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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러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 (2)                     신광철 목사




  3)  초대교회에 기준하여(The Basis in the Early Church)

훌러의 주장 8 :

초대 교회에서 널리 퍼진 여성의 존재를 문서화한 것 외에도,  사도행전의 기록은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항목을 추가로 제시한다.   첫째로, 성령께서 말씀을 이루시려고 권능으로 임하실 때(요엘2:28-29)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있었다(행전 1-2).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 설명하기를 말세에 하나님의 때가 왔고 여자와 남자에게 예언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했다.   이 기초적 역할은 초대 교회에서 중요했다(행21:8-9, 고전11:5).   현대 교회역사를 통틀어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사역에있어서 여성을지지하는 주요 논쟁 중 하나였다.

둘째로, 빌립보교회설립에 여성의 참여는 주목할만한 것이다(행16:11-40).   바울은 그 지역의 주요 도시인 빌립보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성문 밖에서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행16:13-15).   이 놀라운 여성 회당 지도자 중(one of the leaders of women’s synagogue) 한 사람이 분명히 루디아 였고,  그녀와 그녀의 집은 새로운 빌립보교회의 중심이 되었다(행16:14-15, 40).   이 자료는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에 동참 한 빌립보의 두 여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빌4:2-3).

셋째로, 사도행전은 브리스길라의 중요성을 나타낸다(행18:2, 18, 26).   그녀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교회에서 주목받는 아볼로에게 가르쳤다(행18:26).   브리스길라는 아볼로를 교회가 아니라 집에서 가르쳤다는 사실의 중요성에 대해 항상 논쟁이 있었지만,  아볼로를 가르쳤음을 인정해야한다(딤후2:12).


성경적 반론 8 :

첫째 내용에서 Fuller는 요엘2:28-29, 행21:8-9, 고전11:5의 내용을 통해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남자와 여자에게 동시에 임한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은사 중에 빌립의 딸들이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한 사건을 예를 들어 여성의 성직이 정당한 것처럼 자료로 제시한다.   그러나 고전11:5에 언급된 “여자의 예언”에서 우리는 여자가 성령 충만함으로 예언(prophesy)한다 할지라도 영적지도자(spiritual ruler)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고전11:5-10).

        “ 5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prophecy)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 . .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 . .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a symbol of power authority)를 그 머리에 둘찌니라”


위 성경구절의 배경은 창3:16 이다.   여자가 먼저 범죄한 댓가로 하나님이 명령하시기를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he shall rule over you)” 였다.   딤전2:12에서도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exercise the authority over a man)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여자가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할지라도 그녀는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가질수 없고 항상 남자의 권위(authority) 아래에 있는 존재임을 성경은 증거한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 안에서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지니라”고 했다(고전14:34).   여자는 구약(율법)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authority)앞에 항상 복종해야하는 존재이다.   이 권위(authority)에는 남녀평등이 없음을 하나님이 정하셨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어도 불변이다.

둘째 내용에서 바울이 유럽에 건너가 처음으로 여성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 예수 믿고 온 가족이 세례받을 뿐만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빌립보교회를 개척하게 했으므로 Fuller는 루디아가 빌립보교회의 영적 지도자였을 가능성을 언급하는듯 하다.   그것을 뒷 받침하기 위해서 루디아가 여성회당(women’s synagogue)의 지도자라고 한다.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house church)를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증거했던 유대인의 회당(synagogue)으로 말을 바꾸어 마치 루디아가 사도들과 동등한 지도자였던 것처럼 그 지위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한편, 그 당시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하고는 곧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은 핍박을 받으며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한 후 한 달도 못되어 그 곳을 떠난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바울은 지도자 없는 그들의 형편이 심히 걱정되어 디모데를 보내어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영적 상태가 매우 건강하다는 디모데의 보고를 듣고 매우 기뻐했다(살전3:6).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소규모 개척교회를 영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사도들은 편지로 교리와 교훈의 글을 적어 회람식으로 각 교회에 돌려가며 읽도록 했다(골4:16).   그 편지들의 모음이 오늘의 신약성경이다.   빌립보교회도 사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던 개척교회 중에 하나였다.

한국의 6.25동란 이후 1950년대 초에 한국의 남한은 교회의 불모지였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남한의 시골에 필요한 물건을 팔러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개척교회들을 세웠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도 아버지가 시골마다 물건 팔기위해 행상다니면서 개척교회들을 세우시고, 영적 지도자가 없는 그 교회들을 주기적으로 순회하면서 말씀으로 지도하셨던 생각이 난다.   사도 바울이 개척한 빌립보교회도 그와 흡사했다고 생각한다.

셋째 내용에서 Fuller는 행18:2, 18, 26에 등장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중에서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주도권을 가지고 남자 설교자 아볼로를 가르쳤으므로 여자가 남자에게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를 행사했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함께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행18:26).   여기서 여자의 이름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오므로 마치 이 여자가 리더쉽을 가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바울과 누가는 아무런 의미 없이 이름을 앞에 넣기도 하고 뒤에 적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는 브리스길라가 이름을 먼저 적었지만(롬16:3),  고린도전서에서는 아굴라 이름을 먼저 적었다(고전16:19).   누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는 행전18:2에서 그 가족을 소개할 때 아굴라 이름을 먼저 적었고,  26절에서는 브리스길라 이름을 먼저 적었다.

