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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윤의 구원론   < 그리스도의 대속(Redemption)이 없는 기독교 >       한종희 목사



4.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구원의 사건이다    (김세윤, pp.31-51)

1) 예수의 품성론과 역할론



『 이번 장에서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라는 선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는 구원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선포를 많이 듣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됩니까? 우선 믿어야 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면, 왜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김세윤, p.31)



김 교수가 이 항목(31-51쪽)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해설하여, 예수의 품성과 역할을 밝혔다. 우선 이 항목(31-51쪽) 전체를 요약해서, 예수의 품성과 역할을 요약해본 후에, 예수의 품성(品性)과 역할(役割)의 각론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분석하여 해설하려 한다. 예수의 품성(what he is)에서는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인성(人性)만을 주장하였고, 예수의 역할(what he has done)에서는 육체부활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부활은 다만 “예수님의 주장이 옳았음”을 하나님이 인정하고, 제자들이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인간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예수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수의 죽음은, 죄인을 대속(redemption)한 죽음이 아니고, 자신이 먼저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모본이 되어준 죽음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김 교수가 말하는 구원은 십자가의 대속(redemption)으로 성취한 은혜구원이 아니다, 인간이 예수의 모본을 따라 순종하여 받는 행위구원이니, 인성이 회복되어져 받는 윤리구원이다. 이러한 윤리구원은 김 교수만의 구원관이 아니고, 자유주의 신학을 포함한 20세기의 모든 진보신학이 주장하는 구원관이다.


2) "인자"로 오신 분은 인류의 구원자이다 (김세윤, p.34)
      여기서 김교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다


먼저 인자라는 칭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자”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人性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예수님의 神性을 강조한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사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고대교회로부터 그렇게 가르쳐 오긴 했지만, 그 고대교회가 주로 희랍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자”라는 예수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희랍 사람들이 히브리어의 숙어가 무슨 말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바람에 고대교회로부터 잘못 가르쳤던 것입니다. 』 (김세윤, p.34-35)


고대부터 교회가 “인자는 예수님의 人性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의 神性을 강조해온”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고대 교인들이 주로 히브리어를 모르는 헬라인들이었기 때문에, 잘못 가르쳐온 교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신인양성(神人兩性}의 교리를 선포했던 사람들은, 헬라인이 아닌 유대인 사도들이었다.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하였고, 교부들이 사도들의 증언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김 교수가 헬라인들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김 교수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것”은, 기독교를 총체적으로 부정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 김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엄청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신인양성의 메시아임을 주장하신, 예수님의 메시아의식을 착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신인양성을 증언한 성경을 신화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신인양성을 증언했던 사도들을 거짓 증언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작성하고, 고백한 교부들을 미신의 신봉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고백해온 2천 년간의 교회사를 부정하여, 배교(apostasy)하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의 현대신학(신정통주의, 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은 창세기 1-3장이나, 성령수태나, 동정녀탄생이나, 시신부활과 같은 성경기록은, 신화와 전설이 섞여 쓰인 신비나, 은유나, 설화로 보지만, 이러한 사실을 들어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러한 내막을 알 수가 없음으로, 보수주의나 정통주의로 혹은 청교도신학으로까지 믿어 안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神性을 부정하면, 성서와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인성뿐이면, 기독교가 불교와 같아진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 메이첸(Machen)이 1923년에 18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책을 써서, 예수님의 神性을 부정하는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님을 말했듯이, 김 교수가 예수님의 神性을 부정한 것은, 김 교수의 신학이 기독교가 아님을 말해준다.

G. Machen이 1923년에, “Christianity and Barthianism”을 출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가 아님을 외쳤을 때에, 미국장로교(PCUSA) 총회는 같은 해에, 5대 근본교리에 서명하는 자에게만 목사안수 하기로 결의하였으나, 같은 해에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던 목사들(1,273명)이 뉴욕 Auburn 시에 모여, 총회 결의를 거부하기로 공포하였다. 그러자 총회는 1926년에, Princeton 신학교는 1929년에, 각기 오번 선언(Auburn affirmation)을 수용하기로 결의하여, 총회가 자유주의 교리를 수용하였다. Machen(1881-1937)이 25세부터 23년간 교수하던 Princeton 신학교를 1929년에 떠나, 같은 해에 Westminster 신학교를 세웠다.

