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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           한종희 목사


차     례
Page 1 1. 바르트는 누구인가?
2. 바르트의 신론
Page 2 3. 바르트의 창조론
4. 바르트의 기독론
Page 3 5. 바르트의 종말론
6. 바르트의 부활론



1. 바르트는 누구인가?

칼 바르트(1886-1968)는 스위스 바젤 태생이고, 바젤에서 생을 마감했다. 목사요 신학교 교수였던 아버지는 보수신앙을 바르트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했지만, 바르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1908년 22살 때에, 말북 대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의 제자가 되었다. 헤르만은 자유주의 신학자 니출의 제자였고, 당대에 대표적인 교의학 교수였다. 바르트는 1909년 23세에 쥬네부 개혁파 교회 목사가 되었고, 쉬라이엘마허의 책을 읽었다. 스위스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25-35세, 1911-21), 이웃에서 목회하던 친구 투르나이젠과 300여통의 편지로 교제하였다. 여기서 바르트는 교인인 노동자들 편에 서서 노동자조합을 조직하여 임금인상 운동을 폈으며, 스트라이크에 가담하였고, 29세(1915)에는 사회민주노동당원이 되었다. 자펜빌에서, 33세(1919)에는 그 유명한 로마서 강해서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로 유럽을 진동시켰다.

자펜빌 목회를 마감하고, 괴팅겐 대학 명예교수가 되고(1921), 39세에 뮌스터 대학교 교수가 되고(1925), 5년간 교리사를 가르치면서 교의학 신학자의 기반을 닦았다. 44세 나던 1930년에 본 대학으로 옮긴 후에, 여기서 교회교의학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47세나던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신구교가 정부를 지지하게 되자, 바르트가 투르나이젠과 함께 1933년에 발간한 잡지, “오늘의 신학의 실존”으로 결집된 고백교회가 형성되어, 바르트가 작성한 바르멘 선언을 공포하고 나치당과 맞섰다. 49세나던 1935년에 바르트는 추방령을 받고, 스위스 바젤에 정착, 세계를 향하여 메시지를 보내면서, 여기서 82세에 생을 마감했다.

1)  바르트는 실존주의 신학자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을 복음주의 신학으로 호칭했지만, 사람들은 바르트의 신학을 곡해하여, 신 정통주의 신학으로 호칭하였고, 이것이 끝내 수정되지 않았지만, 바르트신학의 진정한 명칭은 실존주의 신학이다. 실존은 참 인간을 뜻하니, 참 인간을 추구하는 것이 실존주의 신학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성령으로 수태하게 하시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선지와 사도를 시켜 성서를 기록하고, 편집하게 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셨고, 이 성경대로 신학을 구성한 것이 정통신학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자, 성서를 불신하고, 기독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학운동이 독일에서 일어났는데, 이것이 계몽주의를 수용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를 전설과 신화로 보아 불신하고, 기독교를 배반하였으며, 이 배교사상이 19세기 유럽에 창궐하였고, 19세기 말에는 영국과 미국에 퍼져나갔다. 일본과 한국에도 1930년대를 전후하여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이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을 선하게 보았고, 반드시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믿고 외쳤는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여, 전 유럽은 경악하였고,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낙관론과 지상낙원의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 전쟁은 불과 4년으로 끝났지만, 사망자가 850만 명에 달하였고, 부상자가 2,000만 명에 달하였다.1   수천 년 구축해온 문화와 건물이 파괴되거나 불에 타 없어졌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야수로 변한 현대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1914-1918), 젊은 청년 바르트가 33세(1919)에 로마서주석을 발표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살 길이 있다고 외치자, 그 외침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한 젊은 청년의 글이 이토록 엄청난 반응을 일으킬 줄은 글을 쓴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다른 30대 젊은 청년들도(Bultmann, Brunner, Tillich,2   Niebuhr 형제) Barth를 따라 서서히 외치며 궐기하였다.

