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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러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 (3)                     신광철 목사




  6)  디모데전서 2:8-15 문제 (1 Timothy 2:8-15)

훌러의 주장 19 :

딤전2:8-15은 신약성경에서 여성이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인용되는 명령(딤전2:11-12) 구절이다.   그러나 11-12절을 인접한 딤전2:8-15에서 격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만일 어떤 구절이 딤전2:8-10에서처럼 문화적으로 얽혀져 있고(culturally bound), 또는 특별히 딤전2:15에서처럼 바울신학에서 어려운 점이 인지된다면, 딤전2:11-14을 이해할 때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함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딤전2:11-14은 여성이 수행하는 가르침과 권위에 대한 일반적 금지사항임을 유의해야 한다.   그 구절은 특정 수준의 사람들에게만 지적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일반인과 구별하여 안수 받는 자, 또는 선교사들과 구별되는 목사들).   더 나아가 그것은 특정 유형의 가르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함께 나누는 것에서 구별하는 설교, 신학교 강의, 또는 신학서적 쓰기).   다시말해서, 만일 딤전2:11-12이 다른 문화(transcultural)였다면, 교회에서 여성이 가르치고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모든 활동을 금지하는 것이다.
   


성경적 반론 19 :

Fuller는 위 문장들에서 루톨프 불트만(Rudolph Bultmann)같은 급진적 신학자들(radical theologians)의 사상을 드러낸다.   그들은 신약성경이 원시 기독교인들(primitive Christians)의 주관적 성향에 따라 기독교의 광범위한 원칙을 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life style)에 적용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는 주장하기를 그러한 것들이 1세기 교회에서는 진리였지만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하며,  신약성경은 주어진 문화와 역사적 상황의 분위기와 박자(mood and tempo)에 맞게 표현의 형식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38).
   
Fuller가 “문화(culture)” 또는 “다문화(transcultural)”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트만(Bultmann)처럼 전통적 성경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그러한 급진적 신학사상은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Fuller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Fuller는 11-12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는 구절을 소위 초대교회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딤전2:8-15에 함께 묶어 성경을 풀이하면서,  그 11-12절은 오늘날 문화와 삶의 스타일에 맞지 않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Fuller는 신학교 창설자 오켕가(Ockenga)의 주장대로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 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둔다”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딤전2:11-12을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풀이하며서 전통적 해석을 부정한다.


훌러의 주장 20 :

딤전2:11-12에 사용된 “조용히(in quietness, or silent)”라는 헬라어 단어가 NIV성경 살후3:12에서는 “정착(settle down)”이라고 번역되었다.   다만 “언어적 침묵(verbal silence)”을 의미한다고 가끔 가정되는 이 용어는 정상적 관행의 적절한 명령 또는 수락의 표시로 더 잘 이해 된다.   (12절) “주관하는(to have authority)”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기록되었고, 그리스어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권위(authority)에 대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일반적 용어는 아니다.   오히려 권위의 침해나 남용을 의미하는 부정적 용어이다.   그러므로 딤전2:11-12의 금지는 어떤 악용하는 활동에 대한 반대이지 교회에서 적절하게 가르치고 권위를 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악용된 사례가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에서 언급된 이단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단자들은 분명히 비정상적으로 성적 관심(sexuality)에 접근했으며(딤전4:3, 딤전5:11-15),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을 속이는데 촛점을 맞추었다(딤후3:6-7).
   


성경적 반론 20 :

Fuller는 (12절의) “주관하는(to have authority)” 헬라어 아우덴테오()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기록되었고 그리스어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면 그 특이한 단어의 사용 유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헬라어 사전에서 아우덴테오() 단어의 의미가 “권위를 가지다(have authority), 권력을 휘두루다(domineer), 누구를 지배하는(over someone)”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39). 딤전2:12에 기록된 헬라어 아우덴테오() 단어는 그대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딤전2:12에서만 사용된 이 유일한 헬라어 단어가 바울서신에서 언급한 이단자들의 행태하고는 아무련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uller는 논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비약시키면서 근거없이 성경을 왜곡 해석한다.   이 헬라어 단어는 여성들을 속이고 비하시키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이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에서 헬라어 자체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훌러의 주장 21 :