사도행전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관하여 기록한 누가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이 끝난 후에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A.D. 61-62년경 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딤전2:12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고 기록한 연대는 바울이 로마 감금에서 잠시 풀려나 전도여행 다니면서 로마에 도착한 때가 A.D. 61년이었으므로 약 A.D. 63년경에 디모데전서가 쓰여진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므로 누가의 기록년대와 바울의 기록년대는 거의 같은 시기이다.   사도행전과 디모데전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동일한 성령께서 누가에게는 “여자가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기록하게 하시고,  바울에게는 그 반대로 “여자에게 영적권위를 허락하지 않는다”로 기록하게 하셨을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여자 브리스길라가 남자 아볼로를 가르쳐 여성의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Fuller의 추정은 의미가 없다.


  4)  사도 바울에 기준하여(The Basis in Paul)

훌러의 주장 9 :

사도행전 2장처럼 갈3:28은 여성 사역을위한 기초 근거로서 수 백년 동안 인용되어왔다.   여성사역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종종 갈3:28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평등하게 접근한다는 영적 사실만을 언급하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다른 현실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갈2:11-14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할례자들에게 목격되자 슬그머니 피한 사건으로 인해서 바울이 베드로를 질책함으로 서로 갈등을 가졌고,  바울은 벨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으로 여기지 말고 자유인으로 대해 달라고 부탁하므로 종과 자유자 간에 갈등이 있었다(몬1:15-17).   바울의 남자와 여자에 관한 선언도 역시 그 같은 문제를 포함한다.   요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녀의 구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성적 구별(sexual differentiation)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인상적인 고전7:3-5과 고전11:11-12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상호성(the mutuality of men and women)을 가리키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성관계는 상호존중과 평등의 문제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포용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남편이 아내에 대한 모든 성적 권리를 가졌다는 유대인과 로마제국 안에서 이교도적 견해에 직접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고전11:11-12에서 바울은 머리에 쓰는 것이 여성참여(women’s participation)에 반대 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남녀 상호관계(mutuality of men and women)에 대하여 강력하고 명백하게 주장했다.   고전11:2-16의 여자가 머리에 쓰는 언급에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기도와 예언에 참여했음을 분명히 암시한다.   예언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에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교회에 “최고의(highest)” 선물(gift=은사)이다(고전 14:3). 그렇게 덕을 세우는 것은 교회생활의 목적이며,  성령에 따라 교회에서 가르침을 행사하는 것이다(the exercise of authority and teaching in the church).

따라서 바울은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문제를 언급하는 첫 부분에서 여자들은 그들의 머리에 권위를 가져야한다고 결론지었다(women ought to have authority on their heads).   고전11:10은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대부분 “권위의 표” 또는 “수건”으로 번역).   하지만 바울은 항상 권위의 적극적인 행사를 의미 하는(which always means the active exercise of authority) 평범한 단어를 사용하여 여자가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women have authority) 단언한다(asserts).



성경적 반론 9 :

위 문장들에서 Fuller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성적구별(sexual differentiation)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다.   즉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고전7:3-5와 고전11:11-12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고전7:3-5에서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하며, 남편도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한다”는 내용을 바울이 기록했다.   바울은 왜 이런 내용을 기록했을까?   글쓴 목적이 분명히 문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Fuller는 2절(“음행의 연고”)를 제외하고 3-5절만 언급하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만 설명하였다.   그것이 바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교인 중에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지적했다(고전5:1).   이런 음행사건은 남녀 성차별(sexism)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음욕(sexual desire) 때문에 일어났다.   그래서 바울은 음욕으로 죄 지을 가능성 때문에 남자나 여자가 결혼할 것을 권장하였고,  결혼 후에 서로 절제 못하면 사탄에게 시험받아 음행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권고였다(5절).   고전7:3-5의 내용은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가 성차별당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남녀평등(gender equality)을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이것도 Fuller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떼어내어 자기에게 맞게 설명하는 사례이다.

고전11:2-16에서 Fuller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를 언급하면서 여자와 남자가 동일하게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이 예언은 “최고의(highest)” 선물(=은사, gift)이라고 극찬하였다.   이 표현도 성경을 왜곡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13:2에서 “사랑의 은사”가 “예언의 은사” 보다도 더 월등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Fuller가 이렇게 성경을 왜곡하면서까지 “예언”을 “최고의 은사(gift)”로 치켜올린 것은 예언하는 여자의 위상을 최고로 하여 그녀의 권위(authority)를 최상으로 높이기 위함인 것 같다.   사실 요즘 여자목사들의 주 특기가 “직접계시”를 받았다거나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는 “예언”을 말하며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것이기도 하다.