현재는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多元主義)가 확산 중이다. 다원주의 신학은 “모든 종교는 동등하다”고 하여, 세계 종교의 연합을 주장하고, 정통신학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하여 배격한다. 그러므로 21세기에는 절대주의와 배타주의를 사수하는 근본주의나 정통주의는 설 땅이 없다. Carl McIntire와 Faith 신학교가, H. Ockenga가 주도하던 NAE 타도를 외치다, 도리어 역습을 받고, 1985년에 신학생이 없어 문을 닫은 사건은, 정통주의와 근본주의의 최후를 알리는 적신호로 보아야 한다. 1980년대 이후로는 복음주의 신학만 살아남고, 근본주의나 정통주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1990년대부터는 종교 다원주의가 최후에 남은 적자(適者)가 되었다. 종교 다원주의는 로마 가톨릭이 1965년에 제일 먼저 신호탄을 띠웠고, John Stott가 1992년에, Billy Graham이 1997년에 각기 종교 다원주의를 21세기의 공식적인 종교로 선포하였으며, WCC는 여러 종교들의 합동예배 형식으로 훨씬 앞서서 다원주의 운동을 펼쳤다.

1.  가톨릭 제2 바티칸 공의회 19 가 1965년에 다원주의의 구원을 먼저 선포하였다. 20
2.  John Stott 목사가 1992년에 쓴 책에서 다원주의의 구원을 선포하였다. 21
3.  Billy Graham 목사가 1997년 Robert Schuller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종교 다원주의의 구원관을 기독교의 구원으로 선포하였다. 22

John Stott는 Billy Graham 목사의 주재 하에 소집되었던 스위스 로잔대회(1974) 23 의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을 작성한 사람이고, 기독교계에 혜성 같은 인물이다. Billy Graham목사는 1957년 뉴욕집회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유니테리안(Unitarian) 24 과, 자유주의 지도자들을 공식적으로 초대하고 연합하여 25, 일찍이 다원주의의 길을 걸었다. 본서에서 필자가 해설한 Billy Graham을 읽어보라. Graham은 1965년(47세)에 출간했던 World Aflame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체부활과 공중재림을 부정하였고, 지상천국을 선포하였다. Graham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자유주의 신학에 확정적으로 정착한 것이 1949년(31세)였다.26 그의 자서전(Just As I Am) 27 에 의하면,. 그가 근본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Bob Jones 대학이 싫어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가르치는 Florida Bible College로 이적한 것이 1937년 19세 때의 일이다.


3) 인자의 칭호는 "그 '사람의 아들' "이다


『 예수님은 스스로 “주다,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칭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칭호를 사용하여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하면, 그런 신앙 고백들을 받아드리기는 하셨지만, 직접 그런 칭호를 사용하면서 자기를 나타내 보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항상 사람의 아들’” 28 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마16:13-20). 그러므로 예수님이 독특하게 사용하신 이 칭호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또는 예수님 스스로가 가져온다고 주장한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사이에 이 칭호에 대한 연구가 최근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김세윤, p.34)


  김 교수는, 예수님 스스로는 자신을 가리켜 “주다,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칭호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었으며, 예수님은 자신을 “그‘사람의 아들’”로 칭하였다고 하였다. 결국 김 교수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칭호는 “주다,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이다”가 아니고, “그‘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진정한 칭호인 “그 ‘사람의 아들’ ”의 뜻을 알아내자고 하였다. 그분의 칭호를 알게 되면, 그 분이 주시는 구원의 성격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의 해설에서 김 교수는 “그 ‘사람의 아들’ ”은 “신인양성(神人兩性)”이 아닌 “보통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김 교수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주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재판 석에서,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에, “내가 그니라”고 답하였으니, “예수님의 神人兩性”을 묻고 답한 것이다. 다음의 대화는 神性을 물었고, 神性을 답했고, 神性을 트집 잡아, 챔 뱉고, 주먹으로 쳤음을 말해주는 대목들이다.


『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라고 하였다. (막14:61-65; 마26:68; 눅22:70).


재판정에서 “네가 찬송 받을 자(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에,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답하였기 때문에, 공회는 이 자백을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한 죄”로 정죄하여, 사형키로 판결하였으니, 사람들이 침 뱉고, 돌 던진 사건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라는 호칭사용 때문이었고, 공회의 모든 관심도 호칭사용에 있었다. 결국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메시아의식은 분명하였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했을 때에도, 옳다 하셨고,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마16:16-20). 그러므로 김 교수가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주다,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칭호를 말한 적이 없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메시아의식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을 부정한 것은 억지 주장이다.