이러한 금지들(injunctions)은 창세기 1장(딤전2:13) 보다는 창세기 2장에서 부분적으로 선택된 논증(딤전2:13-14)과 이와(Eve)가 속은 사실로 뒷받침 된다(딤전2:14).   (고후11:3에서 남성 이단자들에게 이것을 사용한 것을 보라.)   창세기 논증의 상황은 고전11:7-9에서 여자가 기도나 예언할 때 머리에 써야 한다는 논증과 유사하다.   두 경우, 성경적 논증은 현지화 되고 제한된 교훈을 지지하기 위하여(to buttress a localized, limited instruction) 사용된다.   여성을 위한 결론적 희망의 말(딤전2:15)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역할을 확인한 것인데, 그 역할은 여성이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음을 믿는 문화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유일하게 적절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결론(딤전2:15)은 딤전5:3-16과 딛2:3-5와 비슷한 취지이며, 둘 다 특정 문화적 개념들(notions, i.e. synonym for expectations)과 관련이 있다.


성경적 반론 21 :

Fuller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to have authority)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딤전2:12)라는 금지가 창세기 2장의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Eve)가 그 후며”(딤전2:13)와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않고 하와(Eve)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라”(딤후2:14)는 구절에 근거한다고 인정했다. (여자의 이름이 헬라어로 "이와"이고 히브리어로는 "하와"이다 - 필자 주)   그리고는 고후11:3에서 “남성 이단자들에게 이것을 사용한 것을 보라”고 한다.   즉, 뱀이 여자(하와)를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한 것처럼, 뱀은 남자(거짓 교사들)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했다는 비교를 통해 남자나 여자나 범죄자의 입장은 동일하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며 뒤에 이어지는 말을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Fuller는 고전11:7-9의 여자가 머리에 쓰는 문제도 그와 비슷한 논증이라고 한다.
   
하지만 Fuller는 여자가 기도나 예언할 때 머리에 쓰는 문제를 다루면서 고전11:7-9의 중요한 결론인 고전11:10의 내용은 회피하고, 마치 여자가 딤전2:15에서 면죄부를 받았으니 여자도 남자처럼 가르치는 역할(role)을 할 수 있다면서 딤전5:3-16과 딛2:3-5를 인용하고,  그와 같이 여자는 다른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문화적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다고 한다. (“다른 역할”이란 목사와 장로의 역할을 의미하는 듯 하다-필자 주)
   
Fuller가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결론으로 귀결시키려고 하는 고전11:7-9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자가 기도나 예언할 때 머리에 쓰는 문제를 거론하려면 고전11:3-10 전체를 보아야 하며 거기의 결론은 고전11:10 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3절에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기도나 예언할 때 남자는 머리에 쓰지 않아도 되지만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다(5절).   이 내용은 3절에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남자(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다음 바울은 그 내용을 보충 설명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8-9절).   이 보충 설명은 여자가 머리(남자)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린 결론은 “이러므로(이상과 같은 내용 때문에)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authority) 아래 있는 표(a symbol)를 그 머리에 둘지니라”고 하였다(10절).   창3:16에서 하나님은 하와(Eve)에게 명령하시기를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he shall rule over you)”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자는 하나님이 남편에게 주신 권세(authority) 아래 있는 표로 머리에 써야하는데 천사가 증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Fuller가 설명하려는 금지된 것들(injunctions), 즉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to have authority)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에 대한 성경적 해답이고, 이것이 바로 고전11:3-10의 내용이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에서 남자에게 권위(authority)를 행사할 수 없다.
   
Fuller는 이 명백한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기 위하여 문맥의 결론 부분(10절), “이러므로 (for this reason...)”의 내용을 잘라내고 해당이 안되는 다른 성경구절들을 무리하게 대입하면서 여성의 권위(authority)를 지지하기 위하여 그럴듯 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7)  일관성과 균형 (Consistancy and Balance)


훌러의 주장 22

책임있는 성경해석의 두 가지 광범위하고 기본적인 문제는 어떤 경우든지 균형(balance)과 일관성(consistency)이 우리의 관심이어야 한다.   균형면에서 성경의 완전한 증거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알려주어야 한다(the total witness of Scripture must inform our thought and action).   일관성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성경 본문에 대해 가능한 맹점(blind spots)과 편견을 최대한 많이 상쇄하기 위해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적 반론 22 :

