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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2-17
"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점쟁이, 무당, 또는 운명철학이 결혼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사업운수를 알려준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찾아가 사주팔자를 보거나, 궁합을 보거나, 재수, 운수, 액운, 관상 등을 점쳐 본다. 그런데 거기 찾아가는 손님 중에는 약 70%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놀라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예배도 드리고 선교헌금도 하며 봉사활동도 활발히 하지만 보통 날에는 잡신이 들린 무당이나 술객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돈을 바치면서 운세를 점친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와 우상문화인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십계명 1, 2 3 에 명시될 정도로 하나님이 금지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우상문화에 매력에 동화되어 가까이 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우상숭배에 빠졌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와 똑 같은 상태로 타락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혼합주의" 사상에 물들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미혹의 영이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그러한 혼합주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그랬고 신약의 초대교회 때에도 교회 안에 "영지주의" 라고 하는 혼합주의가 들어와서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주려고 교리적인 서신들을 보냈는데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언젠가 Modern Reformation 이라는 매거진에 Michael Horton 이라는 분이 "영지주의 예배" 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린적에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미국의 기독교가 "혼합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교회의 건물 양식까지 혼합주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뉴에이지 문화가 교회 안에 스며들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현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참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진보적 목회자들이 그러한 미국의 기독교를 모방하여 한국에서도 인기몰이식으로 앞서가는 줄 안다. 그래서 맹목적인 신자들은 참 신자의 가치관과 영생에 대한 목적이 없이 그저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살아간다고 본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고방식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참 신자의 특징은 무엇으로 보여지는가?
1. 참 신자는 육신대로 살지 않는다
12-13절 =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시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 . . "
이 본문 말씀에 의하면 크리스챤들이 얼마든지 육신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육신대로 계속 살아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육신대로 산다" 는 것은 "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육신의 소욕대로 산다" 는 의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완전히 거룩한 자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부패된 성품의 잔재가 남아있고, 그 성품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육체의 소욕을 일으킨다. 사탄은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자꾸 부추겨서 헛된 것에 마음이 빼앗기게 하고, 세속에 끌리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한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에 빠지게 한다(요일2:16). 만일 크리스챤들이 계속 그런 생활에 젖어서 만성이 되어버리면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는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 는 것은 "지옥에 간다" 는 뜻이나 마찬가지 이다.
오늘의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소돔과 고모라 때를 연상케 한다. 소돔성에 살 던 롯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음란한 행실과 불법 때문에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운 롯을 소돔에서 건져내셨다고 한다(벧후2:6-8). 오늘날 음란의 죄악은 아무런 윤리 도덕의 제재도 받지 않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리 저리 날뛰고 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롯처럼 "의로운 심령이 상하는" 자를 찾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롯과 같은 신분이 되고자 하는 자는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 육신대로 살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가 숫자적으로 적을 것을 예수님은 미리 내다보셨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탄식하셨다(눅18:8). 우리의 가장 심각한 원수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아(self)임을 의식하자! 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육신의 소욕" 을 "성령의 소욕" 으로 다스려야만 우리는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갈5:17)
우리 크리스챤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분명한 선을 긋고, 마음의 태도를 굳혀야 할 것이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진리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표어처럼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참 신자의 특징 이다.
2. 참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다
14절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의 본성은 세상과 친하며, 마음은 세상에 기울어져 있다. 그러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는 자리까지 갈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그러한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 있으면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따라 사탄이 좋아하는 일만 하게 된다. 수천년 동안 인간을 미혹하여 타락의 길로 끌고 가는 사탄을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기도 힘들고, 의식한다 해도 사탄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라" 고 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는 우리가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 영혼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가 구주이신 줄을 깨닫게 되는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에 가능하다(빌1:19). 또 성령의 일깨우심 때문에 마음 속의 죄가 드러나고, 진정한 회개가 나오는 것이다. 성령이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딛3:5). 그리고 변화된 심령 속에 성령님이 찾아와 계시며 그 마음 속에서 "성령의 소욕(the desires of the Spirit)"을 일으키신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영적인 것을 느끼게 하시며,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도록 마음에 감화를 주신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고 하였다(벧전4:11). 성령이 도우시게 되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마음으로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일깨워 주시는 "성령의 소욕"을 무시하고, 육신의 욕심과 정욕이 요구하는 대로 행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성령을 소멸치 말라" 고 하였고(살전5:19), "육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 으로 간주하라고 하였다(갈5:24).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 순간 나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양심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 는 성령님의 일깨우심에 항상 순종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권고하기를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다(갈5:16).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될 때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제어(control) 하면서 참 신자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3. 참 신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줄 안다
17절 =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육신의 소욕을 자꾸만 죽이고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자기 속에 솟아 오르는 육신의 욕망과 탐심, 욕정을 따라 그것들을 만족시키는 삶을 우선으로 하며, 그렇게 해야만 보람있는 인생인 줄로 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 반대의 삶이 요구되고 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쳐서 주께 복종시키면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증거한다(딤전6:12). 거기에는 나 자신과 스스로 싸우는 갈등이 있으며, 유혹과 시험과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인내와 고통도 따른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들이 그렇게 비웃는 것은 인생이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이 제2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관문(a gateway)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하였는데(히12:2), 우리가 그처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를 닮아가기 위해서 이다(살전1:6). 그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우리는 복음으로 인해서 고난 받을 때가 있고(딤후2:9), 의를 위해서 고난받으며(벧전3:14),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딤후2:3).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마다 낙심과 실망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그럴 때일 수록 낙심치 않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에 참으신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다(히12:2). 그리고 계속해서 하는 말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아니하였다" 고 하였다(히12:4). 그리고 더 나아가 "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고 하였다(히12:4).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신자의 거룩성을 지키는 것은 영적 생명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참 신자의 모습은 죄와 더불어 싸우는 투쟁과 고난을 인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인생이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후에 전개되는 영생의 소망과 보장된 하늘의 영광을 확신하기 때문이다(딛3:6-7, 벧전5:4). 참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삶의 목적 때문에 죄에 대해서 민감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는(살전5:22) 신앙의 훈련을 긍정적으로 실천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힘쓰는 것이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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