4) "그 '사람의 아들' "은 보통 사람이다

이 칭호, “그 ‘사람의 아들’ ”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이 이 칭호를 사용했을 때에, 어떤 의미를 내포시켰는가? 김 교수는, 이 칭호는 神性이 없는 보통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더러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에 “그”라는 관사를 붙인 표현, 즉 “그 ‘사람의 아들’ ”을 하나의 칭호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이상하게 느끼기까지 하는 이 칭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푸는 열쇠는 “그”라는 지시 관사에 있습니다.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셈족 언어의 숙어입니다.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이 표현에다 예수님이 “그”라는 관사를 붙임으로서 자기가 어느 특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그리하여 “그”라는 관사와 더불어 “사람의 아들”은 하나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 (김세윤, pp.35-36)

『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 ”이라 하였을 때, 그리고 종말에 구름 타고 천사를 동반하고 와서, 이 세상을 심판하는 이로 나타난다고 하였을 때, 분명히 다니엘 7장 13절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신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서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사람 같이 생긴 신적 존재가 7장 18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하에 해석되어 있는데, 그 분이 종말 때에,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한 것은, 자기가 바로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고 대표하는 분이심을 미리 나타내신 것입니다. 』 (김세윤, p.37)



A. "사람의 아들"은 보통 사람을 뜻한다고 하였다

김 교수가, “사람의 아들”은 특별한 뜻이 내포된 칭호가 아니고, 단지 유대문서에 흔하게 나타나던 셈족언어의 숙어일 뿐이며, 보통사람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한 사람”에다 “그”라는 관사를 붙여서, 자기가 어느 특정한 역할을 감당할 사람임을 나타낸 것이므로, “그‘사람의 아들’”이 예수님의 칭호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이 만들어낸 칭호라고 하였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사람의 아들”의 본성(nature)이 보통사람이라고 하였으니, 특별한 역할이 더해졌어도, “그 ‘사람의 아들’ ”의 본성(nature)은 역시 보통사람인 것이다. 김 교수가 두 번째 인용문에서,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칭한 것은, 다니엘서(7:13,18)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하였다. 단7:13,18을 보면, 환상 중에 구름을 타고 오는 자가 있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타나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구름 타고 오는 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은 예수님 자신이 창조하고 대표할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대표할 자신의 역할을 정관사 “그”에 담아서, 자기의 이름을 “그‘사람의 아들’”로 호칭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여, 대표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여, 대표자가 되는 역할보통사람으로서 행한 역할이므로, “그 창조행위와, 대표자의 행위”도 초자연과는 무관한 보통 사람의 행위이다.

  예수의 창조의 역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구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첫 아담의 불순종에 반한 “마지막 아담”(종말의 아담)으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옛 창조의 조상 아담이 지워준 숙명,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뒤틀린 관계를 청산하고, 그가 새 창조의 조상으로서 회복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참여시켰기 때문입니다(롬5:12-21). 」 29


첫째 아담이 순종에 실패한 것을,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가 순종에 성공하여,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뒤틀린 관계를 청산함으로서, 새 창조의 조상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참여시켰다고 하였으니, 예수의 창조적 역할이란, 먼저 순종함으로 모본을 보여, 제자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역할이었다. 이 순종하게 하는 역할은, 윤리의 모본을 보인 선생의 역할이므로, 다니엘서의 인용도 모본을 보인 선생의 역할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김 교수에게는 그리스도의 역할이 선생으로서 모본을 보인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김 교수에게는 다니엘서가 어떤 책인가? 김 교수가 이미 앞에서 그리스도의 神性을 부정하였으니, 환상 중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神的인 활동은 전설화 신화를 섞어 쓴 고대소설(geschichte, 설화)로 볼 뿐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이 믿는 예수님의 역할은, 순종에 있지 않고, 대속(redemption)에 있었으니, 순종은 구원이 아니고, 대속으로 구원받은 자가 맺히는 열매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백성의 대표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 교수가, 그리스도를 하나님 백성의 대표자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인용문이 답변을 주고 있다. 인간이 실패했던 순종을, 보통 인간인 그리스도가 순종에 성공하여, 불순종으로 뒤틀렸던 관계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 백성의 대표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김 교수의 주장은, 기독교의 구원을 순종으로 보았고, 하나님과의 뒤틀린 관계회복을 순종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순종에 성공하여 대표자가 되었다고 보았으며, 대표자를 따라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구원받는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대속으로 보지 않고, 순종으로 보았으니, 기독교가 근거하고 있는 구약과 신약이 주장하고, 아담이후 지금까지 교회가 지켜온 대속의 구원을 폐기하고, 윤리구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기독교의 대속의 구원을 윤리구원으로 전환한 것은, Karl Barth 이후 현대의 모든 진보주의 신학이 철저히 지켜온 구원관이고, 20세기 말에 와서는 윤리를 구원으로 하는 모든 타 종교와 연합하여, 통일종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다원주의로 발전하였다.