Fuller가 균형면에서 “성경의 완전한 증거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the total witness of Scripture must inform our thought and action)”라고 한 것은 인간 중심의 성경해석이며, 그것은 인본주의 신학 사상(humanistic theology)에서 나온 성경해석 방법이다.   성경의 완전한 증거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는 것이 성경의 완벽한 증거 이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Fuller가 주장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다보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와그너(Wagner)처럼 제외시킨다.   그리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추구하며 인간적 생각을 성경해석에 주입하게 된다.   그래서 “맹점과 편견을 최대한 상쇄하기 위해” 인본주의 신학적 해석 방법을 취하게 된다고 본다.   그것은 성경적 균형(balance)이 아니라 비 성경적이며 불균형(unbalance)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합리성을 주는 해석이 성경의 완벽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Fuller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Fuller가 심각한 성경의 본문을 인간 중심의 생각에 짜맞추려고 인위적으로 해석할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교묘하게, 왜곡하여, 비스듬이 돌려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경고하였다(벧후3:16).


훌러의 주장 23 :

여성이 사역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가끔 바울의 서신 딤전2:11-12을 근거로 한다.   그 어려운 본문과 문맥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그것은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모든 성경의 본문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본문이 실제로 제한된 상황에서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균형에 관해서는 출발점과 싸워야 한다(struggle with starting points).   예를 들어, 신자들의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 문제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6:4-6의 내용을 로마서 8:28-39를 “통해(through)” 읽거나, 또는 로마서 본문을 히브리서를 “통해(through)” 읽어야 하는가?   딤전2:11-12의 “지배(control)”(또는 권위있는)라는 구절은 사역 중인 여성에 관한 다른 모든 신약 성경 자료에 도전하는 본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종 가정되어 왔다.   교회의 여성들에 대한 바울 서신의 다른 모든 구절들의 축적된 증거를 통해 딤전 2:8-15에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경적 반론 23 :

Fuller는 여성이 교회 사역에 종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성경구절 딤전2:11-12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는 명령이 다른 모든 성경의 본문과 균형(balance)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은 만일 그 명령이 여자의 사역을 인정한 성경의 다른 본문들과 균형(balance)을 이루지 못하면 그 명령(딤전2:11-12)은 “실제로 제한된 상황에서 말하는 것(to speak a limited situation)”이라고 주장한다.
   
Fuller는 딤전2:11-12의 명령이 다른 성경과 균형(balance)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신자의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로마서8:28-39과 히브리서6:4-6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예를 들고 있다.   즉, 롬8:28-39과 히6:4-6이 서로 균형(balance)를 이룰 수 없듯이, 딤전2:11-12은 여성의 사역을 지지하는 기타 다른 성경의 본문들과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취지 이다.   그러므로 딤전2:11-12의 명령은 극히 제한된 상황에 대한 명령이고 여성 사역 전체에 대한 금지 명령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러한 Fuller의 논리 전개는 성경적이 아니다.   롬8:28-39과 히6:4-6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교회에서 권위(authority)를 가진 여성 사역을 정당화하기 위한 Fuller의 비성경적 논리(non-biblical logic) 이다.   롬8:28-39에 나오는 “영원한 보장”은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은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이라고 하였다(롬8:28-29, 33).   하나님이 “미리 택하신 자들”에게만 영원한 보장이 해당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미리 택하시고 정하신 자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렘1:5 =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행13:48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엡1:3-6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벧전1:2 =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
   
