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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하는가?    (주일성수문제)          

   

현대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싶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거룩한 생활에 힘쓰고 싶다" 라는 뜻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같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방향으로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크리스챤이 되게 하신 목적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위한 것"과, 또 우리가 거룩한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성경의 진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 신앙은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셔서 사용하시기 전까지는 자기가 믿어야 할 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와 만나실 때 그는 비로소 그가 믿어야할 참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곧 그가 임재하신 곳은 "거룩한 땅"이므로 그의 신발을 벗어야 했고, 하나님의 거룩성이 나타날 때 모세는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출3:1-6).   그리고 야곱도 잠이 깨어 처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의식하였을 때 "두렵도다 이곳이여!" 라고 고백하였다(창28:17).   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서 인간의 죄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사람은 진실한 회개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화로다 나여! 내가 망하게 되었으니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라고 하면서 회개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술에 대신 후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라고 하셨다(사6:7).   죄 용서 받은 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회개로 시작된다.   그러한 회개를 통해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우리가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을 느껴야 진정한 회개가 나오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참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전달되고, 반면에 예수님의 깨끗한 "의"가 우리에게 넘겨오므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의인"이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확실한 크리스챤은 항상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길 줄을 안다.   한글 성경에는 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본래의 의미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이다.   그래서 대부분 영어 역본들은 "fear God" 또는 "fear the Lord"로 번역되어 있다.   "성도"라고 하는 말은 "거룩하게 구별된 무리", 즉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백성이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움으로 섬긴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회개하고, 너무나 쉽게 구원받은 현대 크리스챤들은 그러한 것을 모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은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5)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왜냐하면 옳바른 중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거룩"에 대한 개념을 모르거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크리스챤이 "왜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하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하는가?



1.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거룩을)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살전4:3-8)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의도하신 것이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인데, 이 "거룩함"을 우리가 저버리고 거절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절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이 얼마나 심각한 내용인가를 독자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크리스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한 삶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거절한다면, 그것은 곧 거룩하신 하나님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의 생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가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힘써 헌신하고 아무리 주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내었다 할지라도 그는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심각한가?   그런데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그점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주의 일에 충성하고 열심히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를 "불법을 행하였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생활한 것이다.   거짓 선지자거짓 사도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 또는 "회개"라는 단어를 회피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종으로 위장하여 신자들을 속이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거진 선지자와 거짓 사도들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많은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주님이 예고 하셨다(마24:24-25).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면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거짓 지도자들은 천사의 모양으로 위장하고, 의의 일군으로 위장한다(고후11:14-15).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크리스챤들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즉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한다.   그러면 미혹 받아도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룩함에 이르는 믿음은 영적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며, 참 믿음의 소유자는 그러한 삶의 행위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죽은 믿음이 아니고 산 믿음이라는 것을 거룩을 추구하는 삶의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 크리스챤들은 왜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하는가?


2.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크리스챤들은 이유를 묻지말고, 무조건 거룩한 삶에 힘써야 한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왜냐하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체가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으로 중생한 사람은 자연히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거듭나게 한 분이 바로 거룩한 성령님이시고, 그가 중생한 사람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중생한 사람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고전6:19) 본질적으로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죄를 짓고는 오래 견디지 못한다.   성령께서 마음에서 질책하시고 충동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회개하고 죄를 피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겨야 함을 의식하는 성도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고 그처럼 거룩한 삶을 추구하도록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살전4:7).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는 자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며, 그러한 신앙의 자세가 그를 점점 거룩함에 이르게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이 자라가는 것이며,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는 거룩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가 없으며, 거룩한 성도로 성숙해 갈 수가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한다.   다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선과 악을 분간할 뿐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선과 악은 분별하지 못한다.   "거룩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 (고전6:18에서)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자녀가 되는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7:1)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거룩한 생활에 힘쓸 수 없음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증거하였다.   그리고 거룩한 생활을 무시하고 거절하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는 신앙은 세상 끝날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교회 충성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많이 수고했어도 결과적으로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자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거룩함을 무시하는 신자는 마지막 때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큰 시련과 환난을 허락하실 때 예수를 배반할 수 밖에 없으며, 그의 신앙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 이유는 모래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집을 모래위에 짓는 자와 같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바로 그와같이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딛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6-27).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즉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을 거절하고 무시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고 자기 뜻대로 행하게 되는데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거짓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 오늘의 기독교 문화라고 본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리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3. 하나님은 거룩함을 알게 하는 법칙을 주셨다