전 세계와 특히 절망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에게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살 길이 있다”는 이 젊은 청년들의 외침이 너무나도 큰 희망으로 들렸다. John MacKay가 프린스턴 신학교 교장으로 재직당시 1949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11월 3일 서울 정동교회 신학생 모임에서, “현대신학의 동향”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출판을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제1차 대전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신학은 별 쓸모가 없고, 과학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란 것이 사람에게 안녕질서를 주는 대신에, 도리어 안녕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발발한 제2차 대전으로 모든 것이 깨어지고 부서져서 절망뿐임을 깨닫고, 사람들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절망 속에서 중요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즉 성경이 새롭게 발견된 것입니다. 전에는 많은 크리스천 사상가들이 이 성경이 최후적 생각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현대주의라는 것인데,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현대주의와 상대주의의 혼돈에서 새 방향을 찾게 한 공로자가 있으니, 서서의 젊은 신학자입니다. 1918년 제1차 전쟁이 한참일 때에, 스위스 나라의 한 젊은 목사는 내가 민중에게 전해야할 권위 있는 말씀은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 성경에서 그에게 들려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서에 대한 좋은 주석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Karl Barth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쓴 로마서주석은 현대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던져진 폭탄이었습니다. 」3  



이 글에서 말한 상대주의와 현대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리킨다.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이 유럽인들에게는 다시없는 복음으로 비쳐졌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폭파한 폭탄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같은 강도로 정통신학도 공격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바르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면, 바르트가 정통주의 신학으로 돌아왔는가? 아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불신했던 성경무오와, 하나님의 물질창조와, 그리스도 신성과, 내세와 영생을 끝까지 불신하였으며, 별세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를 전쟁과 파멸에서 구하고자 혼신을 다했으며, 인간에게서 실존(참 인간)을 회복하려고, 성서를 교재로 하여 노력한 실존주의 신학자였다.

2)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이유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진화론과 유물론)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원론적(一元論的)인 우주관, 인간관, 구원관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선하게 보아온 인간낙관론을 공격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야수성이 들어났으므로, 바르트의 스승들(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인간의 성선설낙관론을 공격한 것이다. 바르트가 젊은 청년에 불과했으나, 갑자기 위대한 신학자로 각광을 받은 것은, 인간의 낙관론을 공격하고, 타락한 인성을 회복하여 윤리와 도덕을 회복하자고 외친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1918년에 끝나고, 1919년에 로마서가 출판되었으니, 이 책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중병을 앓은 현대문명에 내려진 첫 번째 처방전이었기 때문에, 온 세계는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을 현대문명의 치유책으로 대환영하였고, 바르트는 일시에 유럽과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면, 바르트가 인간의 성악설(性惡說)을 받아드렸는가? 바르트가 신의 물질창조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불신하였음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음으로, 인간에게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함으로, 인간의 완전타락(성악설)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Barth가 자유주의 신학이 외치던 인간낙관론을 공격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인간타락상을 외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완전타락을 주장하면, 핵폭탄 앞에서 자멸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르트가 구원의 가능성을 인간 안에서 찾아내기 위하여, 어정쩡하게 주장하기를, “인간은 타락했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인간 안에 남아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의 정신과 행적을 본받아, 이웃과 화해하고 사랑하면, 반듯이 지상에 평화로운 천국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바르트가 인간을 전쟁과 파멸에서 구해내고, 지상낙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론(人間論)을 새로 썼을 뿐만 아니라, 신론(神論)도 새로 썼는데, 하나님의 성품에는 공의와 형벌은 없고, 오직 사랑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4   만일 정의와 형벌을 하나님 개념에 넣는다면, 인류는 계속하여 정의와 공의를 세우고자, 악한 상대를 형벌하기 위해서 핵전쟁으로 돌입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개념에 공의와 형벌을 넣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도 재구성하는 것이 바르트신학이다.

3)  바르트의 계시론

바르트가 1919년에 로마서 주석을 쓸 때에는 성서의 기적들을 옛설화(urgeschichte)로 표현하였고, 1932년에 교회교의학을 쓸 때에는 설화(geschichte)로 표현하였으나, 설화 5 는 본래 전설과 신화를 엮어서 쓴 고대소설을 뜻하기 때문에, 옛설화나 설화는 뜻이 동일하다. 바르트가 성서의 기적들을, 신화와 전설을 섞어서 쓴 고대소설로 보고, 고대소설(설화)에서 교훈을 받아, 로마서 주석을 썼고, 9,000쪽에 달하는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을 썼기 때문에, 설화에서 역사성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고, 다만 설화에서 교훈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즉 바르트가 성서를 설화로 취급한 이유는, 성서에서 교훈은 받되, 기적은 배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계몽사상을 수용한 신학자들은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역사(historie)로 취급하지 않고, 설화(geschichte)로 취급해왔으나, 교회교의학 영역에서 설화역사로 번역한 것은 곡해였다.