또 여자가 머리에 써야하는 문제는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이 여자의 권위가 머리에 있다고 단언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자가 기도나 예언할 때 머리에 쓰지 않으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했다(고전11:5).   만일 머리에 쓰지않으려면 머리를 밀어버려야 하는데, 여자가 머리를 밀어서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고 권했다(고전11:6).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에게 권위(authority)가 주어졌다는 표시로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욕되지 않고, 부끄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쓰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자가 머리에 쓰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여자의 머리 위에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to have a sign of authority).   다시 말하자면, 여자의 머리는 권위 아래(under the authority) 있다는 의미이다.

여자의 머리위에 있는 권위(authority)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고 하였고(고전11:3),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시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 하였다(고전11:7).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에 쓸 필요가 없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에 써야한다(고전11:5-6).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에 둘찌니라"고 증거했다(고전11:8-10).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표시로써,  또 여자의 머리위에 남자(하나님의 영광)가 있다는 표시로써 머리에 써야한다.   그것은 여자의 머리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뜻이다(cf. 창3:16).   창3:16에서 처럼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바울은 권위의 순서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증거하고 종속(subordination) 관계도 가늠케 했다(고전11:3).







그러므로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가기 위해서 먼길을 오다가 브엘 라해로이에서 이삭을 만나자 약대에서 내린 후 얼굴을 면박(veil)으로 가렸다(창24:65).   여자가 머리에 쓰거나 면박(veil)으로 가리는 것은 겸손과 종속의 상징이다(symbol of modesty and subordination).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기 때문에 리브가는 남편 앞에서 "겸손과 종속의 상징"인 면박(veil)으로 얼굴을 가렸다(창24:65).   그리고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로써 머리에 써야 하는 이유는 천사들이 증인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히1:14) (33).

하나님이 정하신 남녀 간의 이 창조질서(Creation Order)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불변하는데,  페미니스트들(feminists)은 모든 면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 권위면에서도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이 창조질서를 파괴하면서 하나님께 도전한다.   Fuller는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고 마치 페미니스트들에게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가 주어진 것처럼 그들의 입지를 높여주고 있다.


훌러의 주장 10 :

바울서신에서 복음 사역에 동참한 12명의 여성들이 있지만 여성이 사역에 참여하는 것과 관련하여 신약 성경에서 가장 흔히 무시당하는 사례이다.   가정교회(1세기의 유일한 교회 유형)의 지도자로 알려진 세명의 여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글로에(고전1:11), 눔바(골4:15), 압비아(몬1:2) 이며, 이들에 더 추가하여 루디아가 있다(행16:14).   또 바울은 주 안에서 수고한 마리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하였다(롬16:6, 12).

헬라어로 번역된 “많이 수고한(work very hard)”(롬16:6) 단어는 바울이 매우 자주 사용한 언어인데 복음사역의 특별한 일(the special work of the gospel ministry)를 언급한다.   그 일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사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도자들과 권위(authority를 가진 사람들의 사역을(고전16:15-16, 살전5:12, 딤전5:17) 포함하는 특별한 일들이다(고전4:12; 15:10, 갈4:11, 빌2:16, 골1:29, 딤전4:10, 행20:35).   따라서 바울이 사용한 "많이 수고한"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일을 하는 일시적 용어가 아니었다.


성경적 반론 10 :

복음전도 초기에는 대부분 가정교회로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 자기 집을 예배장소로 내어 준 여성들이 글로에, 눔바, 압비아, 루디아이며 그들은 당시 가정교회의 지도자들(leaders)이었다고 Fuller는 주장한다.   그런데 그 네명의 인물 중에 눔바(Nympha, 골4:15)는 여성이 아니고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한 남성이었다( the church that is in his house).   그리고 빌레몬1:1-2에 나오는 가정교회의 집은 압비아(Apphia) 여성의 집이 아니고 빌레몬의 집(the church in your house) 이었다 (34).   자기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한 여성은 글로에(Chloe)와 루디아(Lydia) 두 여인 뿐이다.   성경은 이 두 여인들이 어떤 지도자(leader)라고 지칭한 곳은 한 군데도 없고,  단지 “그녀의 집”이라는 표현 뿐이다.   집을 제공했다고 해서 영적 지도력을 행사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상상 이다.   개척당시의 가정교회 멤버들은 너 나 할것없이 모두 믿음의 초보자이기 때문에 영적 권위(authority)를 가진 지도자(leader)가 될 능력이 없다.