히브리서6:4-6에 나오는 사람들, 즉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롬8:28-30, 33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들에게는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이 해당되지 않는다.   롬8:28-39과 히6:4-6은 Fuller의 주장과는 반대로 성경의 진리에서 균형(balance)를 이루고 있다.   오히려 두 본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Fuller가 불균형적 성경분석(unbalanced Bible analysis)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가롯 유다가 바로 “영원한 보장”에 참예하지 못한 사람의 실예이다(마26:24-25).   그 이유는 가롯 유다가 롬8:28-30에 해당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확실한 이유는 롬8:28-30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God cannot deny Himself =딤후2:13), 히6:4-6과 롬8:28-39의 말씀이 가롯 유다에게 균형있게 적용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고 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불균형(unbalance)을 이루지 않는다.   그런데 Fuller는 롬8:28-39에서 “영원한 보장”의 전제 조건인“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롬8:33-35)을 언급하지 않고 “영원한 보장”이 없는 히6:4-6과는 균형(balance)를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Fuller는 정당하지 못한 예를 들면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명령(딤전2:11-12)이 성경의 다른 본문에서 여성의 사역을 인정한 것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며,  따라서 딤전2:11-12 명령은 여성이 교회에서 행하는 권위적 사역(authoritative ministry)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Fuller의 그러한 주장 자체가 바로 성경을 왜곡하는 불균형(unbalance)이라고 본다.


훌러의 주장 24 :

해석의 일관성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좀더 나아가면 성경을 “들으려고(to hear)” 시도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딤전2:11-12가 다문화적이며 절대적 규범의 본문(a transcultural, absolutely normative text) 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왜 동일한 열정으로 디모데전서에 있는 다른 본문에는 접근하지 않는가?   동일한 방식으로 밀어 붙인다면 딤전3:2은 모든 독신 남성들을 사역에서 배제하는 것이고, 딤전5:3-16은 교회가 60세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을 위해 “과부의 명령(orders of widows)”을 세우며, 55세 이하의 과부들은 정욕과 게으름 때문에 재혼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비록 신약 성경 다섯군데에서 평화의 키스나 거룩한 키스를 명령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롬16:16, 고전16:20, 고후13:12, 살전5:26, 벧전5:14).   예수님이 분명히 명령하셨음에도 우리의 대부분은 발 씻는 것을 필요로하지 않는다(요13:14-15).   분명히, 우리의 유전적 전통, 또는(and/or) 특정 본문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감각은 우리의 해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일관성과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 본문에 대한 이해를 강요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위(authority)나 고린도교회에 주신 예언의 권위(authority)를 디모데전서와 같은 구조적 패턴(structural pattern)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성이 어떤 활동들은 할 수 있지만 “최고(highest)” 수준에서는 제외 하도록 딤전2:11-12의 명령을 두 가지 수준의 권위(authority)로 나눌 수는 없다.
   


성경적 반론 24 :

Fuller는 딤전2:11-12의 명령을 불공평하게 여성에게만 적용시키는 것에 반박하기 위하여 다른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다.   먼저, 감독(장로)의 자격에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했으니 “모든 독신 남성들을 사역에서 배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같은 남성들 사이에도 그처럼 차별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이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했으면 우리는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Fuller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딤전5:3-16의 내용대로 한다면, 교회에서 “과부의 명령”을 실행해야 하고, 55세 이하의 과부들은 교회가 결혼하도록 요구해야 하는데 현대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처럼 성경의 기록이 현대 교회에 적용이 안되는 사례가 있듯이 딤전2:11-12도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적용이 안된다는 뉘앙스를 보이고 있다.
   
또 성경의 다섯 군데에서나 “평와의 키스”와 “거룩한 키스”를 명령했지만 현대 교회에서는 실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Fuller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역시 성경을 자신의 목적대로 해설하려는 것이다.   성경의 본문을 보면,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롬16:16),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벧전5:14)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헬라어 “문안하라(=아스파조마이)”는 동사는 “맞이하다, 환대하다. 인사하다, 작별하다(행20:1)”는 뜻이다.   꼭 지켜야 하는 명령이 아니고 민족마다 다른 표현방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Fuller는 무리하게 이것을 권위적 명령에 연결시키려고 한다.
   
또, 우리는 성경에서 사도들이 다른 사도들의 발을 씻었다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누구 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더 잘 아는 사도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지시하신 것(요1:14-15)은 실제로 서로의 발을 씻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당시 종이 상전의 발을 씻듯이 서로 겸손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는 교훈이었다(40).   그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16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기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확인된다.   예수님이 상징적 비유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다.   그런데 Fuller는 이 내용의 핵심(16절)을 빼버리고 자신들이 주장하고 싶은 구절(14-15절)만 거론한다.   이단자들도 그런 식으로 전체 문맥은 무시하고 필요한 구절만 인용한다.
   