① Hegel, 설화의 정신, Vernunft in der Geschichte, 1826-1827
② Overbeck. “고대교회의 설화연구”(Studien zur Geschichte der alten Kirche, 1875).
③ Schweitzer. 예수생애설화 연구, Die Geschichte der Leben-Jesu Forschung, 1906.
④ Barth, “로마서주석”(1919)에서 옛설화(Urgeschichte를 인용함 6
⑤ Bultmann, 공관복음의 전승설화,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1921
⑥ Pannenberk, 설화로서의 계시, Offenbarung als Geschichte, 1961

이 독일인 신학자들이 구상했던 새 프로그램을 살펴본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낙관하고 인류의 장래를 낙관했지만, 20세기 초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야수로 변한 인간에게서 낙관론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에, 독일 신학자들이 인간의 비참한 현실의 타결 책으로, 성서를 다시 따르자고 외쳤다. 그러나 진화론과 유물론을 목숨처럼 지키는 계몽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의 후예들로서, 기적으로 가득 찬 성서를 그대로는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신학자들(Hegel, Overbeck, Schweitzer)이 기적에 적용했던 설화(geschichte)를,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설화(geschichte)를 기적에 적용하는 신학자들(Barth, Bultmann, Pannenberk . .)이 속출하였다.

4)  바르트는 정통신학을 저주하였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 신학교육을 받아, 계몽사상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성경을 신화집으로 보았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물질창조와, 예수님의 신성과, 영혼의 불멸, 내세의 영생 등은 불신하여 배격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교리를 믿는 정통주의 신학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7   다음은 정통신학을 저주한 바르트의 주장이다.

짓지 못하는 개(46쪽),
저주를 받을 자(48쪽),
믿지 않는 불신자(49쪽),
묘지에 처넣기 위해 밀쳐진 시체. (49쪽)


2. 바르트의 신론

바르트는 하나님의 물질창조를 문자대로 믿는 정통신학을 저주하였고, 다음에 다루어질 창조 론에서는 신의 물질창조를 불신하고 거부하였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장하였고, 계몽사상을 수용한 사상가였다. 이러한 바르트가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을 수 없이 반복하여(대화, 정반합, 변증법), 하나님의 본질을 해설하였다. 특히 否定을 수 없이 반복한 이 작업방법은, 마치 조각가가 돌에 사람의 모습을 새기는 작업을 닮았다. 조각가가 처음에는 울퉁불퉁한 돌덩어리 원석에서 수없이 정질을 반복하여 쪼아서 버리고나면, 차차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습을 돌에 새기려면, 큰 돌 덩어리에서 먼저 대부분의 돌을 쪼아 버려야 하듯이, 바르트가 신을 조각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정통신학이란 원석(原石)에서 많은 부분을 否定이라는 정으로 쪼아서 버리고, 남은 부분이 바르트가 肯定하는 신의 모습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바르트가 신학생으로 시작하여, 신학교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57년간의 총결산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8   바르트가 다음 인용구에서 조각해낸 하나님은, 자기가 믿는 「최종적인 견해」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다음 인용문에서, 바르트가 반복한 否定을 모아 정리하면, 이것이 정통신학의 하나님의 모습이고, 肯定을 모아 정리하면, 이것이 바르트가 믿는 복음신학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여 자신을 폐쇄하고 있는 고독한 하나님도 아니요, 절대적인 하나님도 아니다. . 이처럼 그는 자기와 구별되는 실재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자유하시다. 그러나 그는 인간 옆에 계시다가 인간 위에 군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안에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계시며,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인간의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형님, 친구로서 인간의 하나님이시다.9   이것이 결코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을 축소시키거나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의 대상인 하나님은 높아지신 것만큼 낮아지시고, 그의 지극히 낮아지심에서 높아지신다. 물론 인간에 대한 이 하나님의 yes 안에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부득이한 하나님의 no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방법(no를 포함한 yes)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돕고, 치료하고 바로 잡아 주기를 원하시며, 또한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진정한 복음주의의 하나님이요,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도 되신다. 복음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이 은혜의 yes에 대한 응답의 노고(勞苦)이며, 인간을 향하신 우정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대한 응답의 노고(勞苦)이다. 복음주의 신학은 하나님을 인간의 하나님으로서 관계하며, 똑 같은 이유로 역시 인간을 하나님의 인간으로 관계하신다. 복음주의 신학에서 인간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정복당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으로 확정된 존재이다.” . . 우리가 여기에서 지적한 신학은 특별한 의미에서 복음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신학이 복음적이기 때문에, 신이 비인간적인 경우에서는 신학이 율법주의적인 신학이 되어지기 때문에, 복음주의 신학은 이 비인간적인 신에게는 헌신할 수 없다. 』10




1)  다음은 신의 조각에서, 바르트가 부정의 정으로 쪼아서 버린 부분들이다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의 본질은,

ⓐ 자신을 폐쇄하고 있는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며,
ⓑ 절대적인 하나님이 아니고,
ⓒ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 인간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도 아니고,
ⓔ 인간보다 고상하기만 하고, 먼 거리에 있으며,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자비를 베풀지 못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였다.

