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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빌립보서 3:12-14)          

빌립보서 3:12-14
"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어느 가정의 아버지가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차고 한쪽 구석에 커다란 박스 하나를 발견하고 열어보았다.   운동경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과거에 상으로 받은 트로피들과 메달들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채 쑤셔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혼자 생각했다.   "이 녀석이 저것들을 얻으려고 그렇게 땀흘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시간을 보내었는데  이제는 쓰레기 취급하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지?!!"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인생도 모든 것이 그와 같이 허무한 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며 마지막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처럼 허무한 인생을 마감한 후에 찾아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하였는데  아름답고 영원한 세계를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소망를 가지고 그 날을 향해 다가간다.   사도 바울은 그 놀라운 세계를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라고 하였다(고후4:16).   그래서 그는  본문 앞에 나오는 7-8절에 보니까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 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라고 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세상의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무개야, 세상 고생 이젠 그만하고 여기 오너라" 고 부르신다면,  우리는 즉시 세상을 떠나 그에게로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부르심의 소망" 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가지게 된 성도들은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하겠는가?  


1.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려면,  과거를 잊어버려야 한다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도 바울은 인생이 노력하고 애쓰는 삶을 마라톤 경기에 비유하였다.   골인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마라톤 선수가 좌.우 살피고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하듯이,  성도들도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신앙생활 하여갈 때 세상 재미에 맛을들이거나,  지내온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돌이킬 수 없다.  과거에 실패한 일이나,  마음에 상처받은 일들을 회상하면  후회하거나 받은 상처로 인해서 미워할 인물이 떠오른다.   억울한 일이 생각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반대로  과거에 즐거웠던 일,  성공했던 일,  자랑스러웠던 일을 수시로 회상해 보면 많은 위로가 찾아온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으로 인해서 불만이 생기고,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문제가 발생하여 감당못할 지경에 이르면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좌절감에 이르기도 한다.   과거 집착성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배로 늘어난다는 이야기 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좌절감에 빠진 적이 있다.   그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출애굽을 했지만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막혀있어서 여지없이 애굽 군대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백성들이 혼비백산하여 원망하고 아우성치자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고 하셨다.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보고 계신다.   우리도 갑작스런 일로 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절감이 떠오를 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찌하여 부르짖느뇨? 앞으로 나아가라." 고 하신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신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거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믿음을 가진 자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면서 마라톤 선수에 비유하였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고 하셨다(눅9:62).   손에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사람은 앞만 보고 소를 몰아야 밭을 제대로 경작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을 향해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앞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종말에 관하여 말씀하시다가  "롯의 처를 생각하라" 고도 하셨다(눅17:32).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뒤를 처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때에도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뒤를 돌아다 보는 과거집착형으로 신앙생활하면 소망이 사라진다는 교훈이다.


2.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4절)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전1:9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실 때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말씀하셨다(마9:13).   또한 그는 세상에 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고 부르셨다(마11:28).   그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가 보내신 성령님을 통하여 부르고 계신다.   그것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시기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고 하셨다(마10:20).   지금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렇게 해라 . . . 저렇게 해라 . . . " 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가끔 나의 마음 속에서 그렇게 지시하시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사도 요한에게 성령이 부르시는 것을 말씀하셨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여기서 "신부"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 는 것은 "성령과 교회가 말씀하신다" 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성령과 교회를 통해서 원하시는 뜻을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지금  성령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교회도 성령과 함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말씀을 통하여 듣는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동안 부르시는 말씀을 듣고,  또는 성경공부 시간에 듣는다.   마라톤 선수가 코스를 따라 달려가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면서 신앙의 정로를 따라 진리의 길을 달리고 있다.   이것이 영적 방향감각이다.   이 감각이 무디어지면 자기 소견대로 신앙생활하게 되며,  자신이 가는 신앙의 방향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미혹의 영에 이끌림을 받게 될 것이다.


3.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려면,  상이 예비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4절) ". . .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요17:24),  예수님과 같은 형체로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될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요일3:2).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한 목표(푯대)가 바로 그것인데  본문 앞의 11절에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할 때이다.   사도 바울은 그 목표를 향하여 신앙의 길을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간다고 하였다.   그 목표지점인 천국을 가리켜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 이라고 하였다(히9:15).   그 천국은 너무나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이기에 일반 성도들이 잘 의식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엡1:18).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영광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인지 좀 더 실감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고 기도하면서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닌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경기해야 면류관을 받으며(딤후2:5),  상을 바라보는 자는 시험을 참아야 한다(약1:12).   이러한 말씀의 교훈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기 위한 마음의 결단들이다.   큰 상을 얻기 위한 이러한 의지를 지켜나가기 위한 것이 믿음의 담력임(히10:35)을 기억하자!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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