한국의 6.25 동란 직후 남한의 각 시골에서도 비슷한 가정교회들이 많이 생겼는데 집을 제공한 집주인은 누구 보다도 더 많이 봉사하며 베풀었지만 그들이 영적지도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순회 방문하며 영적으로 지도하는 자에게 협력한 “동역자”에 불과했다.   사도시대의 초기 가정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힘쓰고 그 일에 협력한 자들을 흔히 “동역자” 라고 말했다(롬16:3, 9, 21, 고전3:9).   그 때 사용한 헬라어 단어 쉬넬고스()는 형용사로서 “함께 일하는, 돕는, helping”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형용사 앞에 관사를 붙여서 “함께 일하는 자, 동역자, 돕는자, helper”라고 한다.   “동역자” 라는 단어 자체가 Fuller가 말하고 싶은 영적 권위(authority)를 가진 지도자(leader)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겐그리아 교회를 위해서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고,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다(롬16:6, 12).   Fuller는 바울이 “많이 수고한” 이라고 표현한 이 단어가 보통 단어가 아니고 여성들이 특별한 일(special work)에 참여한 것을 말하며,  그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사역(apostolic ministry)과 기타 다른 권위를 가진 사람들(other persons of authority)의 사역에 같은 수준으로 참여한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Fuller는 이 여성들이 그런 권위(authority)를 가진 사람들과 동역했기 때문에 그 여인들도 영적 지도자라고 한다.

“(많이) 수고한” 의 헬라어 단어는 듈루오() 동사로서 “섬기다, 봉사하다(serve)”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많이 수고한”이란 단어의 의미는 “열심히 봉사하다(serve hard)”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를 들면,  여러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자원봉사에 나가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거기 참여한 학생도 선생의 지위(position of a teacher)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Fuller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Fuller가 위에서 언급한 여성들이 사도들과 함께 “많이 수고한” 이유 때문에 그 여성들도 영적 지도자(spiritual leader)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단어의 의미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성경을 풀이하는 것이다.


훌러의 주장 11 :

남편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 아굴라의 이름 보다 먼저 거론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아마도 브리스길라가 중요하고 현저한 지도자이거나, 남편 아굴라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 또는 아굴라보다 더 부자인 것을 암시한다(This may indicate that Priscilla was . . . ).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남편 아굴라를 복음 사역에서 다른 지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라고 불렀다.   (우르바노-롬16:9, 디모데-롬16:21, 디도-고후8:23, 에바 브로디도-빌2:25, 글레멘드-빌4:3, 빌레몬1:1, 데마와 누가-몬1:24, 아볼로와 그 자신-고전3:9).


성경적 반론 11 :

Fuller는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거론 되었으므로 그녀가 사회적 인지도가 높거나  남편보다 부자였기 때문에 지도자(leader)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This may indicate that Priscilla was . . . ).   이같이 추정한 이슈는 진실 입증에(in proving the truth) 거론할 가치가 없다.   그런데도 Fuller는 자신들이 추측으로 정한 브리스길라의 지도자 역할(a presumed leader role of Priscilla)을 근거로 사도 바울이 다른 동역자들(위에 열거한 명단들)에게 사용한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란 용어를 브리스길라에게 적용한다.   추정한 것(presumption)을 진실에 접목(graft)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의 동역자들인 우르바노, 디모데, 디도, 에바브로디도, 글레멘드, 빌레몬, 데마, 누가, 아볼로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여성 브리스길라를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가진 지도자(leader)로 격상시키기 위해서이다.   그처럼 허위로 격상시 킨다 하더라도 "동역자"라는 단어가 사도들과 같은 지위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Fuller가 열거한 동역자들 이름 중에서 우르바노, 글레멘드, 빌레몬, 데마라는 사람들의 사역에 관해서 성경은 구 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리고 “동역자”의 의미는 앞서 “성경적 반론 10”에서 언급했듯이 “함께 일하는 자, 동역자, 돕는자, helper”이므로 그 단어 자체가 어떤 권위(authority)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Fuller는 빌레몬서1:24에서 데마를 바울의 “동역자”로 인용했는데,  그 성경구절에는 네 사람의 동역자들(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을 언급했지만 Fuller는 그 중에서 데마의 이름만 적었다.   여기서도 Fuller는 중요한 마가의 이름을 생략했다.   마가의 경우를 보면 “동역자”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마가라 하는 요한”은 바나바와 사울(바울)과 함께 동행한 “동역자” 였다(행12:25).   헬라어 이름으로는 마가(Mark)이고, 히브리어 이름으로는 요한(John)이다 (35).   바울(사울)과 바나바는 전도여행하면서 “동역자” 마가(요한)를 “수종자로 두었더라(They also had John as their assistant)”고 했다(행13:5).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과 동등한 지도자(leader)가 아니고 복음 사역에 협력하며 도와주는 사람(assistant)도 “동역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행12:25과 행13:5이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 여러 여인들을 가리켜서 “동역자” 라고 한 것은 그들이 복음 사역에 헌신하며 도와준 사람들(assistants)이라는 의미이다.   그 여성들이 지도자들(leaders)이라는 뜻이 아니다.