1) 거룩한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 주셨다

참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이시므로(사41:4, 요4:24), 죄성을 가진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그 거룩하신 분을 헤아려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분 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실 때에만 우리는 조금이나마 그 영원하신 분을 의식하며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 주셨다고 한다.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a sign)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겔20:20)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는 신자는 성경이 증거하는 참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오지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는 것은 그분의 속성(attribute)을 바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 특유의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그 분의 존재, 지혜, 권능, 거룩, 공의, 인자, 진실 등 그분의 영원하고, 무한하며, 불변하는 신의 속성인데 그 모든 여러가지 속성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은 인자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그 분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며, 복과 저주가 공존하고, 생명과 사망이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작용한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면, 하나님이 마치 마음씨 좋은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처럼 느끼고 만다.   그래서 웬만한 실수는 하나님이 눈감아주시고, 또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성경말씀을 외면하고 무시해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넘기시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할 줄 모르면 그렇게 된다.   영원하신 불변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적당히 섬기게 된다.   현대 크리스챤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킬 때 우리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임을 자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참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영접하시는 분이시다.   천국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고 오직 거룩하게 된 성도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고후7:1)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는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할 능력이 없다.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자신 만만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신자는 거룩하게 되어 갈 수 없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들어 주셔야 거룩해진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신자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가?  성경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의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자를 그처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신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주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며 우리가 그 날을 거룩히 지킬 때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신다"는 하나의 표시(a sign)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잘 하면 우리 자신이 거룩한 백성임을 자각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 즉 천국의 소망이 밝아질 것이다.   구원 받은자에게 약속된 천국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면서 점점 마음에서 느끼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안식일(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인데 그 복을 주시려고 그 날을 복되게 하셨다(창2:3).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a sign)을 삼았었노라" (겔20:12)

그런데 현대 크리스챤의 안식일은 어느날인가?   구약성경으로 말하자면 토요일이 안식일인데 그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가?   현재 크리스챤들은 주일을 지키고 있지않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지면상 생략하기로 하며 시대의소리미션참고자료 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 "어느날이 예배일인가? 토요일, or 주일?").


4.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의 표징(A Sign)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마감하셨다. 그리고 7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된 날로 정하셨는데 그것이 안식일의 시작이다.   하나님 자신만 일을 하지 않으시고 쉬실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도 그 날에는 모든 일들과 매매를 중단하고(느13:15-21, 렘17:19-23) 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날로 정해주셨다(겔46: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1-3).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6일 동안 진행하실 때의 기록을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 . . .둘째 날이라 . . . . 셋째 날이라 . . . ." 는 식으로 한 날의 시작과 끝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안식하신 7곱째 날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안식"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은 후에는 창세기에서 시작된 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가 들어가게 될 영원한 안식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히4:3)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식일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실제 생활에서 어느정도 의식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는 표시(a sign) 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고생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 내신 후,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제일 먼저 구원받은 백성이 누리는 안식을 경험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안식일을 정해주셨다.   그날에 그들은 애굽에서처럼 일할 필요가 없으며, 먹을 것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안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안식일을 정해주시고 그 날을 지키게 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안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신5:15).   이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인데 구약의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표징(a sign)이다.   창세기 2장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안식"은 시대의 변화에 관계 없이 지속되는 영원한 안식이며,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동일하게 그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되어 있다(히4:1-11).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안식일에 관하여 계명으로 주실 때에도 "너희 대대의 표징 (a sign throughout your generations)"이라고 하셨고(출31:13), 또 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영원한 언약"이며 "영원한 표징"이다(출31:16: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억해야하는 표(a sign)이기 때문이다.   신약에 와서 안식일 개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히 - 확실히, 진실히)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a sign)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31:13)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a sign) 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31:16-17)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끝날까지 대대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서 앞으로 들어가게 될 영원한 안식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7일 중에 하루를 거룩한 날로 정하고 그 날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성일로 지킬 때에만 거룩한 생활에 힘쓸 수 있고, 따라서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구약에 나오는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아갔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가운데 거룩케하시는 하나님을 실감했으며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히브리서에 그 사실을 다시 언급하였다(히11:13-16).   신약의 성도들은 안식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 중심으로 그 날을 지킨다.   성도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는 것인데 그 영생의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로서 성취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안식후 첫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거룩한 날로 정하였고, 그 날에 모여서 예배드렸다 (참고: "어느날이 예배일인가? 토요일, or 주일?").   그래서 신약시대의 안식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후 첫날인 주일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Lord)가 되실 뿐만아니라(마12:8)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요14:2-3)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딤전2:5).   7일 중에 하루를 거룩한 날로 정하고 그 날에 노동을 쉬고 상업을 중단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구약에서 뿐만아니라 신약에서도 계속되는데 그것이 바로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주일성수" 이다.   "주일성수"는 크리스챤들이 "영원한 안식"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대대로(throughout generations) 세우신 "영원한 언약"이며, "영원한 표징(a sign)" 이다.   그래서 과거의 크리스챤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철저히 주일성수를 지켜오면서 그들의 경건성과 성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처럼 교회가 영적으로 살아있을 때에는 사회도 건전하여 도덕성과 윤리를 유지하였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회가 타락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세속화된 것을 알 수 있다.