B. 다니엘서의 환상의 의미

예수님이 “그 ‘사람의 아들’”이란 칭호를 사용한 것은, 구약 다니엘서의 환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김 교수가 다니엘의 환상을 “실제의 기적”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으로, 사람들이 해석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곡해이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본대로, 김 교수는 “영생”의 해설에서 내세를 부정하였고, “인자의 호칭”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으니, 예수의 神性과 來世와 永生을 부정하는 김 교수에게는, 기적(miracle)에 해당하는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신학은 물론이고, 김 교수에게는 다니엘서의 환상은 설화(고담, 전설, 신화)나, 소설(fiction)이지만,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아니할 뿐이다.

5) 예수는 부활로서 메시아로 등극하였다고 하였다

예수는 부활하여 메시아로 등극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김 교수가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한 말인가? 결코 그럴 리가 없다. 김 교수는 앞에서 누누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구원론에서, 사망론에서, 그리스도의 품성론에서 반복하여 주장했으니,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에서 살아난 육체부활을 말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부활로서 메시아로 등극했다는 주장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진정한 메시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세윤, pp.134-140)
김 교수는 바울의 메시아관을 소개함으로 답변하였다(pp.145-148). “그리스도가 성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되었다”(고전15:3-5)고 제자들이 선포하던 복음을 바울이 받아드렸으므로, 바울이 이 복음을 어떠한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알면, 바울의 메시아관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김 교수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메시아관을 제시하였다(pp.146-149).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고(롬1:9), 「하나님의 아들」을 “롬1:3-4”으로 해설하였다고 하였다.   < 롬1:3-4 = 「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 >   김 교수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거나 일으켜져서,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또는 등극되셨습니다. . . 예수가 왕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그리고 권세를 잡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씨(아들)로서 권세를 아직 완전하게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부활로 인해 그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만유의 주로 등극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장 3-4절의 신앙고백입니다. . . 바울은 이 신앙 고백을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이 ‘복음’을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고 합니다(롬1:2). 그런데 무슨 예언의 성취라고 말합니까? . . . 예수의 부활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씨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자기 우편 왕위에 등극하게 하여 자기 아들로 확정하셨으며, 만유의 주로 군림하게 하셨다.” 바울은 지금 이것을 복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 (김세윤, pp.147-148)


김 교수가 이 항목 바로 앞에서(① - ④)는, 예수의 품성이 신인양성(神人兩性)이 아니고, 보통사람(單性)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렇지 아니한 것처럼 말하였다. 즉 나사렛 예수가 부활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고,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여, 메시아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며, 만유의 주로 등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글은, 김 교수가 말한 그리스도를, 신인양성을 겸하신 메시아로 생각하게 한다.

독자들이 김 교수의 부활 해설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마치 무덤에서 시신이 살아나온 육체부활인 것처럼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가 바로 앞에서 말한 예수님의 품성론과 호칭론에서 이미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였으니, 김 교수의 신학에는, 시신이 무덤에서 살아난 육체부활은 없다. 그러면 정통신학처럼 쓰인 이 문장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글은, 김 교수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림언어(metaphor, 은유)로 말한 것이니, 독자들도 그림언어로 읽어야 한다. 김 교수는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말할 때에는, 실화(nonfiction)나 역사(history)로는 말하지 않고, 그림언어로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내막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이 모르고 지나친다. 그림언어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그림(shell)이 있고, 그림 속에 실체(reality)가 있다. 김 교수가 인용문에서 부활체의 그림(shell)만 말하고, 실체(reality)는 말하지 않았다. 부활체의 실체는 다음 항에서 해설하였다. 즉 다음 항목, “부활론”에서, 예수의 부활은, 무덤에서 살아나온 육체의 부활이 아니고, 단지 “예수의 교훈과, 구주라는 주장이 옳았음”을 하나님과, 제자들이 인정했음을 뜻한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부활체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부활하고, 승천하여, 왕으로 등극했다”는 주장은, 육체부활과는 무관하고, 단지 “예수의 교훈과, 구주라는 주장이 옳았음”을 제자들이 확신한 나머지, 순교하면서까지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교훈을 전파한 것을 말한다.