바르트가 否定의 정으로 쪼아낸 정통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아주 고약한 하나님이라 하여, 서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비방하였다.

ⓐ 인간에게 좋은 소식 대신에 나뿐 소식을 가져오며,
ⓑ 또한 인간을 격멸하며, 심판하며, 죽음을 가져오며,
ⓒ 고상하기만 하여 비인간적이고, 초인간적이기 때문에,
ⓓ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꺼리며,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 이러한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알려고도 하지 않고,
ⓕ 이러한 비인간적인 신에게는 복음신학이 헌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르트가 否定하고, 비방한 것은 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와, 심판 부분에 해당하며, 성경이 교훈하는 하나님 본질이며, 교회가 2,000년간 고백해온 사도신경이다. 그런데 바르트가 왜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는가? 바로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듯이, 바르트는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불신하고 배격하기 때문에, 저주도 불사하는 처지이니, 바르트가 정통신학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2)  다음은 신의 조각에서, 바르트가 긍정하여 남겨 둔 신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조각에서 긍정하여 남겨둔 부분이 바르트가 구상하는 신의 본질이다. 다음은 바르트가 새롭게 조각해낸 신의 본질이다. 즉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 인자한 아버지 같고, 형님 같고, 친구 같아서,
ⓑ 인간 안에 있고, 인간과 더불어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해주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 오직 인자한 아버지가 되고, 친구가 되고, 형님이 되어,
ⓓ 옆에서 돕고, 치유하고, 바로 잡고,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 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롭기만 하기 때문에,
ⓕ 율법주의의 하나님처럼 거역 자에게 no(審判)를 발하는 일은 없고,
ⓖ 또한 니체가 말한 것처럼, “너는 반드시 정복당해야할 자이다.”라는 절망적인 선고도 하지 아니하며,
ⓗ 도리어 “너는 나에 의하여 정복당하도록 확정된 존재일 뿐이다.”라고 하여 구원의 희망을 주실 뿐이라고 하였다.

이상으로서 바르트가 조각 작업을 통해서, 새로 각색한 「신의 본질」이 자세히 들어났다. 바르트가 否定의 정으로 하나님의 절대 권력과 공의와 심판을 쪼아서 버렸고, 肯定의 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애로움을 조각하여, 「이것이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바르트가 부정한 부분과 긍정한 부분, 양면을 다 겸전하신 인격이시다. 못난 인간의 성품도 양면을 지녔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본질을 반쪽만으로 조각하였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것은 마치 사람의 몸을 정면에서 수직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로 쪼개어 놓고, 반쪽을 가리켜,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야할 현대인의 참 모습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그리고 사랑과 공의 중에서 공의는 없고 사랑만을 지닌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 인간은 선악을 분간할 수 있는 인격이 아니고, 시계바늘처럼 한쪽으로만 가는 기계일 뿐이다. 기계는 이것과 저것 중에서 선택하고 결단하는 일이 없다. 바르트는 하나님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조각하되, 기계로 조각하였다. 바르트가 사랑만 할 줄 아는 반쪽 신을 조각해 놓고, 이 신을 섬기자고 했지만, 인간보다 훨씬 못한 반쪽만의 신을 누가 따르겠는가? 그 누구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치고는, 이러한 반쪽(half body) 신을 신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바르트가 이런 무모한 주장을 하였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짓인가? 바르트뿐인가? 현대주의 신학자들 대부분이 바르트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


3)  바르트가 반쪽 신을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으로 조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 전반세기에 발생했던 제1,2차 세계전쟁의 참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두 전쟁에서 죽은 사람만 2천 5백 24만 명이었다.11   바르트가 제1,2차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본 것은, 인류와 문명이 일시에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다. 특히 미국이 1945년에 일본에 원폭을 2회 투하함으로서 발생한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바르트가 새로운 신을 조각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절박한 위기에서, 선과 악을 가리는 신을 모신다면, 전쟁은 피해갈 수 없고, 인류와 문명은 멸망할 것이기에, 정사(right and wrong)를 가리는 행위를 접기 위해서는, 사랑만의 신을 모셔서, 정의와 공의와 심판은 접고, 사랑만으로 엮어진 국제법을 제정하자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서, 또 다시 히틀러, 동조, 스탈린 같은 인물이 나타날지언정, 원폭으로 자멸하는 것 보다는 낳으니, 손쓰지 말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탈이고, 손을 써도 탈이니, 이 바르트의 구상은 해결책이 아니다.

