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진리와 함께   미션신조   양서번역   참고자료   말세적 현상   기독교 교리   은혜의 찬송곡     www.voamonline.com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   (시편 107: 4-31)          

시편 107: 8-9
"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편 107: 4-31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멀고 긴 여정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과 위기를 겪었지만,  그들의 끊임없는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적같은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였다.   그 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 섭리를 찬양한 노래를 시편 107로 기록하여 낭독하며 자손들에게 전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본토까지는 약 1,500 Km (935마일)이나 된다.   멀고 먼 여정을 약 4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말할 수 없는 큰 위험과 고난과 굼주림에시달렸고,  죽을 고비들을 넘겼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기적같이 그들을 건저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 시편 107편을 기록할 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는 문구를 계속 반복하여 기록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적같이 도우시고 건저주신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부르짖었기 때문인데,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사모하는 영혼" 이었다.   즉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 . . .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유럽에서 기독교 박해로 핍박과 죽임을 당하던 청교도들도 아메리카 신대륙은 그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피난처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May Flower호 선박을 타고 대서양을 건느게 되었다.   그들이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항해하면서 겪은 고난과 그들의 부르짖음이 마치 바벨론에서 고토로 돌아오면서 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과 비슷했으므로 청교도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하여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드리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이 시편 107편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셔서 만족하게 하신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처럼 "사모하는 영혼"이 될 수 있을까?                  


1.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사모하는 영혼이 되게 하신다 

오늘 시편 107: 6, 13, 19, 2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사모하는 영혼"이 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데,  그들은 "근심 중에, 환난 중에,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었다.   그 고난의 내용들을 보면,

      4-5절 =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주리고 목말라 영혼이 혼미해졌을 때 부르짖었다.
      10-11절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멸시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하실 때
부르짖었다.            
      17-18절 = 미련하여 죄악의 길로 행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으로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
부르짖었다.      

6절에 보면 부르짖을 때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근심 중에 부르짖었다"고 한다.   이 말씀은 "큰 고민 가운데 부를짖었다"는 의미이다.   다시말하자면,  하나님께 아무리 애타게 간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난 속에서도 "나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부르짖은 것이다.   그들에게 인내의 신앙이 있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이 그들을 고난에서 건저주시고 그들을 향하여 "사모하는 영혼"이라며  "그들에게 만족을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다"고 했다(9절).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인내의 신앙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련과 고난과 환난을 통하여 얻어지는 신앙이며,  "나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굳게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심정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이 겪는 시련과 고난과 환난은 인내의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 받는 "사모하는 영혼"이 되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백하였고(시119:71),  사도 바울도 역시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한다"고 증거하였다(고후4:8-9).        

성경에서 "사모한다"는 말은 단순히 "희망한다, 바란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의 의미는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는 것"을 뜻한다(롬4:18).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그러한 신앙의 태도를 말한다.   그들은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고민이 있으며,  어떤 불안과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있는가?   어떤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응답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는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2.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말씀으로 치유하신다 

    20-21절 =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신앙으로 훈련시키시려고 그들에게 시련과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 건져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때로는 그 백성들이 죄악의 길로 행할 때 그들의 죄값을 치르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심한 고난을 주실 때도 있다.   11, 17, 18절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멸시하였으며,  미련하게 죄악의 길로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난을 주셨다.   하나님이 무슨 벌을 내리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특이한 증상에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음 직전에 이른 것 같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애타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처럼 부르짖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고난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모하는 영혼"이 된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2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셨다"고 한다.   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셨는지 다윗이 대변해주고 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119:130)   성경을 펼쳐 읽으면 "성령의 빛이 마음에 비추어" 미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이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엎어 감추어진 것이 다 빛에 드러나게 하시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치료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말씀으로 깨우쳐 회개하게 하신 후 그를 위험한 지경에서 건저주신다.  

이것을 경험한 다윗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시34:18)   지금도 하나님은 미련하고 우둔한 자를 깨우쳐 그들을 위험에서 건지시려고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은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의 빛을 비추어 심령 속의 어두운 부분을 확연히 드러나게 하신다.   숨어 있어서 의식하지 못했던 죄악들을 들추어내시고,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신다.   말씀을 보내셔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맺게 하신 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시편 73편에 보면 아삽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고 무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짐승"과 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하였다. (2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신 것을 깨닫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증거했다.   우리도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미련하여 "짐승"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아삽처럼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생활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라는 마음의 태도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내가 "사모하는 영혼"임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30-31절 =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본문 23절부터 보면 이스라엘의 길고 긴 고난의 여정을 마치 목적지를 향해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옛날의 돛단 배 범선들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거대한 바다를 항해할 때는 큰 폭풍과 풍랑을 만나 생사의 기로에 직면할 때가 종종 있었다.   본문에 보니까,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며 배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며,  그 때 그들은 이리 저리 굴러 취한자 같이 되어 비틀거리고,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졌다"고 하였다.   산더미 같은 엄청난 크기의 파도에 배가 얼마나 시달리고 고통당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토하고 기절하고 실신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살 길과 희망은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고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것이 바로 "사모하는 영혼"의 모습니다.        

1620년 기독교 핍박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아메리카로 향하던 영국의 청교도들도 그와 같은 항해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이다.   청교도들이 탄 May Flower 배는 돛대가 3개가 달렸고, 길이는 약 33미터, 넓이가 약 8미터 밖에 안되는 작은 범선이었다.   여기에 탑승 인원은 102명이었으므로 그 좁은 공간에서 66일 항해 기간 동안 바다에서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큰 풍랑과 폭풍을 만날 때마다 그 배 안은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며, 그들은 끊임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박해를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소원의 항구(Plymouth)"에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도착하였고, 시편 107: 30의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를 읽을 때마다 감격하여 이 시편 107편을 자주 읽고 행사 때마다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그들이 바라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셨다.  이 내용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과 위로와 소망을 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대 혼란의 시대이다.   난리의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악의 세력이 선과 진실을 집어 삼키려든다.   사회질서가 파괴되고,  정의와 진실이 왜곡되며,  불의가 득세하고 있다.   경제난과 생계위협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의 위험이 감돌고 있다.   마치 우리는 태평양 한 복판에서 작은 배를 타고 큰 폭풍과 풍랑에 시달리며 시련과 고난을 겪는 양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도착해야 할 항구가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곳까지 가야하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그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그 "소원의 항구"는 어디인가?   그 곳은 우리가 가야할 "하늘 나라" 이다.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온 갖 시험과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의식하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기도에 힘쓰는 자가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이고 "사모하는 영혼"이며,  하나님은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실 것이다.   그것은 곧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게 하시는 것이다.


<보이스>


^ RETURN TO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