A.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구원의 성격

김 교수는 화제를 부활에서 구원론으로 옮겨, 그리스도가 가져올 구원의 성격을 규명하였다.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신 없는 인성만으로 규정하였으니, 이제 단성(單性)뿐인 인자(“그 ‘사람의 아들’ ”)가 가져올 구원의 성격을 규명할 차례이다. 그리스도가 가져올 구원에 대한 진정한 징표는 무엇인가? 예수가 행하신 표적에 있다고 하였다. 김 교수는 “5천 명을 먹인” 표적을 예로 들었다(pp.149-154). 김 교수의 해설 중에서, 핵심적인 두 곳을 여기에 적는다. 첫 번째 인용은, 성서가 말하는 표적(sign)을 소개한 것이고, 두 번째 인용은, 표적(sign)에 대한 김 교수 자신의 해설이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월절 무렵에 오천 명을 기적으로 먹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출애굽의 구원을 기념하면서, 종말에 있으리라고 기대된 제2의 출애굽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그 계절 곧 유월절에, 예수께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김세윤, p.149)

「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먹은 그 만나가 구원이 아니었다. 그것을 먹어도, 너희들의 선조들은 다 죽었지 않느냐? 너희들은 지금 나에게 모세가 가져다 준 정치적 자유, 경제적 풍요, 사회적 정의 등을 이루어 주는 메시아가 되라고 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니다. 너희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은 다시 배고프게 되고 죽는다. 그것들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구원은 되지 못한다. 내가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은,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모세가 행한 제2의 출애굽을 이루겠다는 표적(sign)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을 가져다 줄 것에 대한 표적(sign)이다.” 」 (김세윤, pp.150-151)


김 교수는 5천 명 먹인 사건을 표적(sign)이라고 하였다. 표적(sign)은 “A는 B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5천 명 먹인 사건은, “현실에서(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모세가 행한 제2의 출애급을 다시 이루겠다는 뜻이 아니고, 하늘의 양식을 가져다 줄 것을 뜻한다고 하였다. 문제는 하늘의 양식이다. 하늘의 양식은, 예수께서 3년 동안 가르친 교훈과, 모범적인 삶을 뜻한다. 결국 예수께서 5천 명 먹인 사건은, 하늘의 양식 곧 그리스도의 교훈과, 모범적인 삶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양식이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 교수가 주장한 구원관에는 중대한 문제가 깔려있다. 하늘의 양식(교훈모범적 삶)이 가져오는 구원은, 타락한 인성을 회복하는 행위구원이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대속(redemption)으로 성취한 은혜구원이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은혜구원과 행위구원이 기독교와 이교를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2천 년간 행위구원을 이교와 배교행위로 규정해왔는데, 김 교수는 이미 앞에서 은혜구원을 폐기하였고, 행위구원을 기독교의 구원으로 주장하였다. 즉 일원론적(一元論的)인 현실의 구원만을 주장하였고, 현실내세를 합친 이원론적(二元論的)인 구원관을 폐기하였다. Karl Barth는 二元論的인 구원관을 사수하는 정통신학을 저주를 받을 자, 묘지에 처넣기 위해 밀쳐진 자로 저주하였고 30, John Stott도 같은 이유로 정통신학을 광신자, 마귀, 원수라고 하여 저주하였다 31.
김 교수는 그리스도께서 5천 명 먹인 사건도 그림언어(metaphor)로 보기 때문에, 이 그림의 실체(reality)를 하늘의 양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으니, 5천 명 먹인 사건도 기적으로 볼 수가 없었고, 실화(nonfiction)나 역사(history)로 볼 수가 없었다.