바르트의 생각에 정의로운 하나님, 죄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은 정사를 가리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신은 전쟁을 유발하여 인류종말을 재촉하는 신이 되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원석에서 쪼아 폐기하였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켜줄 신은 오직 사랑하고 용서하는 신이라 하여, 사랑만 하는 신을「현대인의 신」으로 조각하였지만, 바르트가 조각한 신은 실재(reality)의 신이 아니고, 이름뿐인 명목상의 신이라, 악한 자에게 형벌을 내리지 못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지 못하니, 스탈린이나 히틀러나 동조와 같은 자들의 무한욕망과 포악을 제어하지 못한다. 결국 허수아비 신 앞에 서 있는 현대인은 여전히 야생마일 수밖에 없다.

바르트가 「인격의 신」이 아닌 반신(half body)의 신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었을까? 바르트가 반신의 신에게 부여한 가치는,「최고치」(the highest value) 혹은 「표준치」(the standard value) 정도였다. 바르트가 제창한 이 최고치와 표준치를 좇아서, 국제사회는 오직 사랑과 용서와 화해만을 외치면서 1960년대부터 전쟁을 반대하는 데모가 일어났고, 서서히 사형폐지법을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형무소도 교도소로 명칭을 고쳤다.

그러나 반신구상(the conception of half body)을 따라 사형법을 폐지하고 보니, 한 국가나 국제사회가 더욱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반신구상(the conception of half body)은 국제법과 국내법에서 해결책이 아닌 것이 들어났다. 결국 테러에도 양론이 있고, 9.11 테러에도 미국의 국론이 갈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을 세우자니, 핵탄으로 대항해오고, 정의를 세우자니 핵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양쪽 다 자멸로 가는 길이라, 이것이 현대인이 안고 있는 “dilemma”다. 그런데 마침 성서는 이러한 인류의 종말을 2천 년 전에 예고하였는데, 이 종말예고가 핵무기미사일의 출현으로 우리 앞에 현실이 되어 있다.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자고 협약을 맺었지만,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시끄럽다.


4)  인용문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Yes 안에는 부득이 No가 포함된다고 하였다


『 물론 인간에 대한 이 하나님의 yes 속에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부득이한 하나님의 no 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방법(no를 포함한 yes)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돕고, 치료하고, 바로 잡아 주기를 원하시며, 또한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

바르트가 인용문에서 「인간에 대한 이 하나님의 yes 속에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부득이한 하나님의 no 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바르트가 이 말로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yes는 하나님의 교훈을 말하고, no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복음신학의 하나님에게는 본래 심판(no)이 없지만, 이 하나님의 교훈(yes) 안에는 부득이 심판(no)이 내포된다고 하였으니,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심판(no)은 복음신학의 하나님이 직접 내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교훈(yes)을 거부했을 때에, 이 거부한 결과로 심판(no)을 자초(自招)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현대인을 위해서 사랑만으로 조각한 반쪽의 신에게, 바르트가 바랄 수 있었던 것은, 신과의 상봉(相逢)과 대화(對話)에서, 인간이 사랑의 교훈을 선택하면, 이 선택이 인간에게 길과 생명(yes)이 되어지지만, 반대로 신과의 상봉과 대화에서, 인간이 율법과 계명을 거부하면, 이 거부의 결과로 심판(no) 즉 멸망이 오기 때문에, 심판(no)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초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바르트가 인용문에서 심판(no)은 독자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교훈(yes) 안에 부득이 포함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신학의 프로그램인 “상봉과 대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대화자로서의 하나님은 반드시 절대자가 아님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한쪽이 절대자이면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대자이신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보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선포하시고, 거부하며, 심판을 내리신다. 결코 대화에 응하시는 일이 없다. 입법자로서 법을 집행하시며, 상벌도 반드시 챙기시며, 인간이 대화하자면, 진노하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바르트만 아니라, 현대신학은 이러한 절대자의 실재(reality)를 믿지도 않지만, 절대자의 심판과 재앙은 더욱 싫어하기 때문에, 바르트나 현대신학이 상봉과 대화에 초대한 신은 심판과 재앙을 내리시는 절대자가 아니다. 단지 동등한 처지에서 대화에만 응해주는 신이다. 대화는 상대에게 강압적이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법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와 현대신학이 신을 대화자로 초청하는 것은, 없는 신을 초청하는 것이니, 마치 무당이 신을 부르는 살풀이와 같다.12