예수님이 문자적 그대로 “발 씻기”를 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 기록에는 사도들의 발씻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천하도록 명령하신 성만찬(고전11:23-26)이나 세례의식(마28:19-20)은 지금까지 교회가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Fuller가 “발 씻는 문제”를 딤전2:11-12의 명령과 연결시키려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인위적 방법으로 자신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으로 본다.
   
Fuller는 “고린도교회에 주신 예언의 권위(authority)를 디모데전서와 같은 구조적 패턴(structural pattern)을 가 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면서 여성이 그러한 “최고(highest) 수준”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앞서 “성경적 반론 18”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 시대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성도들에게 필요한 “예언”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하는 불완전한 예언(prophesy in part)”이었다.   Full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예언은 “최고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폐하여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온전한 것”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그 시기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밧모섬에서 계시로 말씀하실 때였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을 쓰게 하실 때 그것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셨고 말씀을 끝맺으실 때 더 이상 여기에 보태지도 말고 삭감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셨다(계22:18-19).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 편지를 보낼 때는 주후 약 55년경(A.D.55) 이었다.   그 때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 “예언의 말씀”을 마감한 시기는 로마 황제 도미티안 시대인 주후 81-96년경(A.D. 81-96)으로 보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기록 이후 약 40년 지나서 “예언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으로 완성된 것이다.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prophesy in part)이 폐하리라(will done away)”는 말씀이 요한계시록으로 마감되었다.
   
예수님이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로 “예언의 말씀(the word of prophecy)”을 마감하신 이후 현재까지는 약 19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계시를 받아 예언한다고 야단 법석이며 놀라운 기적까지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마7:21-23, 마24:24).
   
Fuller가 “예언의 권위(authority)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며 “시대의 표적(the signs of the times)”을 분별하지 못하는 소경과 같은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마16:3).


훌러의 주장 25 :

결론적으로,  성경의 완전한 증거와 해석의 균형과 일관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일부 전통(some of traditions)을 다시 검토하고, 교회 사역에 여성이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성경적 근거를 명확히 재확인 해야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에 대한 근본적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다고 한 것은 복음, 교회 및 모든 사역에 평등하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증인들 가운데 여자를 포함시키셨고, 성령이 아들들과 딸들 모두에게 임하셨으며, 바울이 동역자 그룹에 여성을 포함시킨 모두는 복음의 모든 사역에 남자와 여자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경적 반론 25 :

Fuller는 지금까지 주장한 것들에 대해 결론 내리기를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의 근본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구별이 없다”(갈3:28)는 의미이며,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없이 모두 교회 사역에 참여 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한다.   Fuller가 여성목사의 권위(authority)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처럼 고후5:17과 갈3:28을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게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고후5:17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의 근본 의미는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행26:18),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는 것”이고(롬6:17-18),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는 것이다(엡5:8).   이것은 변화된 영혼의 상태(the state of a changed soul)를 말하는 것이지 변화된 영혼의 기능(the function of a changed soul)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된 영혼의 상태(the state of a changed soul)는 사회적 신분을 초월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유대인이 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이다(갈3:28).   영혼의 상태(state of soul)가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Fuller는 이것을 변화된 영혼의 기능(the function of a changed soul)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Fuller는 사역에 대한 권위(authority in ministry)를 남성에게와 동일하게 여성에게도 부여하려는 것이다.
   
갈3:28은 Fuller의 주장처럼 교회 사역에서 남자와 여자의 기능(function)을 평준화하는 내용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3장을 기록한 목적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유혹하여 믿음을 흐리게 하는 이단자들 때문이었다(갈3:1, 5).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핵심이다(갈3:5-27).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도 고후5:17의 “새로운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변화된 영혼의 상태(the state of a changed soul)를 말하는 것이지 변화된 영혼의 기능(the function of a changed soul)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 내용(갈3:5-27)을 설명한 직후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하였다(갈3:28).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상태가 변화되는(changing the state of the soul)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남자나 여자나) 차별 없이 주어진다는 내용이다.
   
