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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이 가져온 의식변화
(창세기 3: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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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13
"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밤 하늘에 헬리콥터 한대가 강한 서치 라이트를 지상에 내려 비추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경찰차들이 그 불빛을 따라 범인을 추적하면서 주택가에 진입하는 장면이 TV 뉴스에 보였다. 하늘에서 비추는 서치 라이트를 따라 어느 집 뒷뜰에 경찰들이 들어가 후래쉬 라이트로 나무 위나 담장 밑 등을 삿삿히 뒤지는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 집을 포기 하고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데 한 경찰관이 뒷뜰 잔디밭에 함지박 같은 어린이 물놀이 통이 엎어져 있는 것에 마음에 끌렸는지 그 곳에 후래쉬를 비추는데 가장자리에 운동화 끝이 조금 보이는 것이었다. 그 경찰관은 즉시 권총을 꺼내들고 가서 함지박을 제꼈다. 그러자 범인 두명이 쪼그리고 엎드려 있었다. 그들을 수갑에 채워 일으키는데 보니까 아주 순진하게 보이는 청소년들이 아닌가?
그들은 어쩌다 그렇게 범인으로 잡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면 전혀 범죄를 저지를 인상이 아닌 순진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몹시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 역력한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도 초범자들 같았다. 범죄 후에 당하는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볍게 죄를 저질렀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는듯 했다. 아마도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자기들 끼리 농담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며, 범죄로 경험하는 재미와 유익에 대한 낭만적 호기심만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범죄를 저지르고 나자 그 모든 기대감은 사라지고 그 대신 경찰들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숨어야 하는 현실을 실감하였다.
이것을 인류 최초로 경험한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 이다. 그들은 정말 순결하고 순진한 무죄 상태에 있었다. 에덴 동산의 모든 것들은 정말 아름다웠으며, 즐겁고, 평화스러웠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미혹되어 죄를 범하게 되자 모든 상황이 갑자기 변해버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참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다 더 경이롭고 놀라운 삶을 살게 될거라고 잔뜩 기대했겠지만 도리어 큰 불행이 닥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예기치 못했던 놀라운 의식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초조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타락 후에 인간에게 발생한 의식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가?
1. 인간은 타락 후 → 양심의 가책과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7절 =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지혜와 영광과 존귀가 자신들에게 임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과 함께 하였던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가버리고 그 대신 자신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였고, 그 수치를 가리려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치마로 수치를 가리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와서 불안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죄의 결과가 그런 자아의식으로 나타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의식에 큰 변화가 온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증거하기를, "오직 악인은 안정치 못하니 . . .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라고 기록하였다(사57:20-21).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평안이 사라진다. 그런데 다행이도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 속에 어느 정도 선한 양심을 남겨두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유보 상태에 남겨 두셨음을 의미한다. 인간에 있는 그 선한 양심 때문에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어느 정도 도덕적 사회를 이루면서 존속해 왔고, 그 선한 양심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 믿고 세례 받는 것을 가리켜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 고 하였다(벧전3:21). 뿐만아니라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를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고 하였으며(행23:1),
또 말하기를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고 하였다(행24:16). 그리고 선한 양심을 버릴 때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다고 하였다(딤전1:19). 항해하던 배가 깨어져서 물속에 가라앉듯이 믿음이 파괴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도들의 증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선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며, 선한 양심을 통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게 된다(요8:9). 그러므로 선한 양심이 둔해지고 감각이 없어지면 그것은 믿음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것이 된다. 그것이 심해져서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되며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외식과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딤전4:1-2 "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 자기 양심에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인간에게 찾아온 의식 변화에서 양심의 가책과 불안은 곧 죄를 의식하게 하는 것인데 선한 양심이 그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며,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선한 양심을 따라 죄를 분별하고 회개하면서 거룩한 삶에 힘쓰는 것이다.
2. 인간은 타락 후 →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다
8절 =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사 나무 사이에 숨은 행위는 이간이 타락한 후 두 번째 나타난 반응이었다.
그것은 빛과 어두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어서 우두움이 빛에 쫓겨가는 것처럼 타락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버젓이 버티고 서 있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대면하고 자유로이 교제하며 즐길 수 있었지만 죄를 저지른 후에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두려워서 물러가야 했다.
인류는 드디어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인류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을 피하여 도주하는 생활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없다고 망언하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죽었다" 라고 하였다. 니체가 그렇게 주장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바로 니체의 코 앞에 계셨다. 다만 니체가 영적 지각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한 것 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해도 소용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구 뿐아니라 우주 어느 곳에나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아담과 하와가 나무 사이에 숨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인간의 마음 속 중심을 이미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부르고 계신다.
" 0 0 0 아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 앞으로 나오너라."
어떤 방법으로 부르고 계실까? 하나님은 지금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가까이 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으면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를 얻어서 의인이 되며(빌3:9), 하나님의 자녀라 불려지게 된다(롬8:14-15).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모든 죄들은 하나님이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히8:12, 히10:17). 그것은 예수님의 "새언약의 피"를 믿기 때문이다(눅22:20, 렘31:31-34).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붙는 것이라." (눅22:20)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니 . . .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렘31:31-34)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히8:12)
성경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은 사랑의 음성이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려는 복음(Good News)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멀리하여 도망다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여 자유하는 자가 되고(요8:32-36),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된다(요10:28).
3. 인간은 타락 후 → 자기 변명에 익숙해졌다
12-13절 =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질책하실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시키면서 자기를 변호하고, 하와도 역시 뱀에게 그 책임을 돌리면서 자기를 변명하였는데,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되고 말았다. 아담은 하와를 가리켜서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까지 하였다(창2:23). 그러나 범죄한 후 다급해지니까 "이 사람 때문이야!" 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인간은 자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본성이 생겼고, 억지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려는 경향도 생겼다. 그러한 자기변호와 자기 합리화는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므로 믿음의 확신을 가지는데 큰 방해가 된다.
그처럼 책임을 회피하거나 부당하게 자기를 합리화시키게 되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뜻에 맞추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는 시발점이라고 본다. 인본주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자신의 입장에 곤란한 것은 회피하거나(by pass), 편리한 쪽으로 해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그런 신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속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옳바른 반응을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 청결한 마음은 참 신앙의 바탕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먼저 자신에게 정직하고, 그 다음 하나님께도 정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타락이 가져온 의식변화" 를 잘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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