5. 주일을 거룩히 지키지 아니하면 배교(Apostasy)가 시작된다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도들이며(히12:14), 그 성도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생활의 모습으로 보여진다(고후7:1).   그리고 그들의 거룩함이 언제 성숙해 가는가 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킬 때이다.   신약의 성도들로 말하자면 주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킬 때 점점 거룩한 성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이다(출31:13, 고후7:1).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주일성수를 무시하는 때부터 신앙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도 중단되며, 천국의 소망도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이 세상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미혹의 영이 접근하여 마음과 생각을 다른데로 돌리고 세상 문화(풍속)에 재미를 붙이게 한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현상이 일어났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무시하고 그 날을 지키지 아니할 뿐만아니라, 안식일을 욕되게 하였다.   그러자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이방 민족의 풍속(문화)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이방 민족의 문화는 언제나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우상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전에 살던 애굽의 풍속(문화)나 앞으로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땅의 풍속(문화)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한 법도를 따라 행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이방 민족의 풍속은 "가증한 풍속"이기 때문이다(레18:3-5,30).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고 안식일을 더럽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그리고 이방 민족의 가증한 우상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그 문화를 따라가다가 결국은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신약의 기독교도 마지막 때에는 그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본받으면서 세속화 되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는 것을 크리스챤들은 기억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는 이미 뉴-에이지(New Age) 우상문화로 가득차 있다.   그 이유는 크리스챤들이 거의 반세기 전부터 주일성수를 무시하고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의 배교(Apostasy-살후2:3)가 현재 한참 진행중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rebel)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될 내 법규 안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도를 멸시하고, 내 안식일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그들을 소멸하리라 하였느니라" (겔20:13 - kjv)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시발점은 먼저 하나님이 말씀하신 삶의 규칙을 무시하고 저버리는데서부터 시작하며, 그 다음 단계는 "거룩한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다. 현대 크리스챤의 경우에는 "거룩한 주의 날(주일)을 세속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무시하면 벌써 하나님을 저버리고 반역(rebel)하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광에서 멸하시기로 정하신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자기들의 우상들을 따라가며, 내 법도를 멸시하고, 내 법규 안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겔20:16 - kjv)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미혹을 받아서 세상의 우상문화 (현대의 뉴에이지 문화에) 이끌리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게 된다.   크리스챤을 타락시키려는 미혹의 영(요일4:6)이 바로 그것을 노리며 진리에서 떠나게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이유를 들어서 성경말씀을 확대 해석하거나, 축소해석해서 불편한 내용들을 빗겨가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알아보기 쉽게 성경을 새롭게 번역한다고 하면서 진리의 본 뜻을 왜곡하는 일들이 소위 "진보주의 신학", 또는 변질된 "현대 복음주의 신학" 실제로는 "신복음주의 신학" 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성경이나, 잘못된 사상의 영향을 받은 현대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거룩함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주일성수"는 이제 지나가 버린 옛 시대의 "고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반역(rebellion)이 이미 한참 진행중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포로로 끌려가 흩어지게 하실 것은) 그들이 내 법도를 집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규를 무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자기들의 눈(eyes)으로 자기 조상들의 우상들을 따랐음이라." (겔20:24 - kjv)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무시하여 불순종하게 되면 자연히 주일성수가 무너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들은 "안목의 정욕(the lust of the eyes)"(요일2:16)을 즐기게 된다. 관광 때문에 주일예배 빠지며, 골프치기 위하여 그렇게 하고, 연속극 때문에, 스포츠 중계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우상문화에 빠지는 것이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를 가진 통치자로서(엡2:2)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을 악으로 가득차게 하려고 한다(요일5:19). 그래서 사탄은 그 목적으로 유행문화를 이끌어 가면서 "안목의 정욕"을 자극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탄은 세상 문화를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드(mood)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세상 문화에는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상문화가 섞여있다.   하나님은 그런 문화를 가증하게 여기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풍속이나 가나안 땅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안목의 정욕에 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문화를 즐기다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되었다.   신약의 크리스챤들도 똑 같은 패턴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어 있다.   그러한 타락을 막고 거룩한 생활로 이어지도록 우리에게 주신 삶의 가이드 라인(guide line)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 즉 "주일성수"이다.   이것은 율법인 동시에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도덕법이다 (참고: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법").   이 하나님의 도덕법을 버리면 거룩에서 떠나 타락하여 "거룩한 백성(성도)"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이다(히12:14).   가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6. 예수님 재림 직전에 나타날 배교(Apostasy)의 형태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은 종말관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으므로 매우 당황하였고 안정을 얻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갈팡질팡 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안심시키고 옳바른 종말관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도록 편지한 것이 데살로니가후서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두 가지 확실한 사건이 있을 것이며, 그 사건 후에 오실것이라고 하였다.   그 두 가지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 다음에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며, 그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서 자신의 "입의 기운"으로 그 불법의 사람을 죽이실 것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그 "불법의 사람"이 곧 "적그리스도"라고 주해하였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기독교인들은 물론 불신자들까지도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불안해 하는 시대이고, 세상 끝에 보여질 시대의 징조들이 예수님이 예고하신 대로 자연계와 사회와 민족과 나라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영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교회안에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배교(Apostasy)"이다.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 . . .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2:3-8, 개역개정)