Fuller가 인용하고 있는 고후5:17과 갈3:28의 내용들을 살펴볼 때 Fuller가 마치 교회에서 여성이 권위적 사역에 참여(women’s participation in authoritative ministry in the church)하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본래 뜻하는 것과는 관계 없이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딤전2:12에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고 한 것이 교회에서 여자에게 영적 기능의 권위(authority of spiritual function)를 금지한다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4.  결       론

      필자는 지금까지 Fuller신학교가 소위 기독교 여성주의자들(Christian feminists)의 입지를 높여 하나님이 교회에서 금지하신 여성의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를 지지하는 신학적 입장을 취한데 대하여 반론을 제기해 왔다.   Fuller신학교의 그러한 입장은 신학교 설립때부터 잘못된 신학적 배경의 영향으로 실용주의 철학을 수용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배제하며, 신사도운동의 직접계시의 영향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가를 지적했다.   이제 결론적으로 Fuller의 신학적 자세(theological stance)가 현실적으로 최근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짚어보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Fuller신학교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LGBT) 동성애 학생단체인 “하나의 테이블(One Table)”을 Fuller의 공식 학생조직(an official student organization)으로 승인했다.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최초로 발생한 사건이므로 전 세계 기독교 학교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One Table의 대표 학생인 닉 팔라시오스(Nick Palacios)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Fulller와 One Table을 교회가 해야 할 일의 모델로 볼 것이다”라고 했다.   One Table 동성애 그룹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를 “Fuller에 있는 동성애자들(LGBT)을 지원하며, 동성애자들과 Fuller 커뮤니티간의 대화를 위한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했다(41).   Fulller는 동성애자들이 신학교 내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여 넓힐 수 있도록 공식 승인해 준 것이다.
   
AP통신은 성경적 원리를 고수하는 학교의 예를 들면서 Fuller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독교 보수 학교인 Biola University의 경우를 소개했다.   Biola 학교측은 교내에서 음성적으로 활동하던 바이올라 퀴어(Biola Queer) 동성애 그룹을 해산시켰다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학교라면 그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Fuller가 동성애자 그룹을 공식 승인한 배경에는 Fuller가 운용하고 있는 훌러 스튜디어(Fuller Studio)가 있음을 알 수 있다.   Fuller Studio는 세계적 수준의 교수진과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가져온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깊이 있는 영적 삶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과 기독교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42).   그리고 Fuller Studio 안에 예배, 신학, 예술을 위한 브렘 센터(Brehm Center for Worship, Theology, and the Arts)가 있는데,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전략변경: 문화 전쟁에서 문화 관리로(Changing the Metaphor: From Culture Wars to Culture Care)” 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글이 나온다.   거기에서 “문화관리(Culture Care)”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문화 전쟁”에 대한 대안(an alternative to culture wars)은 문화적 파괴에 대한 해독제(antidote)로서 아름다움의 창조와 보존을 제공하고 공공 생활에서 문화적 관대함을지지하는 철학(philosophy)이라고 한다.   그리고 Culture Center의 소장 후지무라(Fujimura)는 “문화관리(Culture Care)는 훌러신학교에서 제공하는 신학적, 영적, 문화적 형성을 위해 추구하는 문화의 사려 깊은 청지기 직분이다”라고 설명하며 “우리의 벽 넘어로 그 원리를 촉진시키려 한다” 라고 했다(43).
   
기독교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문화전쟁(Culture Wars)”이 있다.   “성도(聖徒)”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무리(백성)”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라고 하셨다(벧전:16).   그러므로 거룩한 생활에 힘쓰는 것이 성도의 정체성(identity of the holy people) 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풍속을 본받지 말고, 우상문화나 가증한 일을 본받지 않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6:12)을 싸우라고 하신다.   즉, 이 세상 문화(culture)를 장악하고 있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이다(엡6:12).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성도의 정체성인 “거룩”을 유지한다.   성경은 우리가 세속 문화와 싸워야 하는(culture wars) 이유를 말해준다.
   