그러므로 현대신학이 추구하는 상봉과 대화는 허구이다. 모든 일반적인 법률이나 규칙도 반드시 강제성을 띨 때에만, 법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시비를 가리는 사법기관을 두지 않는다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랑만 할 줄 알고, 대화만을 원칙으로 하는 바르트와 현대인의 신에게는 현대인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 확실히 바르트와 현대인은 진퇴양난(dilemma)에 빠져 있다.


5)  인류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한 인류에게는 희망만 있다고 하였다

인류의 앞날에 결코 불행은 없으리라는 것이, 바르트신학이 추구하는 희망적 구원관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적극적인 희망을 앞의 인용문장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정복당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으로 확정된 존재이다. 』



ⓐ 바르트의 생각에,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인간을 정복당해야할 존재」로 본다는 것은, 곧 「인간을 전적 타락자」로 보아 「마땅히 멸망당해야할 존재」로 보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어지고, 절망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가 니체의 말을 빌려,「인간을 정복당해야 할 전적타락자로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이 확정 된 존재」로 보자고 하였다. 이 바르트의 주장 중에서 후반부가, 바르트가 현대문명의 구제책으로 외친 주장이므로, 확실한 주석이 요청된다. 다음은 후반부에 대한 필자의 주석이다.

ⓑ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으로 확정된 존재이다.」라는 후반부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스스로는 안 되지만, 인간이 하나님에게 정복당하여, 사랑의 교훈을 받아드린다면, 인류는 반드시 전쟁을 막고 화해를 이룰 것이라는 절대희망(확정된 존재)을 표현한 말이다. 이것은 바르트가 새로 구상해낸 화해의 복음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가 이 바르트의 화해의 복음을 받아드려, “화해의 복음”(1967년 신앙고백)을 공표했었다. 이 사실은 한신대 조직신학 교수인 박봉랑도 인정하여 주장하였다.13

그러나 바르트가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 절대희망론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대화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인간이 악을 행하여도 형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과학이 만들어내는 풍요와 향락과 욕망을 인간에게서 억제시킬 수 없으므로,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는 바르트의 절대희망론은 허구이다. 스탈린, 히틀러, 동조가 품었던 무한대의 욕망을 막지 못했던 불행(세계대전)이, 바르트와 현대신학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허구성을 말해준다.


      Note

1. The World Book Encyclopedia, The World War I, (1914-1918)
2. P. Tillich(1886-1965), 1933년에 독일에서 Nazi에 밀려 미국으로 이민, 유니온 신학교(1933-1955)와 하버드대학(1955-1962)와 시카고
     대학(1962-1965)에서 교수하였다.
3. MacKay, John, 현대신학의 동향, pp. 41-44, 대한기독교서회, 1950. MacKay(1889-1983)의 약력, 스카트랜드가 파송한 페루주재 선교사
     (1916-1925), 후에는 Uruguay, Mexico에서 선교활동하고,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 및 교장(1936-1959). WCC의 중앙위원 역임(1948-1954),
     PCUSA 총회장 역임(1953). 에큐메니칼 신학자
4. 본서, "15. 칼 바르트의 신학" 중에서 "(2) 바르트의 신론"을 참조할 것.
5. 설화: 한 민족에게 전승되어 온 신화, 전설: 민담을 통틀어 이르는 말, 동아새국어사전, 2005
6. 로마서 주석에서는 Urgeschichte를 사용했으나, Church Dogmatics에서는 geschichte를 사용했음.
7. 칼 바르트, "바르트 교의학개요", pp. 46-49, 전경연 번역, 대한기독교서회, 1986
8. 칼 바르트, 복음주의 신학 입문, p. 23, 이형기 번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0 (K. Barth, Evangel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Holt, Rinehart and Winston of Canada, 1963)
9. Ibid., 한역, pp. 31-32
10. Ibid., 한역, pp.32-33, 영역, pp. 11-12
11. The World Book, Encyclopedia, World War 1, 2, Dead-25,240,000. Wonded-38,200,000
12. 흉살을 피하려고 하는 굿-무당이 노래하고 춤추며 귀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의식, 동아새국어사전
13. 박봉랑, 1970년대의 신앙고백, 사상계 1966년 4월호,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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