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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목사 안수는 성경적인가?           한종희 목사           2012.10.28


미국 Chicago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찬신문에서(The Korean Christian Journal, Chicago, Oct 17, 2005) , “여성 안수 주저할 이유 없다”는 표제의 글을 읽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가 조찬기도회로 주선했던 모임에서 “한국교회와 여성안수라”는 주제 하에 발제자로 나선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는 “현대 여성들은 초대교회의 여성과는 전혀 다르며, 사실상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성경은 교육이 없고 계발되지 않고 무질서한 여자들을 두고 말한 것이지, 전혀 여성안수라고 하는 이슈와는 무관한 성경 구절들이라”고 하였고, “여성안수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변화된 시대적 요청이라”고 하였다. 박수암 교수(장신대 신약학)는 “여성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견해는 원칙적으로는 긍정적이나,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해 가끔 여성의 교회참여가 일시적으로 억제되기도 했다”고 주장했으며, 이 문제는 “한국의 교회와 사회와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였다. 두 분 발제의 응답에 나선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는 “여성안수는 한국교회가 과감하게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구약학 김정우 교수(총신)는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 후, 두 발제자에게 성경의 주경학적 근거제시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여성목사 안수에 대한 기독교의 해답은 둘이다. 첫째는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고 성경에서 답을 구하고, 둘째는 성경에서 답을 구하되 변천하는 시대와 상황을 따라서 답을 구하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는 “여성목사 안수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하였고, 박수암 교수는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고 성경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 하나님과 성서는 성경의 완전무오를 주장한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정통주의 신학을 지켜온 우리에게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 전제는 우리가 성경의 완전무오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셔서 창조와 섭리와 성경의 기록과 편집에서 완전한 조정자이심(conditioner)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고 모든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구하는 것이다. Cornelius Van Til은 인식행위에서 하나님과 성서의 완전무오를 믿고 출발하는 것이 전제주의라고 하였다. Van Til은 “내가 왜 하나님을 믿는가?”에서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 나는 하나님을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나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었다. 물론 내가 자라오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는 주장을 수 없이 들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소년이 되어 철이 들었어도 하나님 믿음 에 대한 가르침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고백을 듣고서, 그것은 누구나 갖는 일반적인 전통이거나 환경 탓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구태여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 반대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나의 유년기의 믿음과 성인이 된 후 의 믿음 사이에는 갈등이 전혀 없었고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1. 성경은 여성목사 안수를 금지한다

(1) 고전 14:34-35, 「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

(2) 딤전 2:11-14, 「 여자는 일절 순종하므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

(3) 고전 11:3,7-10,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

이 3 곳 성경 구절의 핵심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남자를 위해 여자를 창조하셨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여자가 먼저 시험에 빠졌다.
여자가 먼저 시험에 빠진 징계로 남자의 다스림을 받게 하셨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3:16)
여자가 남자의 권세 아래 있는 표로 머리에 수건을 쓰게 하였다.

여성목사 안수를 금하신 이 4 가지 이유들이 다 항구적인(everlasting) 이유들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이유들을 변경할 수도 없거니와 가감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여성목사 안수금지가 당시의 전통이나 풍습이나 상황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항구적인(everlasting) 뜻이었다.


2. 남녀의 인권평등이 여성목사 안수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여성목사 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권평등을 그 이유로 말한다. 남녀의 인권이 평등하니 여성에게도 목사안수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이 남녀의 인권을 평등하게 하셨다(고전11:11; 갈3:28). 그러나 하나님이 네 가지 항구적인 이유로 여성목사 안수를 금하신 것도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여성목사 안수금지 이유를 하나님이 규정하신 항구적인(everlasting) 창조질서와 징벌에서 찾았다. 이처럼 여성목사 안수금지 이유들이 항구적이니, 하나님이 여성목사 안수금지 법을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신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성목사 안수금지 법이 고대의 시대적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실행되었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서 어디에도 여성목사 안수금지가 일시적임을 명시한 바가 없고, 영성목사 안수금지가 항구적이고 절대적임을(고전11:3,7-10) 말했을 뿐이다.


