓰러져 죽는가 하면, 뱀이나 굶주린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았다(신8:15, 신32:10, 사13:20-21).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에 시달리고(렘4:11), 밤에는 안식처가 없이 들판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으며, 모래 폭풍(사21:1, 렘4:11-13)과 강도의 위험(렘3;2, 애4:19)을 만나 생사가 오락 가락하는 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크고 두려운 광야"(신1:19)를 통과하는 인생의 고달픔 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 사막과 같다.  그래서 우리 주위의 모든 환경은 우리를 건조하고 메마르게 하며 목마르고 굶주리고 피곤하게 한다.  육신이 지치고 마음이 내려 앉으며 영혼이 피곤하다.  삶의 현장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여 빠져나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사막 한 복판 가운데 홀로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놀란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일들이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으며,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인생은 마치 광야 사막길을 통과하는 것 같은데 우리 자신들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불안하고 초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 좌왕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광야 길의 인생을 확인한다.   광야 사막과 같은 세상을 마음과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잃어버린 바 된 인생은 자신의 지혜와 노력과 힘으로는 방황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광야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1. 인생은 광야같은 세상을 지나는 나그네이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4-5절)

애굽왕 바로가 야곱에게 "네 연세가 얼마뇨?" 라고 물었을 때 야곱은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대답하였다(창47:8-9).  여기서 야곱은 인생 전체를 "나그네길" 걷는 것으로 묘사하였고 그 기간을 "험한 세월"로 표현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인생을 광야 사막을 통과하는 나그네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지금 광야같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참 평안과 안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염려와 불안과 고난의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인생을 고백하였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욥14:1)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47:9)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욥5:7)
“오 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을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하는 나그네요,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는 자니이다" (창39:12-kjv)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명령들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시119:19-kjv)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11:13)


2. 광야같은 세상에서 바랄 것은 하나님 뿐이다

이 세상은 광야와 같기 때문에 불안과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차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는 메말라 가고,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사람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며, 말세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천재지변의 재난은 산다는 것 자체가 공포의 불랙홀로 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절망감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소망을 걸고 부르짖을 수 있는 대상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6절에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라고 하였다.  그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며, 오직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윗이 그것을 실감하면서 " (이 때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 (시39:7)라고 하였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어성경 앞 부분에는 "이제부터는" 또는 "이 때에" 라는 접속사 "아타()"가 있는데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어 있다.  다윗은 주위 사람들이 "헛된 일에 분요" 하며 삶의 가치관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이 때에" 오직 참 소망이신 하나님만 바라겠다고 다짐하였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히는 "이 때에" 우리들도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오직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서 "바라본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카와()"인데 "간절히 바란다", "인내로 기다린다"는 뜻이 있어서 한글 성경에는 두 가지를 다 적용하여 번역하였다.  그 동안 우리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겪으면서 당황하고 낙심하고 좌절감을 느꼈을지라도 우리는 "이 때에", 또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인가?  과거에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고 인내로 기다렸는가?

1)  우리는 광야같은 세상에서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된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37:24)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34:19)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카와" = )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 . . . ” (사40:31)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카와" = )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카와" = )" (시27:14)

2)  하나님은 광야같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진리로 지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카와" = )” (시25: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카와" = ) (원어는 이중으로 강조되어 있음=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니, 곧 내 영혼이 기다리니")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130:5)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시43:3)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107:20)

광야같은 세상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진리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건져내신다(시107:20).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눈으로 보고 느끼는 육신의 삶에만 위험이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위험한 영적 위험이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영적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때 진리의 말씀을 보내셔서 우리를 건져내신다.  영적 위기는 미혹의 영을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외에 다른 것으로는 영적 위기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럴듯 하게 변개하고 사람들을 속여서 멸망으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 그 위기를 발견하게 되고, 그 진리는 우리의 잘못을 고쳐주며, 또한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다.

3)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간다.

“여호와를 바라고("카와" = ) 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찾이하게 하실 것이라 . . . ." (시37:34)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희 하나님을 바라볼지어다("카와" = )" (호12:6)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카와" = ), 기다렸더니("카와" = )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 . " (시40:1-2)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곧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불순종한 사람들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지금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은 위험한 상태에 있다.  


3. 하나님은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7절)

옛적에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견고한 성(castle)이었다. 나그네처럼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지나가는 우리 인생들도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죄악 세상이 끝나는 날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놀라운 곳이 현실로 눈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계21:2).  사실 우리의 현재의 삶은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세계로 연장되어 영원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7절) 라는 말씀은 비유이면서도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영원한 영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과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그 곳에 도착하려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바른 길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시37:5).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시78:52)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 . . . "(사30:2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시25:12)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25:4)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사49:10)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바른 길" 밖에 없는데 그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14:6).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보여지는 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만 발견되는 소망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성경의 신.구약(66권)의 말씀은 모두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는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14:6).  성경의 신.구약(66권)은 우리가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길을 잃지 않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교훈들로 채워져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사탄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도 미혹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가도록 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일으켜서(마24:24)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삭제하거나, 보태거나,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스럽게 한다 <또는 "속임수로 다룬다">(고후2:17, 4:2).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큰 기적과 표적을 보이면서 더욱 심해진다(마24:24).   광명한 천사처럼 보여지고, 의의 일군들로 보여진다(고후11:14,15).   그래서 거기에 속아 미혹받은 자들은 "다른 복음"(고후11:4, 갈1:8)을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신자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하여 확정된 신.구약 성경(66권)을 깊이 깨닫고 분별하면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영적 분별력은 신기한 것을 보며 감동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때떄로 사탄이 사용하는 미혹의 도구이다.   영적 분별력은 기록된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데서부터 온다(히5:13-14).  기록된 말씀 속에 있는 그 바른 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진리이기 때문이다.   광야 사막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방황하지 않으려면 그 진리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나 거짓 사도들은 새로운 것을 자꾸 만들어 내면서 새 물결, 새 바람을 일으키고 전통적인 진리와 교리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매장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들을 사망의 길넓은 길로 몰아간다(마7:13-14, 눅13:24).   오늘날 그것이 기독교의 대세(trend)라고 본다.   마지막 때에 영혼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은 마치 광야 사막 길에 나타나는 살인 더위, 불 뱀, 굶주린 야생동물, 살인 강도, 모래 폭풍들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우리가 비록 그러한 광야의 위험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보호하시고(시61:7),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인도하신다(시78:52).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8-9절)



<보이스>


^ RETURN TO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