B. 오해하기 쉬운 표현들

김 교수가 메시아 해설에서 사용한 표현들 중에, 다음의 표현들은 그리스도를 신인양성(神人兩性)의 메시아를 말한 것으로 곡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니,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만유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의 어좌에 높임을 받아 왕 노릇 하는 분이라(p.147).” 이 표현은, 은유(그림언어)의 표현으로서, 보통 인간 예수를 한껏 높인 표현일 뿐, 그리스도의 神性을 말한 것이 아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거나, 일으켜져서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또는 등극되셨습니다.”(p.147) 여기서 말하는 부활도, 그림언어로 그린 그림일 뿐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은 것”은 그림언어(은유비유)의 껍질(shell)에 해당하고, 이 그림언어의 실체(reality)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림언어(은유비유)에서는 반듯이 껍질은 버리고 실체만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메시아를 정의하여,「예수가 부활로서 왕으로 등극한 것이고, 만유의 주로 등극한 것이다.」라고 말했는데(pp.147-148), 왕, 만유의 주, 등극은 다 인류에게 미칠 위대한 정신적 영향력을 말한 것이고, 「神人兩性」을 겸전하신 만왕의 왕이나, 종말에 철장을 갖고 재림하여 세상을 불로 심판할 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김 교수의 신학에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구원과, 품성에 대한 김 박사의 긴 해설을 읽었다.

⒜  악과 고난을 죽음으로 보았고, 악과 고난과, 재원의 결핍에서 해방 받음을 구원으로 보았다.
⒝  永生을 현세(現世)로 한정하였고, 신적인 풍부함을 누리는 삶을 구원으로 규정하였다.
⒞  예수의 양성론을 배격하고, 인자(그 사람의 아들)를 神性 없는 "보통사람"으로 한정하였다.
⒟  예수의 순종을 모방한 순종의 삶, 곧 인성회복을 기독교의 구원으로 규정하였다.

김세윤 교수의 신학이 내세나 기적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히 들어났지만, 김 교수가 인용문에서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언약, 언약의 백성, 새 언약, 하나님을 의지함, 하나님께 순종함 등의 표현들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기적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김 교수 신학의 전제(presupposition)를 무시하거나 망각할 때에 온다. 기적불신이 김세윤 신학의 전제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 전체가 기적불신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J. Calvin(1509-64)과 J. G. Machen(1881-37)은 만물창조와 성서무오를 전제하였기 때문에, 만물창조와 성서무오의 교리가 그들의 신학 전체를 관통하였다.




            Note

18. Machen, J. Gresham, 1881-1937, 미국 태생, 프린스턴 신학 교수(1906-1929),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창립, 교수(1929-1937),
     기독교 변증서 저술 - 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23).
19. 제2 바티칸 공의회(2nd Vatican Council, 1962-1965),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함. 4회 소집되어 신앙고백을 작성, 공고하였다.
     1차소집, 1962년 10월 11-12일, 2차소집, 1963년 9월 29일-12월 4일, 3차소집, 1964년 9월 14일-11월 21일,
     4차소집, 1965년 9월 14일-12월 8일.
20. Gaudian et Spes, para, 22; J. Stott, The Contemporary Christian, pp. 297-298; 한글역,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pp.378-380
21. John Stott, The Contemporary Christian, pp.298-305, IVP, 1992; 한화룡-정옥배 번역,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pp.380-388, IVP 1993
22. www.outsidethecamp.org/heterodoxy52.htm
23. 노잔대회(Lausanne Congress)는 Billy Graham목사의 주재 하에, 142명의 지도자들이 스위스 Lausanne에 소집하여,
     10일간 계속된 대회이며, 150개 국가에서 3000명이 참여하였고, John Stott가 작성한 노잔언약(Lausanne Covenant)을
     선포하였으니, Billy Graham과 John Stott는 노잔대회의 주역이었다(Nelson's New Christian Dictionary
     by G. Thomas Kurian, Editor).
24. 유니테리안 - 인간창조, 그리스도 신성, 하나님 계시, 내세, 인간타락 등을 불신함(신학사전, 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25. www.wayoflife.org/fbis/subscribe.html, email-fbns@wayoflife.org
26. Newsweek, Aug. 14, 2006, Billy Graham in Twilight; www.newsweek.msnbc.com
27. Billy Graham, Just As I Am, pp.40-41, Harper Collins Zondervan, 1997
28. 성경(마16:13)의 인자(the Son of Man)를 한국어로 고쳐 말하면, "그 '사람의 아들'" 이다.
29. 김세윤, 복음이란 무엇인가?, p.37, 두란노, 2006
30. Karl Barth, Dogmatics in Outline, pp.31,34
31. John Stott, The Contemporary Christian, p.375; 한역,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pp.477-478,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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