훌러의 주장 12 :

사도 바울은 빌4:2-3에서 두 명의 여성, 유오디아(Euodia)와 순두개(Synteche)를 언급하며 이 두 여성을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along with Clement and the rest of my fellow workers)”과 같은 부류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두 동역자가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contended at my side in the cause of the gospel)” 자들 이라 하면서,  네 여성에게 언급했던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worked very hard in the Lord)” 표현(롬16)과 비슷 한 말을 이 두 동역자에게 적용하였다.   행16:11-40의 (루디아 내용) 관점에서보면, 빌립보에서 두 명의 여성 지도자가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적 반론 12 :

Fuller가 빌4:2-3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3절의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유오디아와 순두개) 이다.   영적 지도자의 특징이 마치 “복음에 함께 힘쓰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요지이다.   그런 모습이 나타나면 그 여자들은 사도들과 동류의 지도자급이라는 결론이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하려면 “함께 힘쓴다”는 헬라어 동사 쉬나들레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쉬나들레오() 동사는 “struggling along with, striving together, 함께 노력하다, 함께 씨름하다, 힘을 같이 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개가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쉬나들레오=) 자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두 여인이 사도 바울과 함께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힘썼는가?   거기에 대한 해답이 빌1:27에 나온다.

한글 개역성경은 빌1:27에서 헬라어 쉬나들레오(를 “협력하는”이라고 번역되었으나 빌4:3에서는 “힘쓰는”이라고 번역했다.   본래의 뜻이 “함께 노력하다, 함께 씨름하다, 힘을 같이 하다” 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1:27에서 빌릴보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힘쓰라(쉬나들레오= )”고 부탁했는데,  그 “복음의 신앙”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것은 바로 앞에 기록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다.   그 거룩한 생활을 위해서 모두 “일심으로 서로 한 뜻으로(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노력하라는 것이 빌1:27의 핵심 내용이며,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그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유오디아와 순두개는 사도 바울이 지시한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함께 힘쓰라(sunaqlevw)”는 교훈을 받고 그 대로 순종하며 “함께 힘쓴” 신앙의 모범을 보이므로써 바울의 사역을 도왔다.   그래서 빌4:3에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이라고 했다.   즉 그 두 여인은 빌1:27의 교훈을 듣고 바울의 뜻을 받들어 “복음(의 신앙)에 힘쓴” 자들이었다.   즉,  어떤 사역을 힘써 행한 것이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 힘쓴 부녀들이다.

앞서 “성경적 반론 11”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바울의 동역자 마가의 경우 처럼 “사도들의 복음사역에 도와주는 사람(assistant)” 이란 의미에서 두 여인은 바울의 동역자들 이었다.   바울의 동역자 마가(Mark)가 지도자(leader) 가 아니고 돕는 자(assistant)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오디아와 순두개가 바울의 동역자인 것은 권위(authority)를 소유한 지도자(leader)가 아니라 바울을 돕는 자(assistant),  다시말해서, 그 복음 사역의 열매를 나타내어 사도를 돕는(assisting) 일에 “힘쓰던 부녀들” 이었다.


훌러의 주장 13 :

바울의 편지를 로마교회에 전해준 것으로 추정되는 뵈뵈(Phoebe)를 바울이 칭찬하면서, 그녀를 겐그리아교회의 “일군(servant)”이라 하였다(롬16:1-2).   바울은 정기적으로 이 “일군(servant)” 이란 단어를 복음의 사역자들로 분명히 이해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했다 :
예를 들면, 그리스도(롬15:8), 아볼로(고전3:5), 에바브라(골1:7), 디모데(딤전4:6), 두기고(엡6:21, 골4:7), 바울 자 신(고전3:5, 엡3:7, 골1:23, 25), 그리고 그밖의 예들(고후3:6, 6:4, 11:15, 23).
그러므로 뵈뵈도 겐그리아교회의 사역자(지도자/설교자/교사, leader/preacher/teacher)로 이해되어야 한다(should be understood).
   


성경적 반론 13 :

사도 바울이 일반적으로 복음 사역자들에게 적용되는 “일군(servant)”이란 단어를 여성 뵈뵈에게 적용했다고 해서(롬16:1-2) 그녀가 겐그리아교회의 여성 사역자(지도자/설교자/교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애매 모호한 주장이다.   Fuller는 지금 여성이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를 하나님이 금지하셨다는 성경 기록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인데, 자신의 주장이 “이해되어야 한다(should be understood)”라고 하는 것은 Fuller의 주장이 반론(counter)으로 성립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Fuller가 강조하는 “일군(servant)” 의 헬라어 단어 디아코노스()의 의미는 “종, 명령 수행자, 시중드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러한 일군들이 초대교회에 필요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의 제반 일들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선정했다.   그들을 집사라고 했는데 “일군(servant)”이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 디아코노스()를 동일하게 “집사(deacon)”에게도 적용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영어 번역본은 뵈뵈가 여성 집사(deaconess)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RSV).
   