본 문장에서 "배교(apostasy)"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타시아"인데 그 뜻은 "저버림, 배반, 반역, 배교" 이다.   영어의 "아포스타시"(apostasy) 라는 단어는 그 헬라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배반하고, 반역한다는 말인가?   그 단어는 불신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하는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말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반역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기독교회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반할 것을 예고한 말씀이다. 그러면 마지막 때에 기독교가 어떤 형태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할 것인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배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필자는 마지막 때 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과 연관지어서 설명하려고 한다.

어떤 크리스챤들은 "십계명" 이야기만 나오면 불편해한다.   율법시대는 다 지나갔고 이제는 은혜 시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는데, 왜 십계명을 거론하는가?   당신은 율법주의자인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하나님이 왜 "십계명"을 우리들에게 주셨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의 주장대로라면 신약시대에는 더이상 십계명이 필요없다는 논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찬송가 커버 안쪽에는 예외없이 십계명이 인쇄되어 있지 않는가?   지금은 은혜 시대인데 왜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 십계명을 유지하였고, 어째서 청교도들이 그처럼 철저히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암송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십계명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도덕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명령하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셨다(레11:45).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악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법으로는 거룩함을 유지할 법이 없다.   오직 하나님이 정해주신 하나님의 도덕법에 의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며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 도덕법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면 구약의 성도이든지, 신약의 성도이든지 관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거룩한 삶을 살게하는 하나님의 Guide Line 이다.   미국의 헌법이 십계명에 기초하였기에 미국의 대법원안에는 십계명을 조각한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들이 거의 제거당한 상태이다.   1960년대초 케네디 대통령 때는 공립학교 안에 걸려있던 십계명을 제거하였고, 교내에서 기도를 금지하였다.   그 이후 미국은 쇄퇴의 길로 걷고 있어서 지금은 국력이 약해질 뿐만아니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정말 부끄러운 처지가 되었으며, 영적으로도 급속히 타락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라가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도덕법을 폐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나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교회가 "십계명"을 외면하는 것은 "배교"의 시작이라고 본다.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님의 교훈을 한 번 살펴보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 때 예수님은 첫째로 제일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계속 말씀하시기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Sum Up)이니라" 라고 하셨다(마22:34-40).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훈들을 집합적으로 간추려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으로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된다는 말씀이다.   구약의 대표적인 율법이 "십계명"인데 그 십계명의 내용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다.   즉, 1-4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칙이고,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법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신을 믿지 않는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는 가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7일 중에 하루를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 안식하는 날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성일(거룩한 날)"로 정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날에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내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존재임을 스스로 느끼게 하신다. 이것을 기억하여 주일성수 하는 크리스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율법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크리스챤들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하나님의 도덕법으로 지금까지 유효한 것이다 (참고: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법").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하셨다(마5:18-19).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같이 "율법"을 모두 종합하면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율법의 대표인 "십계명"이 그 실행사항을 10가지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교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멀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보여지는가?   필자는 교회가 십계명을 외면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다고 본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인데, 바로 그 전에 교회가 하나님께 배교(배도)한다고 하였다(살후2:3).   