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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 골짜기를 바라보며   (요엘 3:14-17)          


요엘 3:14-17
" 14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17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베드로는 설교하는 중에 요엘서의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행2:17-21). 그것은 요엘 선지자가 증거한 말씀의 내용이 그 시대 뿐만아니라 말세를 향한 이중적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요엘 선지자는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 . .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 ." (욜3:15,16) 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날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도 역시 요엘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7,10) 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그 날을 가리켜서 "판결 골짜기(Valley of Decision)"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골짜기는 피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을 말하며, 판결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판결 골짜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며 그 골짜기는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 날에 하나님의 참 성도는 어떻게 되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3:16)라고 하였지만 베드로 사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도다"라고 하였다(벧후3:13).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판결 골짜기(Valley of Decision)"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들도 영적 판결(Spiritual Decision)을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은 감정에 너무 치우쳐도 안 될 것이며, 지식에만 의존해도 안 되며, 의지력만 앞세워도 안 될 것이다.   영적으로 바른 판단, 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 정, 의를 조화있게 사용하여 말씀에 기초한 균형있는 신앙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1. 신앙적 감정이 살아있어야 한다

신앙적 감정이 살아있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안다는 말이다.   육적인 느낌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그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마약이나 알콜을 통해서 기분전환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며 슬퍼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필요하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군중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라고 부르짖었던 것과 같은 감정이 필요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하였다(요삼1:3,4).   그것이 바로 신앙적 감정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실 때 매우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듭난 것도 진리의 말씀에 의한 것이며(약1:18),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 지기 때문이다(벧전1:22).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 지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미워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YES"하시면 나도 "YES", 하나님이 "NO"하시면 나도 "NO" 할 줄 알게 된다.   그러한 신앙의 감정을 가져야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과 진리를 아는 지식이 확실해야 한다

이방 종교인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정하는 것이다.   소위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가 믿는 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호세아 선지자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안타깝게 호소하기를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부르짖었다(호6:3).   말세에도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이 많을 것을 예수님은 미리 내다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마7: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종말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각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과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생긴다.   그러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간파하고 신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나님의 "판결 골짜기(Valley of Decision)" 앞에서 우리는 바른 판단(Right Decision)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진리를 아는 지식이 확실해야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다 함께 예수님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자!   "너희는 날씨를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표적(Sign)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16:3).


3.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우리의 인격 속에 있는 의지력은 본래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지식이 없는 의지력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의지가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의지력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지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훈련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권고하기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다(빌2:12).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는 것이다(약2:22).   우리는 사도 바울이 증거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 하는 것이다(고후10:5).   그러한 의지력이 우리 속에서 강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판결 골짜기(Valley of Decision)"를 내다 보면서 바른 영적 판결(Spiritual Decision)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증언한바 대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도다"라고(벧후3:13)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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