성경은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exercise the authority over a man)을 금지했으나(딤전2:12),  여자가 여자를 가르치는 것은 허용하였다(딛2:3-6).
        “늙은 여자로는 . . . 젊은 여자들을 교훈(teach, or train)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 . . .
         너 (디도)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exhort, 훈계하여) 근신하게 하되 . . . . “
(딛2:3-6)
교회 안에는 젊은 여성들을 지도하며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이 든 여성들이 “일군(servant)”이 되어 여성들을 지도해야 했다.   그리고 남자인 디도는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고 지도하라고 바울이 지시했다.   뵈뵈는 자기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한 일군이며, 여성들을 지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Fuller가 원하는 대로 사도 바울이 남자와 동일한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뵈뵈에게도 동일하게 인정했다면,  바울이 증거한 딤전2:11-14, 고전14:34-35, 딤전3:2, 딤전5:17은 모두가 허위가 될 것이다.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화와 감동주신 성령님께서 그런 이율 배반적인 거짓을 기록하게 하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uller가 남성에게만 허락된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여성 뵈뵈에게도 기어코 동일하 게 적용하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확실한 증거 없이 가설(“should be understood”)을 진리로 변개하려고(to change the hypothesis to truth without solid evidence)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했다(벧후3:16)


훌러의 주장 14 :

바울은 안드리고(Andronicus)와 유니아스(Junias)를 “사도들 중에서 뛰어난자”(롬16:7)라고 하여 사도들 그룹에 포함시켰다.   (성경에 기재된 헬라어) 유니아스(Junias)는 영어 번역본에서 남성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1세기에 그런 남성 이름이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유니아(Junia)란 여성 이름은 흔했다.   롬16:7 문장의 헬라어 문법은 남녀를 동일하게 표기했다.   따라서, 다른 증거를 기초하여 이 사람이 여성(Judia)인지 또는 남성(Judias)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유니아(Junia)는 1세기에 증명된 이름이고, 4세기에 대 교부이자 바울 서신 주석가인 죤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여자 유니아(Junia)로 이해했으므로 우리도 역시 여자로 읽어야한다.   사실 13세기가 되어서 그녀가 유니아스(남성)로 바뀌었다.
   


성경적 반론 14 :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그의 주석(Homily on Romans  31.7; NPNF 1, 11:555)에서 롬16:7의 인물을 여자로 불렀다.   그러나 다른 교부 오리겐(Origen)은 헬라어 Junias(남성명사) 그대로 남성으로 불렀다(MPG 14:1289).   그리고 초대교회 역사학자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분명히 Junias의 남성명사를 사용하였고,  “바울이 언급한 유니아스는 시리아(Syria) 아파메이아의 감독(bishop of Apameia)이 되었다” 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유니아스(Junias)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36).   분명치 않은 자료(unclear material)를 “기록된 말씀”(고전15:54) 해석에 첨가해서 입증 자료로 삼으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상이다(계22:18-19).


훌러의 주장 15 :

이 곳에서 조사한 13명의 여성들(루디아, 글로에, 눔바, 압비아, 마리아, 버시, 드루배나, 드루보사, 브리스길라, 유오디아, 순두개, 뵈뵈, 유니아)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복음사역에 참여했다는 것을 바울(의 서신)에서 명백히 증거한다.   바울이 사용한 공통된 용어는 사역에서 남녀간의 역할이나 기능을 구분하지 않았다(Paul’s common terminology made no distinctions in roles or functions between men and women in ministry).
   


성경적 반론 15 :

Fuller는 “4) 사도 바울에 기준하여(the Basis in Paul)” 항목에서 거론한 13명의 여성에 관하여 결론지었다.   13명의 여성이라고 했지만, 위 “성경적 반론 10”에서 밝혔듯이 눔바(Nympha)는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며, 가정교회 로 집을 제공한 사람은 여성 압비아(Apphia)가 아니고 남성 빌레몬이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11명의 여성을 거론한 셈이다.   Fuller는 결론짓기를 사도 바울의 서신은 그 여성들이 남성에게와 동일하게 복음사역에 참여하여 그 역할이나 기능들에 대해 구별하지 않았다고 한다(no distinctions in roles or functions between men and women in ministry).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복음사역과 생활에서 여자의 역할과 기능(the roles or functions)을 확실히 구분해 주었다.
        딤전2:12 =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딤전2:11 =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고전14:34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지니라.”

        고전14:35 = “(여자가)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라.”


  5)  고린도전서 14:34-35 문제(1 Corinthians 14:34-35)


훌러의 주장 16 :

바울이 이미 고린도전서 편지에서 여성이 교회에서 권위를 가지고 기도와 예언에 참여했다고(Women did participate in prayer and prophecy with the authority in the church) 지적한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전11:5, 10, 고전 14:3-5).   이 사실만으로도 고전14:34-35가 여성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일반적이고 절대적이며 시간을 초월한 금지(prohibition)라고 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전11:5, 10의 증거를 “무시하는(dismiss)” 것은 한 때 흔한 일이었다.   고전11:2-16은 교회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모임에 관한 것이었다(did not refer to a meeting of the church, but only to a private non-church gathering).   고전11:2에서 14:40까지의 전체 맥락, 고전11:16의 논쟁, 그리고 고전11:2과 고전11:17 사이의 대비(parallel)는 그런 생각을 지지할 수 없게 한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고전11:5이 단지 가설적이라 했지만 그런 접근은 분명히 절망적 주장이다.
     