        레18:3, 30 = “너희는 그 거하던 애급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가증한 풍속(abominable customs)을 하나라도 따름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단1:8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왕상14:22-24  =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땅에  남색하는자(신전의 남창: sodomites)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all the abominations)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롬12: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요삼1:11 =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Fuller는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포기하고 “문화 전쟁(culture wars)에서 문화 관리(culture care)”로 “전략변경” 했다고 한다.   그 구체적인 설명으로 “문화 전쟁에 대한 대안(an alternative to culture wars)은 문화적 파괴에 대한 해독제로서”라고 한다.   성도가 악한 문화에 대항하여 “영적싸움(struggle against the spirits of evil)” 하는 것을 Fuller는 “문화적 파괴(cultural brokenness)”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Fuller는 그런 “영적 싸움”을 “독극물(poison)”로 취급하고 그런 싸움 안하게 하는 것을 “해독제(antidote)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은 곧 “아름다움의 창조와 보존을 제공하는 철학” 이라며 “철학(philosophy)”을 강조한다(it is a philosophy that offers the creation and conservation of beauty as antidote to cultural brokenness).
   
소돔문화(sodomite culture)에 대항하여 영적 싸움하는 것을 철학(philosophy)을 사용하여 해소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우리의 벽 넘어로 그 원리를 촉진시키려 한다(to catalyze its principles beyond our walls)”고 했다.   성경말씀의 장벽을 넘어 널리 퍼뜨리겠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동성애자(LGBT) 그룹을 신학교 안에 공식 단체로 승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동성애(sodomites)와 영적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Fuller에서 교회성장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맥가브란(McGavran)이 주장한 대로 “우리는 지독히(fiercely) 실용주의적이며, 교리는 별개의 것이다”(24)라고 한 실용주의 철학(philosophy)을 신학교 내에 동성애자 그룹을 승인한 것으로 나타낸다.   2015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발표에 의하면 미국의 젊은 기독교인들(1981-1966 태생)의 51%가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어야 한다(Homosexuality should be accepted by society)”라고 주장했다(44).   그런데 이제는 Fuller신학교가 “동성애는 신학교에서도 용납되어야 한다” 라는 Sign을 개신교신학교 역사상 최초로 보여주고 있다.
   
Fuller가 “문화 전쟁(culture wars)에서 문화 관리(culture care)”로 “전략변경” 한 것은 Fuller신학교 창설 때부터 전통적 신앙에서 벗어나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을 적용하는 패턴(pattern)이다.   즉, Fuller 창설자 오켕가(Ockenga)가 주장한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 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데 역점을 둔다”(7)라고 한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여성의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를 허용하도록 Fuller 나름대로 제기하는 성경 자료들은 오켕가(Ockenga)의 진술대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성경을 왜곡하며 풀이하는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Fuller신학교의 여성목사 지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은 예루살렘의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자”(겔9:4)의 심정으로,  또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예수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징조로서 “먼저 배도하는 일”(살후2:3)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하는 “배도(apostasy)”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교회가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뜻이다.   현재 그 배도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여성에게 영적권위(spiritual authority)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성이 먼저 범죄했으므로 영적권위가 금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이 그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에 도전하면서 목사안수를 받으면 그 순간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창세기에서 여자가 뱀에게 속았듯이 마지막 때에 또 다시 여자가 사탄에게 속아 사탄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여자 목사가 주의 이름으로 무슨 권능과 기적을 행하며 예언하든지 관계 없이 “불법”을 행한 결과는 확실하다고 본다(마7:15-23, 마24:24).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선지자 노릇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거짓 선지자로 묘사하였다(렘23:25-26).   그것은 구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서도 해당됨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15-23의 내용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는 사람을 언급하셨다(21절).   그 선지자들이 세상에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다(22절).   그런데 “그 날에”(심판날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I never knew you)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라가라” 하신다고 하셨다(23절).   그들은 불법을 행한 선지자들이었으므로 주님께 인정받지 못한 거짓 선지자였다.   그들은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었다.   여자 목사가 주의 이름으로 무슨 권능과 기적을 행하며 예언을 하든지 관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행한 결과는 불행으로 끝날 것이다(마7:15-23, 마24:24).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딤전2:12-14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to exercise the authority over a man)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그 이유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첫째 이유는 창조질서 때문에)
             14 아담이 먼저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둘째 이유는 여자가 먼저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금지하신 이 명령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상 문화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the attributes of God) 자체가 영원토록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속성 때문에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여자목사는 목사안수 받은 교단에서 면직처분을 신청하고 탈퇴한 후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것으로 본다.
   