그러므로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가지 교회는 배교하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단계적으로 십계명을 파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네번째 계명을 파괴하여 주일성수를 무시하고, 그 다음은 3 계명, 2 계명, 1 계명의 순서로 십계명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마지막 1계명, 즉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라는 마지막 계명은 전세계가 종교통합이 되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할 때라고 생각한다. 마치 구약교회가 망할 때 온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신상 앞에 모두 굴복하여 우상에게 경배한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한 배교 주일성수를 파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대 기독교는 지금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들의 거룩함이다(벧전1:16, 레11:44).   즉 그들이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며(약2:22),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 이다(레20:26).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에게 강요하시는 "거룩함"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하였고(고후7:1), 히브리서 저자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라고 하였다(히12:28).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거룩한 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여러번 강조하기를, ". . .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두려움으로 하라"(벧전3;15) 라고 하였다.   예수님도 결정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하셨다(마10:28).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신앙을 가지고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크리스챤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다.   그러한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헛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속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7:21-23에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충성, 봉사, 헌신 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악령)들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기적들)을 행하였지만 막상 주님 앞에 설 때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절당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배반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는 "불법을 행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속아서 신앙생활한 사람들이며,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행동하므로 말미암아 "흑암과 사망의 그늘 아래"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다(시107:10-11).  마지막 때의 크리스챤들도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뜻"인 "거룩함"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이루어 가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크리스챤들이 어떻게 해야만 거룩한 생활에 힘쓸 수 있는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십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 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 많고 사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주셨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챤들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안내하고 그 법의 표준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하시려고 십계명을 주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Guide Line이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많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머물러있지 않는다고 하였다(요일2:15-16). 그처럼 세속화 되지 않도록 크리스챤들을 일깨우고 지시하고 질책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이 십계명을 무시하고 버리게 되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는데(삿17:6, 삿21:25) 그것이 바로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위험천만한 일이다.   과거의 모든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도덕법(십계명)을 지키면서 신앙의 원리를 지켜왔으나 20세기 중반부터 기독교가 급속히 세속화되면서부터 십계명이 서서히 무시당해 왔고, 이제는 완전히 거부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전통적인 것을 배격하여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다수가 좋아하면 그것이 진리이다 라고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일반 대중을 교회에 끌어들이려는 지도자들이 그 사상을 기독교에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십계명을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같다.   그러므로 현재 "떠오르는 교회(emerging church movement)"들에서 그런 현상이 뚜렸하다.   17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성경의 진리를 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지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신앙 지침서들이 왕의 명령으로 신중하게 작성되어서 전 세계 기독교에 귀중한 교육자료로 보급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들이다.   교파들 간에 견해차가 있어서 어떤 항목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포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본다.   그 중에 일반 평신도 교육을 위하여 집필된 "소요리문답"은 많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배출하였다.   거기에 보면 크리스챤들이 어떻게 성수주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많은 참고가 될 줄로 안다 (참고: 소요리문답 도해).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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