성경적 반론 16 :

Fuller는 “여자가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에 권위를 가지고(with the authority)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여자가 교회에서 공적인 권위를 나타냈다(demonstrated public authority in the church)는 뜻이고,  그래서 “여성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일반적, 절대적, 시간을 초월한 금지(prohibition)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Fuller가 고전11:2-16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자가 머리에 쓰는 문제는) 교회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모임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한다(did not refer to a meeting of the church but only to a private non-church gathering).   Fuller는 고전11:2-16 전체 내용이 교회의 모임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문맥 안에 있는 고전11:5, 10의 내용은 여자가 교회에서 행한 일이라고 한다.   이율배반적인 설명을 함으로써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편지를 쓰게 된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점들,  즉 교회 안에서의 분열, 도덕적 혼란, 결혼문제, 우상에 관한 문제(고전8:1-11:1)를 다루고,  곧 이어서 Fuller가 인용한 고전11:2-14:40까지의 전체 내용은 공중예배(Corporate Worship)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문제(고전11:2-16), 옳 바른 성만찬(고전11:17-34), 영적 은사의 활용문제(고전12:1-14:40) 이다.   그 뒤에는 부활에 관한 교리(고전15:1ff)가 이어진다.
   
그런데 Fuller는 어째서 고전11:2-16는 교회 모임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을까?   그것은 논쟁의 핵심되는 고전11:10의 “여자는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찌니라”는 내용을 교회의 공적 모임에는 해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참고: “성경적 반론 8”)  그래서 “고전11:2-16은 교회의 공적 모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라며 그 부분을 잘라낸다.   이것이 바로 Fuller가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Fuller는 Fuller신학교 창설자 오켕가(Ockenga)의 주장대로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   또 와그너(Wagner)의 주장대로 “타협이 안되는 그 성경구절들의 자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풀이한다고 본다.


훌러의 주장 17 :

고전14:34-35의 “잠잠하라”는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잠잠함”이어야 한다(the silence must be a specific, limited silence).   수 많은 제안들이 있지만 주요 대안만 검토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전14:34-35의 내용이 바울이 쓴 것이 아니고 필사자들이 삽입했거나 고전14:36의 바울 반대자들의 질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한 견해는 단지 수다떠는 것(mere babbling)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 그런 말을 금지했다는 내용은 없으며 바울이 설명한 예배에서 모든 사람에게 그런 난센스는 확실히 금지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방언(glossolalia)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헬라어 glossolalia는 항상 “방언(tongues)” 또는 “방언으로 말하기(speaking in tongues)”를 뜻하는 것이고 단순히 “말 하기(speaking)”를 언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ferred never simply as speaking).



성경적 반론 17 :

Fuller는 고전14:34-3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의 내용이 여성의 교회사역에 대한 금지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금지는 여자의 교회 사역에 대한 것이 아니고 특별하고 제한적인 면에서만 해당되는 금지라는 것이다.   그것을 합리화 시키려고 일부 학자들의 견해를 언급한다.   즉 고전14:34-35의 내용은 성경을 복사 기록하는 필기자들이 임의로 삽입했거나 또는 바울이 반대자들의 질문(고전14:36)에 대답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추측에 불과하므로 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Fuller는 “잠잠하라”는 금지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사도 바울이 자주 언급한 방언하는 자들을 향해서 말한 것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이 금지한 것은 “방언(=tongues, glossolalia)” 또는 “방언으로 말하기(speaking in tongues)”를 금지한 것이고 단순히 “말하기(speaking)”를 언급한 것은 결코 아니다 라고 한다(referred never simply as speaking).
   
하지만 Fuller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언급은 “방언”과 “예언” 두 가지 부분에서 각각 사용하였다.   첫째로, 혼란스러운 방언(tongue)하는 자에 대해서 “잠잠하라”고 하였고(고전14:26-28),  둘째로, 혼란스러운 예언(prophecy)하는 자에 대해서 “잠잠하라”고 하였다(고전14:29-35).   예언하는 자들이 혼란을 피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 . “ 라고 지적한 후에 교회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예언자들을 향하여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것이다(고전14:35).
   
사도 바울의 이러한 지시는 반드시 교회가 지켜야할 금지사항이기 때문에 그는 방언하는 자나 예언하는 자나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선언했다(고전14:37).   Fuller가 고전14:34-35를 과소평가하려는 것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다.


훌러의 주장 18 :

아마도 오늘날 여성이 교회에서 권위(authority)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 인기있는 견해는 고전14:29에서 예언자들의 말을 분별하도록 금지된 말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예언할 수 있으나(고전11:5) 예언을 분별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는 논증이다.   예언에 대한 평가는 교회에서 진정으로 권위 있는 연설 수준으로 여겨지는데 여성은 제외된다.
     
이 견해에는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 고전14:34에서 "말하다(speak)"라는 말은 그 언어 자체나, 고전14:34-35의 문맥에서 예언적 평가의 개념으로 그 단어를 식별한다는 암시가 없다.   둘째로,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에 두 가지 수준의 등급이 있다는 생각,  즉 예언과 예언의 분별 중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는 것과 다만 남자에게만 해당된다고 하는 분명한 암시가 바울 서신에 없다.   사실상, 바울이 고전14:1-25에서 말한 예언에 대한 자신의 정의와 변호는 예언 자체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권위있는 발언( the prophecy itself is authoritative speech of the highest level in the church)임을 암시한다.
     