3. 남녀의 평등현상이 여성목사 안수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남녀의 인권평등 외에 남녀에게 있었던 몇 가지 평등현상 이유를 들어 여성목사 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1) 구약에 여자 선지도 있었다.
(2) 하나님은 말세에 여자에게도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다(행2:18).
(3) 예수님 주변에 여성들의 활약이 컸었다.
(4) 현대는 여자도 남자만큼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이 네 가지가 다 사실이지만 성경이 이 네 가지 현상을 여자목사 안수 이유로 말한 적이 없다. 여성목사 안수금지 이유로 말씀하신 창조질서와 여성이 먼저 유혹에 빠진 징계로 내리신 남성통치는 다 항구적인(everlasting) 이유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차적인(secondary) 인권평등이나 평등현상이 항구적인 이유들(창조질서, 남성통치)을 폐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목사안수하려면 성경에 여성목사 안수를 명시한 법령이 있든지, 혹은 여성목사 안수금지 법안 폐지를 명시한 법령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성경 어디에도 남녀의 인권평등이나 평등현상을 이유로 여성에게 목사안수 하라는 법령이 없고, 있는 것은 여성목사 안수금지 규정뿐이다. 이상으로서 “여성목사 안수 법”은 성경이 규정하신 법이 아니고, 인간이 시대의 요청과 환경을 따라서 제정한 사실이 들어났다.


4. 여성목사 안수 주장은 성경의 완전무오 교리를 무너뜨린다

(1) 여성목사 안수에 대한 성경의 해답은「안수금지」가 분명하지만, 성경의 완전무오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인권평등이나 평등현상을 들어 여성목사 안수를 주장해 왔는데, 그들이 성경의 완전무오를 불신하고 비평한 결과는 여성목사 안수 주장에서 그치지 않고, 내세와 그리스도의 신성까지도 함께 부정하고 있다. 필자가 쓰고 한국 합동측 총회가 발행한(2002)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에 의하면, 1956년에 여성목사 안수를 시작한 미국 장로교(PCUSA)가 1967년과 1983년에 채택한 신앙고백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버렸고,(한종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 신학, pp.218-292, 합동측 총회, 2002) 한국의 장신 교수들이 1985년에 합동 결의했던 신학성명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버렸는데 총회가 1995년에 여성목사 안수를 시작하였다. 기장 총회도 1953년 창립 시에 성경의 완전무오 교리를 버리고 출발했는데, 1972년에 새 신앙고백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버렸고, 1977년에 여성목사 안수를 실시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내세의 영생을 믿는 교단 중에서도 여성목사 안수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성경이 금하는 여성목사 안수실시는 곧 성경의 완전무오 불신을 용인하기 때문에, 교단 신학교가 진보신학으로 변질하면서 교단신학이 먼저 신학적인 타락에 빠져드는 것은 교단이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2) 하나님과 성서에 대한 신앙이나 불신앙은 인식행위 이전의 전제에 속한다. 전제(presupposition)는 인식활동의 출발점이다.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지 못하는 자는 성경불신에서 출발하고,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는 자는 성서를 믿고 출발한다. 그러므로 전제는 토론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전제는 자신의 출생 전모를 보지 못한 애기가 어머니를 믿고 대하는 것과 같다. C. Van Til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완전무오를 믿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Van Til은 유년기에 배운 대로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셨고 대속하셨다고 믿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말했을 뿐이다. 필자가 서론에서 밝힌 대로 Van Til이 “내가 왜 하나님을 믿는가?”에서 이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성경이 금한 여성목사를 안수하려면 여성목사 안수를 금한 구절을 버려야 하니 성경의 완전무오 교리도 버릴 수밖에 없다. 결국 시대와 상황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니 그 신학은 상황신학 이다. 상황신학은 신학의 상황화(conditionalization)에 머물지 않고 신학의 다원화(pluralization)로 진보한다. 이 다원화 현상은 마치 쓰나미 현상처럼 IT(information technology)를 타고 지금 세계를 휩쓸어가고 있다.