                                                                    - - - - - - - - the End - - - - - - - - -

Notes:

1. https://religionnews.com/2018/10/18/clergywomen-numbers-increased-significantly-in-two-decades-
    sometimes-equaling-men/?
2. D. H. Cochran, Evangelical Feminism,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5
3. Tany Riches, A Non-Headship Marriage, www.fixinghereyes.org
4. https://successfulstudent.org/top-10-evangelical-seminarys-us/
5. www.collegetuitioncompare.com
6. www.fuller.edu/womeninministry/
7.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p.91
8. Dager, Media Spotlight, WCM, Part II
9. The appointment of Vassady to the faculty of Fuller Theological Seminary is clear in the 1949 - 1951 Catalog
    of the seminary. When Bela Vassady first came to the United States, he spelled his last name Vasady.
    Later in life he changed the spelling to Vassady. I have used the later spelling throughout, except in
    original correspondence.
10. Fuller Studio, https://fullerstudio.fuller.edu/fullers-ecumenical-vision/
11. Karl Barth, Church Dogmatics pp. 507, 528, 529
12. Steward Custer, Does Inspiration Demand Inerrancy, p. 75
13.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Bulletin, Vol. II, No.2, Spring 1968, p.80
14. Harold Lindsell, The Strange Case of Fuller Theological Seminary, www.biblical-data.org
15. globalharvest.org/peter.htm
16. Peter Wagner, 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Servant Book, 1988
17. Peter Wagner,?The Second Apostolic Age, Gospel Light Pub. 2004
18. Wayne Grudem, Evangelical Feminism and Biblical Truth, Crossway, 2004, p. 503
19. CBN interview, Jan 3, 2000, cited in letusreason.org
20. Peter Wagner, article - "The Great Transfer of Wealth, Are you ready?"
21. globalharvest.org/spheres.htm, "Understanding How Apostles Minister in Different Spheres", May 20, 2010
22. Peter Wagner, Engaging the Enemy, 1991, pp.15-16
23. globalharvestministries.org/index.asp?action=about
24. Donald McGavran, "For Such a Time as This", Peter Wagner, "Pragmatic Strategy for Tomorrow's Mission, 1973, p.47?
25. Albert Barnes, NT Commentary
26. John Wesley, NT Commentary
27. Bretheren, NT Commentary
28. https://www.fuller.edu/womeninministry/ July, 2019
29. Haris, Archer and Waltke,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T, Moody Press, 1980
30. bible.org, “Questions About Marriage and Divorce” (Matthew 19:3-12)
31. Vatican News, https://www.vaticannews.va/en/saints/07/22/st--mary-magdalene-- disciple-of-the-lord-.html
32. https://oca.org/saints/lives/2009/07/22/102070-myrrhbearer-and-equal-of-the-apostles- mary-magdalene
33. Albert Barnse NT commentary, 1 Corinthians 11:10
34. Commentaries regarding Philemon 1:1-2 are as follow: Adam Clarke’s Commentary, Albert Barnse’s Commentary,
      Brethren NT Commentary, British Family Bible, Jamieson-Fausset_Brown Commentary and Matthew Pool’s
     Commentary
35. Albert Barnse NT commentary, Acts 12:12
36. http://www.cbmw.org/Journal/Vol-2-No-5/Willow-Creek-Enforces-Egalitarianism
37. Adam Clarke’s Commentary, 1 Corinthians 14:34
38. Wayne Jackson, Command or Culture: Discerning the Difference, https://www.christiancourier.com/articles/1050-
    command-or-culture-discerning-the-difference
39.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T, by Arndt & Gingrich, 2nd Ed., p121
40. John Wesley, Notes on the OT and NT, John 13:14
41. New American, 17 July, 2013, https://www.thenewamerican.com/culture/faith-and-morals/item/16012-
      evangelical-fuller-seminary-says-yes-to-homosexual-campus-club
42. https://fullerstudio.fuller.edu/about/
43. https://www.fuller.edu/culturecare/
44.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5/12/18/most-u-s-christian-groups-grow-more- accepting-of-homo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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