Fuller에게 가장 적절한 견해는 바울 당시 문화에서 배우지 못한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골치아픈 질문들(disruptive questions)을 금지한 것으로 이해하는(to understand)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제안한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 . . “(고전14:35)라고 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처럼 혼란스런 질문은 바울 당시 불명예스럽게 여겨졌는데, 그것은 어떤 주제를 막론하고 어떤 아내이든지 간에 도덕적으로 무분별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혼란스런 질문에 대한 견해는 바울이 고전14:26에서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는 언급에도 잘 들어맞는다.   따라서, 많은 성경 해설이 고전14:34의 “잠잠히(silent)” 라는 단어 만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잠잠함(silence)”에 대한 권고는 세 군데 이다(고전14:28, 30, 34).



성경적 반론 18 :

Fuller는 우선 여성들의 예언 자체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권위 있는 발언(the prophecy itself is authoritative speech of the highest level in the church)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의 고전14:1-25을 인용한다.   Fuller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요즘 여성목사들의 주 특기(main activities)가 직접계시(direct revelation) 를 받아서 예언하는(prophesy) 것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Fuller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Fuller가 인용하는 고전14:1-25 앞에서 바울은 이미 예언이 최고의 은사가 아니며,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하여 없어질 것이라고 미리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고전14:1-25의 내용이 나온다.   고전14:1-25 바로 앞에 바울이 무엇이라고 언급했는지 살펴보자.
     
      고전13:8-10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will fail) . . .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we prophesy in part)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prophesy in part)이
                  폐하리라(will done away)”

     
위 말씀에서 보듯이 “예언”은 최고의 은사가 아니고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즉 인간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의 말씀이 완전한 계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때에는,  다시 말해서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부분적으로 필요했던 예언이 폐하여 없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것을 확인해 주는 내용이 요한계시록22:18-19에 나온다.
     
      계22:18-19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the word of prophecy)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the word of prophecy)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수님은 마지막 사도인 요한에게 주신 계시가 “(마지막) 예언의 말씀(the final word of prophecy)” 임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선포로 마감한 “예언의 말씀(the word of prophecy)”에 더 추가해서도 안되고, 또 부분 적으로 삭제해서도 안된다고 단언하셨다.   예수님에 의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구원의 계시가 완성되었으므로,  사도 바울이 고전13:8-10에서 언급한 대로 “부분적으로 예언하던 것(prophesy in part)” 은 이제 “폐하여 없어졌다(done away)”.   더 이상 “예언의 말씀(the word of prophecy)”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선언하셨으므로,  요즘 여자목사들이 자신들의 “예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강한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의심해 볼 여지가 많다.   예수님이 마감하신다고 선포한 그 “예언의 말씀”을 요즘 여자목사는 누구에게서 받는 것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행태이다.   지금 여자목사들이 기독교 안에서 그런 예언의 붐(a boom of prophecy)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배도”의 현상이라고 본다(살후2:3).
     
사도 바울이 말하는 최고의 은사는 무엇인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earnestly desire the best gifts)”(고전12:31)했는데,  그 더욱 큰 은사가 “사랑”임을 고전13장에서 언급한다.   “예언(prophecy)”은 최고의 은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예언의 말씀”을 마감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폐하여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예언”을 앞세우며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을 미혹한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 하수인들을 의의 일군으로 가장시킨다(transform themselves into ministers of righteousness ?고후11:14-15).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일은 사탄의 능력을 힘입어서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with all power, signs, and lying wonders)”으로 멸망당할 자들을 미혹한다고 했다(살후2:9-10).   바로왕 앞에서 모세를 대적하여 애굽의 술사들이 지팡이로 뱀이 되고, 호수가 피바다로 변하는 기적을 행한 것처럼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이 사탄에게도 그런 능력을 허락하실 줄로 안다(욥2:4-6).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다음 이슈에서, Fuller는 고전14:34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이 그 당시 상식이 모자라는 아내들이 교회에서 골치아픈 질문하기(disruptive questioning)를 금지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그 다음 구절(35절)에서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 . . “라고 하였고,  그래서 바울은 적절히 질서를 유지하도록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6절)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여자가 교회에서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Fuller가 고전14:34에서 여자가 “말하는(speak)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라고 한 것의 “말(speak)”은 고전14:34-35에서 “예언”으로 식별해야하는 암시가 없다고 한다.   그러한 주장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부분적으로 자기들 편리한 대로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울의 고전14:29-34 내용은 교회에서 “예언하는 일”에 혼란스러운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바로 여자들인 것을 34절에서 지적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예언하는 자는...”이라 언급하였고, 32절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라고 한 후,  33절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예언하는 자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기 때문에 바로 34절에서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라고 했다(고전14:34).   바울이 이와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지시한 것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여자의 본분을 떠나서 무질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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