필자가 쓴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에 의하면 현재 가톨릭이 다원주의를 선포하였고(1965), 개신교의 John Stott(1992)와 Billy Graham(1997)이 각기 다원주의를 선포하였다. 개신교의 다른 복음주의 신학자들(J. I. Packer, C. S. Lewis, Harold J. Ockenga, E. Cernell, C. Henry, J. Woodbridge)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부정하였으니 다원주의 대열에 서지 못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만일 총신 교단이나 고신 교단이 여성목사 안수를 실시한다고 하자. 여성목사 안수는 여성목사 안수를 금한 성경 구절을 버리고서만 가능하니, 성경에서 한 구절을 버린 후에는 상황화, 다원화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뿐만아니라 성경에서 여성목사 안수를 금한 한 구절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버린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신다.("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창21:18-19)   하나님과 성경은 성경 전체의 완전무오를 주장하기 때문에 부분불신이 곧 성경 전체의 불신이 되고만다.


5. 차별화통일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차별 있게 창조하셨으나, 통일을 목표로 통치하신다. 차별은 하나님 창조의 결과이고, 통일은 하나님 통치의 결과이다. 우주와 자연은 다양하여도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지만, 인간만은 창조질서인 차별화를 무시하고, 인권평등과 평등현상을 빙자하여 조화와 통일을 깨고 있다.

(1) 남녀의 차별화는 창조의 결과이다

남녀에게 신체구성과 역할에 차이가 있는 것은 하나님 창조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태양으로 열과 빛을 발하게 하여, 지구에 생명체가 살도록 하셨듯이, 하나님이 암컷과 여자에게만 애기를 출산하는 역할을 주셨다. 여자가 3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자면 15년은 집에서 양육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의 경우 자녀가 6인데, 결혼 후 22년에 막내가 비로소 10세가 되니, 처는 결혼 후 최소한 22년은 가사에 묶여서 살 수밖에 없었다. 막내의 성장을 18세로 잡으면 나의 처는 최소한 30년 한 세대를 가사와 양육에 묶여 살아야 하니, 남편이 바깥일을 보고 아내가 집안일을 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산양과 출병은 남자만의 몫이었고, 군대나 백성의 다스림도 남자만의 몫이었고, 목사나 제사장의 역할도 남자만의 몫이었다. 여기에다 여자는 주기적으로 생리통을 앓고 하혈하기 때문에 자녀 없이도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으며, 신체의 노출이 커서 병균의 침입도 더 많고, 체질도 약하다.

하나님은 자연과 만물 곧 모든 개체들에게 자기만의 역할을 맡기셨다. 하나의 몸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고 장기들이 있지만 모두가 협력하여 하나의 목숨을 지탱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한 장기만 활동을 중지해도 목숨이 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각 장기들의 역할은 결코 동일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남녀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맡기셨는데도 인권평등이나 평등현상을 빙자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여성목사 안수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통일은 하나님 통치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개체로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가정, 교회, 사회,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집단생활을 해온 것이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개체로 종류대로 지으셨고 그 역할도 다르게 하셨지만 그 생존양식은 통일과 조화였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도 태양과의 거리를 지켜 타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은 통일과 조화의 결과이다.

인류사회의 구성단위는 가정이다. 두 남녀가 하나로 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마19:4-5)   부부의 결합에는 육체적 결합과 정신적 결합이 있다. 육체결합은 합방이지만, 독립체인 두 인격의 결합은 한 쪽이 다스리고 다른 쪽이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운신 폭이 넓은 남자가 다스리게 하셨고, 신체가 약하고 활동에 절대적인 제약을 받는 여자가 다스림을 받게 하셨다.

그러므로 두 남녀가 비록 독립체이고 자유인이지만 평행선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대로 하여 한 쪽이 다스리고 다른 쪽이 따르면, 평화롭게 하나로 결합하여 화목 하는 가정과 사회를 이루지만, 남녀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유권을 행사하여 평행선을 고집하면 부부가 분쟁하고 이혼하고 타살하고 자살한다. 우리 부부는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 결혼(26,23) 초부터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로 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회생활에 성문법 외에 관습법도 주셔서 능력의 차이, 신분의 차이, 강약의 차이, 선후배의 차이. 연령의 차이 등으로 통일과 평화가 지켜지게 하셔서 이러한 관습법이 성문법 보다 더 강력한 법으로 수천 년간 지켜져 왔지만 사람들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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